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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시시각각] 춤은 계속되고 부조리는 이어진다

이훈범 논설위원

이훈범
논설위원

밀란 쿤데라의 소설 중에 『천사들』이라는 단편이 있다. 체코의 정치 격변 속에서 추락하는 삶을 그린 자전적 소설인데, 거기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나도 원무(圓舞)를 췄다. 1948년의 일이었다. 나의 조국에서 공산당이 승리를 거두고 사회당과 기독교민주당 장관들이 외국으로 망명을 떠난 때였다. 나는 다른 공산주의자 학생들과 손을 맞잡거나 어깨동무를 하고 (…).”

우리는 잘못 없다는 자기최면의 춤
발 못 맞추는 사람만 쫓겨나 추락


원무는 거의 매달 계속됐다. “공장들이 국유화되고, 사람들 수천 명이 감옥에 가고, 의료비가 무상이 되고, 담배 가게들이 압류되는” 등 “언제나 기념할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쿤데라는 “말하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말해” 당에서 쫓겨난다. 원무 대열에서도 떨려났음은 물론이다.

그때 그는 깨닫는다. “열에서 이탈했을 때는 아직 돌아갈 수 있다. 열은 열린 조직이다. 하지만 원은 닫혀서, 떠나면 돌아갈 수가 없다. 행성들이 원을 그리며 움직이고, 떨어져 나온 돌이 원심력에 실려 가차 없이 멀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행성에서 떨어져 나온 운석처럼 나는 원에서 떨어져 나왔고 오늘날까지도 계속 추락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대국민사과를 보면서 쿤데라의 이 ‘원무’를 떠올리며 나는 떨었다. 이 땅을 뒤흔든 이 정부 국정 농단의 최대 부역자인 이들이 원무를 추고 있는 거였다. 전·현직 장차관 네 명이 구속된 풍비박산 속에서도 이들은 여전히 어깨동무를 하고 자기들만의 원을 그리고 있는 거였다. “사태의 전말이 아직 완전히 파악되지 않았고, 특검 수사를 통해 문체부가 져야 할 책임은 마땅히 감내하겠다”는 건 그들만의 방언이다. 우리말로 통역하면 이런 거다. “사태의 전모를 스스로 밝힐 용의는 없고, 특검이 용케 밝혀낸다면 드러난 부분만 책임지겠다.”

더욱이 이들이 사과할 일이 정녕 문화계 블랙리스트뿐인가. 정말 그렇게 믿는 건가. 최순실-차은택 커넥션의 장난질, 평창의 눈 속에 파묻힌 각종 의혹, 무엇보다 정유라에 대한 기상천외한 특혜와 그 창구였던 K스포츠재단의 흑막, 이 모두 그들이 발 담갔거나 발 벗고 나선 일들 아니었던가. 입을 닫고 있으니 독심(讀心)이 필요하다. 과거 누가 했던 말을 빌리면 이렇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잖은가.”

쿤데라의 독백 시점이 1971년이니 그의 추락은 20년 넘게 계속되고 있었다. 그사이 기념할 일이 바뀌고 기념하는 주체도 달라졌지만 원무는 계속됐다. 쿤데라의 말대로 원무를 추는 사람들이 내뱉고 싶었던 것은 ‘무고(無辜)함’이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잘못이 없다는 자기최면 말이다. 당에서 시킨 일은 무오류(無誤謬)이며 설령 오류가 있다 해도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자기암시다.

문체부 그들도 그랬다. 원무를 계속하며 뿌리 깊은 무고의 자기최면으로 빠져든 것이다. 탈이 난들 대수랴. 쿤데라의 조국이 68년 ‘프라하의 봄’ 햇살을 잠깐 쬐었다가 소련군 탱크에 짓밟힌 겨울로 돌아갔듯, 문제가 되면 잠깐 고개 숙였다 다시 원무 대열로 돌아가면 그만이다. 원무는 박자를 맞춰야 돌아간다. 발을 맞추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흐트러질 위험이 있다. 그런 사람은 쫓아내야 한다. ‘하면 안 될 말을 한’ 쿤데라처럼, “이러면 큰일 난다”고 경고하거나 비리를 보고하는 위험인물들은 밖으로 차버려야 한다.

여기 자기최면이 다시 동반한다. ‘그를 잘라낸 건 내가 아니라 윗선이다. 안 됐지만 원무가 다시 돌게 돼서 다행이다.’ 원무는 계속되고 부조리는 이어진다. 소설에서 춤추는 사람들이 땅을 박차는 힘이 커지면서 원무는 하늘로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마치 ‘천사들’처럼. 부조리에 대한 극한 조롱이다. 반면 추락에는 끝이 없다. 75년 파리로 주거를 옮기지 않았다면 쿤데라의 추락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을지 모른다. 민주화란 원무에 중요한 변수가 못 된다. 우리라고 다를까. 문체부만 그럴까. 몸을 떨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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