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진보·보수 대북정책 각 10년씩
이제 망원경·현미경 다 활용하자
중장기로는 햇볕정책 방향으로
정책 수단은 다변화·정교화해야
단기로는 대북제재 실효성 제고
맹렬히 시행하고 신속히 빠져야
차기 정부에서도 분열적 대북정책을 펴면 또 실패한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의 토대 위에서 보수와 진보가 합의하는 대북정책을 만들어 실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존 정책의 공과를 평가할 필요가 있다. 보수 정부는 북한과의 교류·협력보다 비핵화를 더 중시해 왔다. 북한의 핵 개발을 막지 못하면 우리 안보가 위협받고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비핵화를 정책 목표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정책이나 그랜드 바겐은 아무 성과를 내지 못했다. 2010년 시작된 5·24 조치도 북한에 충격을 주지 못한 채 한국은행의 추정치에 따르면 2011~2014년 동안 북한 경제는 오히려 연평균 1.1% 성장했다. 정책의 실효성보다 여론을 의식해 당위성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이다. 북한이 중국과 자유롭게 교역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독자 제재가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 자체가 무리였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실패를 학습해야 했었다. 정부 초기가 기회였다. 그때 우리는 북한의 시장화와 더불어 사회 개방이 촉진되도록 적극적으로 대북정책을 폈어야 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대북정책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한 채 미적거렸다. 그러다 북한의 4차, 5차 핵실험 이후 남북 문제의 주도권은 미국·중국에 넘어가 버렸다. 박근혜 정부가 다음 정부에 물려줄 것은 대북정책의 외통수다. 자국의 본토까지 위협할 수 있는 북한의 핵 고도화를 중지시키려는 미국은 북한에 대규모 현금이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특히 미국인이 ‘이슬람국가(IS)’와 견줄 만큼 북한을 위험하게 생각하는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이전 햇볕정책을 되풀이하겠다고 나선다면 한·미 갈등이 불거질 수 있다. 이와 같이 대북제재의 원인이 된 북한의 행태가 변하지 않으면 우리가 설 공간은 지극히 협소해진다.

합의 가능한 대북정책은 중장기적으로는 햇볕정책의 방향으로 가되 그 정책 수단은 진화·다변화·정교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보수 정부가 물려준 현실에서 출발해야 한다. 비유컨대 망원경과 현미경을 모두 활용하는 것이다. 망원경으로써 우리는 평화통일이라는 목적지와 거기로 가는 길을 확인해야 한다. 통일로 가는 가장 좋은 길은 시장제도를 기초로 남북이 경제적으로 통합되는 것이다. 시장을 통해 북한 주민과 경제가 변하면 통치체제도 변화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장의 내압을 견디기 어렵기 때문이다. 동시에 현실의 냉철한 분석과 대처를 위해 현미경이 필요하다. 현 상황에서는 유엔 대북제재의 실효성 제고보다 더 나은 대안이 없다. 그러나 이는 “사자처럼 맹렬히 들어가 제비처럼 신속히 나오기 위한” 정책이다. 이번 제재는 5·24 조치와 달리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이마저 실패하면 미·중 갈등이 심각해지는 것은 물론 한반도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급증할 것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 특히 영유아 지원은 어떤 조건에서도 지속해야 한다. 이번에 유진벨재단의 결핵약품 지원 신청을 통일부가 승인한 것은 잘한 일이다. 북한의 인권 개선을 주장하는 한국이 인도적 위기에 무관심한 것은 일관성을 결여한 태도다. 그리고 북한 주민이 건강해야 통일비용도 줄어든다. 동시에 북한에 직접 들어가기 어려운 현시점에서는 추후 경제협력을 위해 러시아와 중국을 대상으로 여러 우회 통로를 개발할 필요가 있다. 평화와 통일은 로또가 아니다. 망원경을 가진 진보와 현미경을 가진 보수가 함께 전심으로 협력해야 찾아오는 선물이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