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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 음악계도 작곡으로 승부할 때”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최근 리사이틀이 화제였다.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으로 단번에 클래식계 아이돌로 떠오른 그의 ‘금의환향’ 공연은 예매시작 9분 만에 전석매진되며 인산인해를 이뤘다. 그런데 이틀간의 연주곡은 알반 베르크와 슈베르트, 쇼팽.


한국 연주자들이 각종 콩쿠르를 휩쓸며 주목받고 있지만, 그들이 우리 창작곡을 연주한다는 얘기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한다. 세계 최고 실력을 지닌 연주자들이 멋지게 연주할 만한 창작곡이 전무하다시피한 실정인 것이다.


아르코(ARKO) 한국창작음악제(이하 ‘아창제’)는 그런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2007년 시작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특성화 사업이다. 국악·양악을 망라한 창작관현악 작곡과 발표의 장으로, 서양 클래식이 메인인 한국 음악시장에서 창작곡에 대한 관심을 고양시켜 왔다. 이제 아창제 발표곡들은 대한민국 작곡상을 휩쓸고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2016시즌 국악부문 발표회는 만석을 이뤘다. 평단과 대중의 고른 호응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23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양악부문 발표회도 한국적 정서를 살린 ‘두 대의 대금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길’ 등 총 6곡의 창작곡을 선보인다.


2012년부터 아창제를 이끌고 있는 황병기(81) 추진위원장은 “우리 청중이 몇 년 새 크게 변화했다. 외국 작곡가들이 창작곡 열기가 뜨거운 한국을 부러워한다. 한국 음악계 앞날이 밝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양에선 살아있는 작곡가의 음악이 전혀 주목을 못 받아요. 현대음악은 난해하거든요. 사람들이 콧노래처럼 따라부를 수 없으니 쫓아가지 못하게 된 거죠. 1910년대 클래식 주조를 이룬 쇤베르크의 무조음악이 그 주범인데, 그래서 68년에 백남준 선생이 이미 ‘1930년대부터 서양음악 중심은 쇤베르크가 아니라 루이 암스트롱이 됐다’고 했었죠.”


우리 창작곡도 그렇지 않나요.


“우리 것도 조금 난해하긴 하지. 하지만 심사위원에 작곡가와 지휘자를 동수로 배치했어요. 연주 위주로 곡을 보고 청중을 대변하는 지휘자들이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서죠.”우리 연주자들이 연주할만한 창작곡이 없는데요.


“초창기 우리 서양음악 연주자는 피아노 아니면 바이올린이었죠. 60년대 뉴욕에 가니 줄리아드 학생 중 가장 우수하고 수도 많은 게 한국학생이래요. 근데 일본은 수가 적어도 악기가 다양해서 모이면 앙상블 곡을 연주할 수 있지만 우리는 둘 중 하나니 모여도 합주가 안 됐어요. 그나마 좋은 지휘자들이 나오면서 발전하게 됐는데, 이제 작곡이 나와줘야 돼요. 작곡이 근본이니까. ARKO가 문예진흥기금 때부터 음악창작 지원을 한 건 아창제가 최초였는데, 상당히 뜻있는 행사라 생각해요.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창작을 해야 한다는 국가적 배려니까.”


2012년에 직접 국악부문을 신설했는데, 양악보다 국악부문의 인기가 좋다죠.


“클래식 팬일수록 현대음악을 싫어하거든요. 18, 19세기 음악만 숭배하지, 지금 살아있는 사람 곡은 절대 안 들어요. 국악팬들은 오히려 열려있죠. 그래서 클래식 작곡가들이 국악 작곡 발표회를 보면 굉장히 부러워해요. 열기가 있고 뜨겁다고.”


국악관현악은 서양 오케스트라를 모방해 급조됐기에 종종 한계를 지적받는데요.


“내가 보기에도 그래요.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이 1965년에 처음 생기면서 시작된 건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제 나름대로 국악관현악 고유의 맛을 만들기 시작한 것 같아요. 요즘 곡들을 보면 제법 어법이 독특하거든.”


요즘 양악은 국악 정서를 찾고, 국악은 탈국악화를 도모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바라는 이상은 국악과 양악의 구분을 없애고 한국 관현악곡으로 나가는 거죠. 그 단계가 아직 한참 멀었기에 구별합니다. 소위 크로스오버란 걸 보면 그 근본은 클래식이 아니라 대중음악이거든요. 클래식은 20세기 후반 들면서 베토벤 같은 거장이 안 나오게 됐어요. 갑자기 작곡가 재주가 떨어진 게 아니라, 음악이란 사회의 반영인데 이미 그런 사회가 아닌거죠. 베토벤이 서양음악의 영웅이 된 것도 19세기 서유럽 시민들이 100년 걸려 만든 건데, 이제 그런 웅변도 안 통하는 시대가 된 거죠.”


우리 창작관현악 대표곡이 아직도 안익태의 ‘코리아 환타지’일 정도로 레퍼토리를 갖추지 못한 원인을 그는 창작곡에 대한 미학적 관점과 교육에서 찾았다. 오히려 북한에 좋은 창작곡이 풍부하다고도 했다. “북한은 미학 자체가 달라요. 전통을 중요시하지만 옛 곡을 그대로 연주하는 건 자주성이 없다고 보죠. 외국 공연에서도 반드시 자기네 작품을 연주해요. 또 모든 기악곡은 그 근원이 성악이어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익숙한 민요를 관현악 어법으로 만들어야지, 노래와 관계없는 ‘음악을 위한 음악’은 안 돼요. 노동자들이 딱 듣고 좋아하고 이해해야 한다는 거죠. ‘아리랑’ ‘도라지’처럼 구체적이고 멜로디가 귀에 들어와야 좋은 음악이라는 생각이죠.”


그럼 대중음악과 경계가 없겠어요.


“맞아요. 북한은 작곡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민요로 대중에 어필해야 한다고 교육받아요. 그게 안 되면 도태되고 숙청되죠. 반대로 우리는 대학 작곡과 입학에서 졸업까지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를 벗어나느냐, 국제화되는 훈련만 받죠. 그런 걸 쓰면 아예 대학에도 못 들어갈 것이고.”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은 것”]
작곡 개념이 없던 국악에 처음으로 작곡을 시도한 ‘창작국악의 창시자’인 그는 ‘비단길’ ‘침향’ ‘미궁’ 등 기존 가야금 산조와 구별되는 수많은 명곡을 남겼고, 지금도 창작 작업을 놓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예술원 지원으로 올해 내로 신곡을 발표할 계획이지만, 아직 모색 단계라고 했다.


창작의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그림이나 시에서 올 수도 있고, 순수한 사색에서 오기도 하죠. ‘미궁’의 경우는 외국의 어느 현대음악보다 파격적으로 쓰려고 기법적인 면을 먼저 찾은 것이고. 전통적인 연주법이 아니라 가야금의 잠재적인 현대성·전위성에 초점을 맞춰 전혀 색다른 방식의 연주로 생명체로서 인간의 주기를 표현했던 곡이죠.”


지난 연말엔 평소 ‘미궁’을 흠모해 오던 배우 유아인의 러브콜로 함께 컬래버래이션 작업을 하기도 했다. “그 친구를 잘 몰랐는데, 바로 이 방으로 찾아왔어요. 자기가 17살 때부터 그 곡을 좋아했다고, 전시회 오프닝에 꼭 연주해 달라고 하더군요. 유아인 뿐 아니라 아티스트들이 많이들 좋아하는 곡이죠.”


오는 3월 성남 시립국악단 신춘음악회에 참여하는 등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그지만 “내 음악을 많이 듣기 바라지 않는 유일한 사람일 것”이라며 “내 곡이 후세까지 연주되길 바라지도 않는다”고 했다. 무슨 뜻일까.


“만해 한용운을 좋아하는데, 시집 『임의 침묵』후기에 이런 말을 썼어요. 후손에게까지 내 시를 읽히고 싶은 생각이 없다. 후세 사람들이 자기 시를 읽으면 이미 작년에 진 국화 꽃송이를 코에 비비는 것과 같다는 거죠. 백남준도 뉴욕에서 같이 길을 걷다가 MoMA를 가리키면서 ‘저기에 내 작품이 들어가면 망하는 거’라고 하더군요. 뮤지엄에 들어가는 순간 아방가르드가 아니라는 거죠.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는 주장인데, 내 생각도 같아요.” 몸은 늙어도 음악만은 늘 새롭길 바라는 그는 영원한 아방가르드 예술가였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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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