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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수출도 ‘기존 체제’ 벗어나야 할 때

신승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신승관
한국무역협회

과거 같은 양적 성장은 불가능
고부가 중심 수출로 전환해야
고급 소비재 수출로 방향 틀고
국내 생산 기업 늘리는 정책도

국제무역연구원장

지난해 우리 수출은 1958년 이후 처음으로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올해도 도널드 트럼프 정부의 보호무역정책에 따른 미·중 간 통상분쟁 가능성,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의 향방 등 세계교역을 위축시킬 수 있는 불안요인들이 잠재하고 있는 상황이다.

80년대 중반 이후 세계무역은 중국·인도의 세계시장 참여와 글로벌화로 인한 국제 분업구조 확대로 큰 호황을 누려 왔지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저성장 기조와 함께 세계무역은 정체되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사물인터넷(IoT)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에 의한 제조업 혁신은 글로벌 가치사슬을 단축시켜 무역규모 자체를 축소시킬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과거와 같이 무역이 양적으로 성장하기 쉽지 않은 시대에 수출은 어디에서 새로운 동력을 찾아야 할 것인가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새로운 상황에서는 수출액보다는 수출의 질적 개선, 즉 같은 금액의 수출을 하더라도 더 많은 부가가치가 국내에서 발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 수출의 부가가치율은 58% 수준으로 80%가 넘는 일본·미국과 75%에 달하는 독일보다 크게 낮은 상황이다. 이렇게 부가가치가 낮은 것은 자원부족으로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핵심 소재·부품의 해외의존도가 여전히 높으며 소비재·서비스 산업에서 경쟁력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수출 구조를 고부가가치 중심으로 성숙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한데 무엇보다 주력 수출산업의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필요하다. 탄탄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우리 수출을 이끌어 왔던 반도체·휴대전화·자동차 등 주력 수출품목이 최근 중국과의 기술격차 축소로 세계 시장에서 시장점유율이 하락하는 등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 표준화된 상품 생산, 범용 중간재 수출은 레드오션이 돼 가고 있고 후발국의 거센 추격을 막아 내기도 쉽지 않다. 혁신적 기술의 접목, 제조와 서비스의 결합을 통한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의 개발, 창조적 아이디어를 통해 쉽게 모방하기 어려운 제조업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고급 소비재의 수출 비중도 늘려야 한다. 지금 우리 수출에서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12.4%에 지나지 않아 독일(27.1%), 미국(17.1%), 일본(18.7%) 등 선진국의 수준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세계 경제성장이 정체되고 글로벌 밸류 체인이 성숙되면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부분이 중간재 교역인 반면 소비재는 중국·인도 등 신흥국을 중심으로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국경 간 전자상거래가 확산되면서 교역 규모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해 수출이 크게 부진한 가운데서도 화장품·의약품·식품 등 5대 소비재 수출은 13.6%의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따라서 아시아뿐 아니라 중남미까지 확산되고 있는 한류를 통해 조성된 한국 문화에 대한 공감대를 기반 삼아 한국인의 독특한 감성과 아이디어가 투영된 고급 소비재를 개발해 소비재 수출을 확대하는 것도 우리 수출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 산업의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서비스 산업은 일자리 창출과 내수 경제 활력 제고에 미치는 효과가 크고 세계 서비스 무역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 수출의 성장 잠재력이 크다. 특히 디지털 경제가 확산되면서 상품 외에 콘텐트·데이터 등 무형의 재화와 서비스의 교역이 증가할 것으로 보여 서비스 부문에서 수출의 새로운 동력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서비스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고 관광객 유치, MICE와 의료관광 활성화 등 국내로 유입되는 수요의 확대뿐 아니라 글로벌 경쟁기반이 마련된 서비스 산업의 해외시장 진출도 확대해 나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우리 기업이 국내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해외 글로벌 기업이 한국으로 모여들게 해 많은 부가가치가 국내에 머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로 나가는 기업에는 세금폭탄이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는 한편 미국 내에서 고용을 창출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파격적인 법인세 인하로 미국 기업의 ‘리쇼어링’을 추진하고 있다. 독일·일본 등 선진국도 제조업 혁신, 법인세 인하, 규제 완화 등 기업 환경 개선을 통해 해외로 나간 기업을 불러들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많은 기업이 사내 유보금을 쌓아 놓고 투자를 꺼리는 것을 두고 리스크를 감수하는 기업가정신이 부족하다고 비난만 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일본의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교세라의 창업주 이나모리 가즈오는 ‘위기가 찾아오면 기뻐하라’며 혼돈과 침체의 시대가 오히려 과감한 혁신으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긴 안목과 호흡으로 기업은 수출의 본질적인 경쟁력을 높이고 정부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다.

신승관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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