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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문체부 A과장의 죄

손민호 문화부 기자

손민호
문화부 기자

문화체육관광부 A과장. 그는 문체부에서만 32년을 근무했다. 9급 공채로 시작해 이태 전 4급 서기관으로 승진하기까지 그는 정말 헌신적으로 일했다. 그를 아는 문화예술계 사람들이 한결같이 증언한 바다. 쉰 살이 넘은 그는 초등학생 딸의 엄마이기도 하다.

블랙리스트 사건의 실무자가 A과장이다. 그는 2013∼2016년 약 3년 동안 블랙리스트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그 사이 장관부터 과장까지 수많은 간부가 들고 났지만 A과장은 자리를 지켰다. 이미 그는 수차례 검찰·특검 조사를 받았다.

정초부터 거의 매일 A과장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국민 앞에 진실을 밝히라는 내용이었다. 2주 만에 답장이 왔다. ‘저는 잘 몰라요. 맨 밑에서 일했던 사람이에요. 죄송해요.’ 그래도 계속 문자를 보냈고 겨우 통화가 됐다.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조직에서 지시하면 나가겠습니다. 저 혼자 결정할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조직은 움직이지 않았다. 직속 상관은 “A과장 개인의 문제”라고 잘라 말했다. 문체부 전·현직 관료 십수 명에게 문체부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부당한 권력에 휘둘린 문체부의 민낯을 드러내고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고, “그래야 문체부도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말하고 또 말했다. 문체부는 끝내 답이 없었고 21일 헌정사 초유의 현직 장관 구속이라는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문체부는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의 주무대였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물론이고 김종 전 2차관이 주도한 문화계·체육계 비리도 문체부에서 벌어졌다. 그러나 여태 관련자 징계는커녕 공식 사과도 없었다. 되레 언론에 진실을 밝힌 전직 간부들에게 현직 간부들이 강력 항의했다는 뒷말만 들려왔다. 한 전직 관료의 성토가 아직도 생생하다.

“정치적이라는 검찰도 일이 터지면 내부 통신망에서 자성의 목소리를 내요. 그런데 문체부는 쉬쉬하는 데만 급급하네요.”

문체부가 소낙비만 피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면 착각이다. 블랙리스트 관련 공직자에게 적용된 직권남용 혐의는 최고 5년 징역형에 불과하지만, 문화예술인의 상상력을 훼손하고 자존심을 짓밟은 블랙리스트는 문체부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행위다. 형법상 범죄 이전에 헌법 정신을 부정하는 악행이다. 문화예술단체들은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기로 했다.

문체부는 23일 대국민 사과를 하고 비상근무체제에 돌입할 예정이다. 열심히 하겠다는 뜻은 알겠는데 솔직히 열심히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 문체부는 피해자가 아니다.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다. A과장의 죄는 32년 동안 조직의 명령에 따라 열심히 일한 것밖에 없다. 그것도 죄다. 그래서 아프다.

손민호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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