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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리포트] 예뻐졌네, 살빠졌네 … 설날엔 이런 말만 해주세요

병신(丙申)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며칠 뒤에 있을 설날이 진정한 정유(丁酉)년이 시작되는 날이다. 음력으로 생일을 챙기는 풍습도 사라져 가는 요즘, 양력에 익숙한 청소년들에게는 명절의 의미도 기성세대와는 좀 달라 보인다. 또한 그들도 명절증후군을 앓고 있었다. 중앙일보가 만드는 청소년 매체 TONG(tong.joins.com)이 온라인 설문과 카카오톡 대화, 전화 인터뷰 등으로 중·고교생 70여 명의 설 이야기를 들어봤다.

 
  
 
세뱃돈 합하면 5만~100만원 … 인증샷도 올리죠 ^^
중·고생 70여 명에게 물었더니
응답자의 절반은 설이 기다려지는 이유로 ‘세뱃돈’을 첫손에 꼽았다. 양대 명절인 추석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경제적인 환경과 모이는 친척들의 수에 따라 기대하는 세뱃돈 총액은 5만원부터 100만원까지 천차만별이다. 다만 졸업과 진학이 있는 해에는 기대치가 높아진다. 조성현(유한공업고 1)군은 “친구들을 보니 고등학교에 입학했다고 50만원, 100만원씩 받아오기도 하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세뱃돈 받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은 “억지로 돈을 꺼내는 게 눈에 보이면 받으면서도 눈치가 보이고 불편하다. 말 한마디 없이 벌금 내듯 툭 던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준일(전인기독학교 10)군은 “세뱃돈이라는 게 원래 응원과 격려의 의미 아닌가? 그런 마음이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세뱃돈은 먹고 쇼핑하며 저축하는 등의 용도로 쓴다. “엄마와 반씩 나눈다”(박가람·영천성남여고 1)는 학생도 있었다. 박진호(인천국제고 3)군은 “세뱃돈은 거의 먹는 데 쓴다. 학교에선 세뱃돈을 가장 많이 받은 친구가 밥을 산다”고 말했다. 명절 후 세뱃돈을 많이 받았다며 자랑하는 모습이 불편하다는 얘기도 나왔다.

“학교에선 서로 민감한 얘기인 걸 아니까 조심하는 편인데, SNS에는 지폐를 바닥에 펼쳐놓고 사진을 찍어 올리는 경우가 있다.”(변현경, 호곡중 3)
 
상 치워야죠, 동생·조카들과 놀아줘야죠 … 에구~
친척 만남, 기대되지만 부담스러워
설을 기다리는 또 다른 이유로 ‘친척들과의 만남’과 ‘연휴’를 각각 다섯 명 중 한 명이 꼽았다. 친척들과 가깝게 지낸다는 강희영(태원고 2)양은 “함께 공연도 보고 윷놀이도 하면서 재미있게 보낸다”고 말했다. 국제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이수빈(브랭섬홀아시아 12)양도 “차 세우는 게 보이면 동생들이 맨발로 뛰어나와 기다린다. 그 모습만 봐도 반갑다”고 말했다. 늦게까지 야식을 먹으면서 TV를 보거나 단체로 PC방에 가도 친척들과 함께라면 면죄부가 주어진다는 것도 명절의 특권이다. “동생들은 소파에서 ‘모두의 마블’ 게임을 하고, 중·고생들은 PC방 가서 ‘오버워치’를 한다.”(김도현, 원광고 3)

반면에 친척들을 만나는 게 어색하고 부담스러워 명절이 싫다는 이들도 5명 중 한 명꼴이었다. 박모(18)양은 “우리 집이 큰집이라 친척들이 모이는데, 반갑긴 반가우면서도 말로는 뭐라고 표현 못할 그런 감정이 있다”고 털어놨다.

음식 준비와 뒷정리가 힘들다는 이들도 있었다. 핵가족화되면서 일손이 부족하다 보니 10대들도 차례상 준비를 돕고, 친척들과 먹을 음식 준비를 거들어야 한다. “명절 다음날이면 밤새 시끄러웠던 술자리 정리를 해야 한다”고 증언한 학생도 있었다. 어른들이 일을 하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아직 손길이 필요한 어린 동생이나 조카들은 큰 아이들의 몫이 되곤 한다. 정수민(영동일고 1)양은 “동생들과 놀아주는 게 명절 역할이 됐다. 좋은 마음으로 하지만 힘든 건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김도현군은 “설 당일엔 친척집마다 돌아가며 차례를 지내기 때문에 조부모님들을 모시고 다닌다. 명절 전날에는 전을 부치고 동생도 돌본다”고 말했다.

10대의 눈으로 봤을 때 명절의 남녀차별은 다소 약화된 듯하면서도 여전하다. 한 여학생은 “음식은 아직도 여자들이 주로 만든다. 할머니는 남자 어른들이 아무것도 안 해도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러겠냐’며 두둔하신다”고 지적했다. 김모(18)양은 “할머니가 엄마만 무시하고 일을 시켜서 명절이 싫다”며 명절에 듣고 싶은 말로 “OO이 엄마 수고했어”를 꼽았다.

 
연휴에도 공부 공부 … 특강 들으러 학원 가요 ㅠㅠ
어른들이 무심코 던진 덕담에 명절 싫어져
추석에는 시험 준비 때문에 친척집 방문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에 설은 방학 중이기도 하고 세뱃돈도 받을 수 있어 웬만하면 참여하는 편이다. 예비 고3들에겐 긴 터널을 앞둔 마지막 휴식이기도 하다. 연휴 이튿날부터 SNS나 단체 메신저에 ‘나랑 만나서 놀 사람’을 찾는 메시지가 올라온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안수빈(단원고 2)양은 “시골을 안 내려가는 친구와 경기를 보러 간다. 명절 연휴 내내 경기장에 간 적도 있다”고 했다. 명절이 기다려지는 이유로 ‘연휴’를 꼽은 김민주(일신여고 3)양도 “집에서 특선 프로그램을 찾아가며 TV를 본다”고 말했다. 학생들에겐 추석과 설은 차원이 다른 명절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섯 명 중 한 명은 설에도 친척을 만나지 않았다. 예비 고3인 이모양은 “올해는 공부하느라 안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차례 지낸 후엔 시간 맞는 친구들과 영화 보러 간다. 놀이동산에 간 적도 있다. 하지만 학원 수업에 가는 친구들도 있다. 국·영·수 과목별 수업이 다 있고, ‘설 특강’이 생기기도 한다.”(신수경, 명일여고 1)

학생들은 연휴에도 학원에 가거나 과외수업을 받고, 독서실로 향하기도 한다. 직접 선택했다면 괜찮지만 부모님의 강요나 학원 진도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오모(17)양은 “설에도 독서실에 가는 사촌과 비교당한 적이 있다. ‘누구는 공부하느라 안 왔는데’라며 눈치를 주더라”고 말했다. 이렇듯 열 명 중 세 명은 성적 압박 때문에 명절이 부담된다고 말했다.
 
어색한 분위기에서 어른들이 무심코 건네는 덕담은 10대의 명절증후군을 강화시킨다. 이모(16)양은 “친척들이 모이면 잔소리를 피해 방에서 아예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명절에 듣고 싶은 말로는 “예뻐졌다” “멋있어졌다” “살 빠졌다” 등 외모에 대한 칭찬과 “수고했다” 등의 덕담을 꼽았다. 반대로 “공부는 잘 하느냐” “살쪘다” “대학은 어디로 갈 거냐” “OO는 어느 대학 갔는데 너는 더 잘 가야지” 등의 이야기는 듣기 싫어했다. “그냥 아무 말씀 안 하셨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박성조 기자 park.sungjo@joongang.co.kr,
영상=전민선 프리랜서, 일러스트=심수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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