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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체제 진화 … 개헌만이 정답은 아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주최한 ‘한국의 지속발전, 어떻게 할 것인가’ 콘퍼런스가 23일 열렸다. [사진 최정동 기자]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주최한 ‘한국의 지속발전, 어떻게 할 것인가’ 콘퍼런스가 23일 열렸다. [사진 최정동 기자]

“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다? 솔직하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진단이다. 지난 30년간 한국의 권력구조는 계속 분권화됐다. 개헌만이 정답은 아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콘퍼런스
장훈 교수 “문제는 잘못된 운영”
저출산·고령화 시대 해법도 논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정치권 주요 화두는 개헌이다.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축으로 한 이른바 ‘87년 체제’가 매번 불행한 대통령을 만드는 등 시효를 다했다는 주장에 따라서다. 내용과 시기를 둘러싼 논란이 있을 뿐, 개헌 자체에 대해선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장훈 중앙대 교수는 “87년 체제는 꾸준히 진화해왔다. 30년간 한국정치는 헌법을 바꾸진 않았지만 제도적 개혁을 통해 권력집중에서 권력분산으로 바뀌어왔다”며 ‘개헌 만능주의’에 반기를 들었다. 23일 경제·인문사회연구회(이사장 김준영)가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한국의 지속발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국가정책 합동 콘퍼런스에서다.

정치분야 발표자로 나선 장 교수는 87년 체제 진화의 근거로 2004년 혼합형 국회의원 선거를 제시했다. 이때부터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를 따로 투표하는 1인2표제가 시작됐다. 장 교수는 “비록 5대 1의 비율이었지만 분할투표가 가능해져 정당체제 분극화 현상을 가져왔다. 지난해 국민의당 선전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진단했다.

국회선진화법에 대해서도 긍정적이었다. 입법기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있지만, 국회선진화법으로 소수에 의한 지연·반대가 가능해져 일방적인 권력 집중을 제어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장 교수는 “87년 체제는 그저 머리에만 있을 뿐이다. 중임제·이원집정부제 등 외국의 체제를 수입해 온다고 고질적인 한국정치의 폐해가 단숨에 없어질 것이란 기대는 착각”이라며 “제도가 문제가 아니다. 잘 운영하지 못했을 뿐이다”라고 단언했다.

토론자로 나선 진영재 한국정치학회장(연세대 교수)도 “87년 체제를 나쁜 헌법이라고 치부하고, 지나치게 제도 논쟁으로만 가면 피로감이 든다. 종합적 사고가 필요할 때”라고 주장했다.

한편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저출산에 대해 독특한 시각을 보였다.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감소는 국가적 현안이지만, 일자리로만 한정했을 때는 청년층의 구조적 실업을 해소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또한 여성고용률을 높이고 퇴직고령자를 활용할 수도 있다. 100% 부정적인 면만 있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도발적 문제제기는 토론에서도 이어졌다. 김상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장은 “2000년대 초반 독일의 슈뢰더 사민당 정부는 노동개혁을 주도해 노동계에 사실상 칼을 꽂았다. 우리 정치 역시 누가 집권하든 자기 진영으로부터 욕 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명재 한국사회학회장(서울대 교수)은 “일자리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돈 벌고 출세하기 위한 경제가치에서 나누고 참여하는 사회가치로 전환시켜야 실업·고령화 등을 해결할 실마리를 마련할 수 있다”고 전했다.

김준영 이사장은 “한국사회는 여태 압축발전을 해온 탓에 지속발전의 밑그림을 그려보지 못했다. 하나의 단편적 시각이 아닌 정치·경제·사회·과학기술을 아우르는 종합적 처방을 마련하고자 콘퍼런스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글=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최정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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