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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윷놀이·연날리기·투호…사촌들과 팀 나눠 대결 모드로 즐겨봐

설날이 코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즐거워야 할 설이지만 어떤 친구들에게는 심심하기 짝이 없는 날일 수도 있어요. 집안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나면 할 게 없어서 TV를 보거나 영혼 없이 멍하게 보내는 경우도 있겠죠. 오래전 우리 조상님들은 뭘 하고 놀며 설 연휴를 보냈을까요? 소중은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타임머신을 만들었습니다. 목적지는 조선 한양, 시간대는 1777년(정조 1) 정유년 설날입니다. 과거로 떠나 조상들과 신나는 민속놀이 대결을 벌인 소중 학생기자들의 행적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한국민속촌을 찾은 김예찬·이준량·서여진·이지민 학생기자·모델이 전기수·흥부(거지)·해님·포졸(왼쪽부터)과 설 맞이 민속놀이 대결에 앞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놀이에 쓰이는 윷과 투호 막대기·연 등의 도구가 눈에 띈다. 오종택 기자

한국민속촌을 찾은 김예찬·이준량·서여진·이지민 학생기자·모델이 전기수·흥부(거지)·해님·포졸(왼쪽부터)과 설 맞이 민속놀이 대결에 앞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놀이에 쓰이는 윷과 투호 막대기·연 등의 도구가 눈에 띈다. 오종택 기자

소중 학생기자단이 도착한 240년 전 설날 정오의 한양 날씨는 지금처럼 무척 추웠습니다. 바람을 막으려 옷깃을 부여잡고 주변을 살펴보니 세배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온 백성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어요. 고운 한복을 입고 어디론가 종종걸음으로 향하는 한 소녀를 붙잡고 준량이가 “어디를 그렇게 바쁘게 가세요?”라고 물었습니다. “덕담을 들었으니 신명나게 놀이 한 판 벌이러 가야죠!” ‘해님’이라는 이름의 소녀를 따라 관아(관원들이 정무를 보던 건물) 앞에 도착한 학생기자단은 삼삼오오 모여 민속놀이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봤어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윷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요즘은 보기 힘든 연날리기나 투호를 즐기는 사람들도 보였죠.

[소중 리포트] 설 민속놀이

오래전부터 민간에는 각종 오락이나 연희(말과 동작으로 여러 사람 앞에서 재주를 부림), 곡예 따위의 다양한 민속놀이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양반보다는 농민들을 중심으로 전승돼 집단성이 강하고, 낙천적이며 긍정적인 정서가 담겨 있는 놀이입니다.
사람이 많으면 더 즐거운 민속놀이. 학생기자팀은 조상팀과 4 대 4 윷놀이 대결을 했다. 오종택 기자

사람이 많으면 더 즐거운 민속놀이. 학생기자팀은 조상팀과 4 대 4 윷놀이 대결을 했다. 오종택 기자

이관호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은 “우리나라는 농사를 주로 지었기에 그에 관련된 시기에 따라 세시풍속으로서의 민속놀이가 발전해 왔다”고 말했습니다. 종류도 무척 다양해요. 민속놀이는 전해져 내려오는 집단의 성격에 따라 놀이패가 주로 하는 탈놀이·굿놀이와 같은 전문인들의 놀이, 백성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일반인들의 놀이로 분류되죠. 연령층에 따라 어른 놀이와 아이 놀이로도 구분되고, 인원에 따라 집단 놀이와 개인 놀이로 나눌 수도 있어요. 예를 들면 줄다리기는 집단 놀이고, 연날리기는 개인 놀이에 속하는 것입니다. 또 놀이를 하는 시기에 따라 세시 놀이와 평상시 놀이 등으로 나뉘어요.

이 중 세시 놀이는 설·추석과 같은 특정한 시기에 하는 놀이입니다. 정초(그 해의 맨 처음)엔 주로 연날리기·널뛰기·윷놀이 등을 하고, 대보름엔 줄다리기·차전놀이를, 단오엔 격구·씨름· 그네, 추석엔 거북놀이·강강술래 등을 즐겨요. 오랜 시간이 흐르며 잊혀진 놀이도 많지만 지금까지 전해져 온 우리나라의 민속놀이는 100여 가지가 넘습니다. 무척 다양하지만 대부분 민속놀이는 한 해 농사가 풍년을 거두길 기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해요.

해님이를 따라 민속놀이가 벌어지는 현장 한복판에 도착한 학생기자들은 세시 놀이인 윷놀이와 연날리기를 눈여겨봤어요. 이때 한쪽 구석에서 포졸 한 명이 다가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학생기자들을 쳐다봤습니다. 포졸과 같이 있던 전기수(이야기책을 전문적으로 읽어 주던 사람)도 뒷짐을 지고 걸어왔어요. 근무를 마치고 관아 밖으로 나와 전기수와 함께 화살을 병 속에 던져 승부를 가리는 놀이인 투호를 즐기던 포졸은 240년 후의 미래에서 온 학생기자들과 민속놀이로 대결을 펼칠 것을 제안했어요. 마침 지나가던 거지 한 명이 자신도 끼워달라며 놀이에 합류했죠.

종목은 윷놀이·연날리기·투호, 방식은 ‘조상팀’과 ‘학생기자팀’으로 나뉜 4 대 4 단체전입니다. 학생기자들은 해님이·포졸·전기수·거지로 구성된 4명의 조상팀과 민속놀이 대결을 펼치며 제대로 된 놀이 방식을 배운 뒤 설 연휴 때 가족들과 함께 즐기겠다고 다짐했어요.
 
윷놀이
첫 종목은 윷놀이입니다. 관아 옆에 마련된 공터 모래밭 가운데에는 거대한 윷판이 자리하고 있었어요. 어린이 몸통만 한 거대한 윷과 함께 말이죠. 전기수가 안경을 고쳐 잡으며 윷놀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시작한 후 놀이를 진행했습니다. 치열한 경쟁 끝에 학생기자들이 간신히 승리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윷놀이는 정월 초하루에서 보름까지 나무로 만든 윷을 던지며 노는 놀이입니다. 크게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 놀이입니다.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을 통해 ‘윷놀이는 고려의 유속(예로부터 전해 오는 풍속)’이라 했습니다.

중국의 『북사』와 『태평어람』 등의 자료에는 부여의 놀이가 소개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윷놀이의 기원은 삼국시대 이전으로 보입니다. 이후 백제·고구려·신라에 윷놀이가 전승됐을 것으로 추측되고요. 또 고려 후기 학자인 이색은 『목은집』에서 윷놀이를 두고 ‘변화가 무궁하고 강약을 가릴 수 없는 이변도 생겨서 턱이 떨어질 지경으로 우습다’고 했습니다.
 
윷놀이는 윷과 윷판, 윷말만 있으면 어디에서든지 할 수 있는 놀이입니다. 윷의 종류는 가락윷·밤윷·콩윷 등으로 구분됩니다. 윷이 무슨 재료로 만들어졌느냐에 따라 구분하는 것인데요. 가락윷에는 장작윷과 싸리윷이 있습니다.

장작윷은 길이 20㎝ 정도에 직경 3~5㎝의 소나무 두 개를 쪼개 만들고, 싸리윷은 길이 10㎝에 직경 2㎝ 가량의 싸리나무를 쪼개 만듭니다. 가락윷은 대체로 중부지방에서 많이 가지고 놀았다고 해요.

또 밤윷은 굵기가 새끼손가락 정도, 길이는 3㎝의 윷을 손으로 움켜쥐고 흔들어 바닥에 붓는 방식으로 노는 도구입니다. 주로 경상도 등 남부지방에서 유행했던 윷이죠. 콩윷이나 팥윷은 콩이나 팥알의 절반을 쪼개 만든 윷으로 주로 북부지방에서 많이 가지고 놀았습니다.

윷 자체에도 여러 의미가 있어요. 조선시대 학자인 김문표는 『중경지』를 통해 윷판 중앙은 하늘의 북극성이고, 윷판의 안쪽부터 바깥까지를 하늘, 안의 모난 모양은 땅, 윷판을 이루는 점들은 별자리를 뜻한다고 했습니다.

또 윷판의 네 점과 가운데 점을 오행이라는 학문에 견줘 설명하기도 했어요. 윷말이 윷판을 돌아 나오는 모습을 춘분·하지·추분·동지에 비유했죠. 민속놀이가 한 해 농사와 관련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왜 그렇게 비유했는지 이해가 되는 것도 같습니다. 이 과장은 “윷말의 도·개·걸·윷·모’는 각각 돼지·개·양·소·말 등의 동물을 뜻하기도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도구가 준비되면 서로 편을 나눈 후, 윷을 던져 나온 윷패에 따라 한 명씩 돌아가면서 말을 옮겨 먼저 4동이 나면 이기는 방식입니다. 4동이란 말 4개가 윷판 한 바퀴를 돌아 나오면 승리하는 것을 뜻합니다. 야구로 치면 주자가 안타나 홈런을 쳐 베이스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간단한 도구와 단순한 방법으로 놀이가 이뤄지지만, 노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변수들이 재미를 돋우기도 하고 탄식을 자아내기도 하죠.

편을 나눌 때 구성은 다양하게 할 수 있습니다. 과거엔 마을이나 문중(성과 본이 같은 가까운 집안) 단위로 편을 나누기도 했고, 학생기자들처럼 4 대 4의 개인 단위로 나누기도 했어요. 편을 나눌 때는 윷을 던져 가르기도 하고, 마을의 골목이나 도랑을 경계로 가르기도 했습니다.

문중 윷놀이를 할 때는 주로 나이 순으로 윷을 던져 편을 나눴다고 하네요. 장소가 결정되고 편을 가르면 바로 윷놀이가 시작됩니다. 먼저 윷을 던져 선후의 차례를 정한 후 상대편과 교대로 윷을 던져서 나오는 윷패에 따라 윷말을 옮기며 진행하면 됩니다. 1개만 뒤집어진 ‘도’는 1칸, 2개 뒤집어진 ‘개’는 2칸, 3개인 ‘걸’은 3칸, 4개인 ‘윷’은 4칸, 모두 앞면이 나온 ‘모’는 5칸을 움직이게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윷이나 모가 나오면 한 번 더 던질 수 있으며, 앞서가는 말과 같은 칸에 말이 놓여지면 상대를 잡아 다시 던질 수 있습니다.
 
학생기자단의 놀이 한 줄 평(★은 난이도)
김예찬 ★★★
난이도를 나누자면 ‘중’이라 할 수 있다. 내가 던진 윷패가 뜻대로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서여진 ★★
변수가 많아서 예측하기 힘들었다. 가족들과 함께하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이준량 ★★★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재미있을 듯. 같은 편 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이지민 ★★★★★
어려우면서도 어떻게 생각하면 단순한 게임이다. 화합과 웃음을 줄 수 있는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이는 놀이다.
 
투호
투호는 삼국시대부터 행해진 민속놀이로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서여진 학생모델이 투호통에 화살을 던지고 있다. 오종택 기자

투호는 삼국시대부터 행해진 민속놀이로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 서여진 학생모델이 투호통에 화살을 던지고 있다. 오종택 기자

아쉽게 패배한 조상팀은 다음 대결을 위해 학생기자들을 데리고 관아 옆으로 이동했습니다. 수상한 통과 바닥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화살이 눈에 띄었죠. 이번에 할 민속놀이는 투호입니다. 꼭 화살이 아니더라도 긴 막대기와 통만 있으면 돼 집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있습니다. 포졸과 거지는 서로 어깨동무를 한 채 자신들을 ‘프로 투호꾼’이라 지칭하며 반드시 이기겠다는 전의를 불태웠습니다. 이번엔 16대 11로 조상팀이 이겼네요.
 
투호는 일정한 거리에 병을 놓고 편을 갈라 병 속에 화살을 던져 넣는 놀이입니다. 투호는 중국 한나라 이전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요. 실제 『춘추좌전』에 따르면 중국 진나라 제후와 제나라 제후가 술을 마시는 가운데 투호를 즐겼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당나라 시대에는 손님을 접대할 때 즐겨 하는 놀이로 활용됐다고 해요. 무기의 일종인 화살을 사용하기 때문에 주로 왕실이나 귀족 계층의 놀이로 발달해 왔습니다.

투호가 언제 우리나라에 도입됐는지 역시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의하면 ‘고구려의 풍속에 연회를 즐기고 투호와 축국(가죽 주머니로 공을 만들어 차는 놀이)을 행했다’고 기록돼 있어요. 삼국시대에 이미 투호가 시행됐고, 고구려와 백제에서 크게 성행했음을 알 수 있죠. 고려 초기에는 한동안 하지 않았다가 예종 때 송나라에서 투호에 사용되는 놀이 도구를 보내오면서 보문각 학사들에게 투호 방법에 대한 그림을 그려 권장했다는 기록도 있어요.
양반들의 여가 활동으로 인기였던 투호놀이를 그린 신윤복의 임하투호.

양반들의 여가 활동으로 인기였던 투호놀이를 그린 신윤복의 임하투호.

조선시대에는 유교의식의 확산과 더불어 투호가 다시 유행하기 시작했어요. 점잖고 고상한 놀이라는 인식과 함께 유교적 예법을 익히는 수단으로서 왕실은 물론이고 양반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며 백성들 사이에서도 즐겨 하는 일반적인 놀이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대중화되면서 투호가 담고 있는 유교적 예법은 거의 간소화되거나 사라졌죠. 지금의 투호가 명절 때마다 고궁 등지에서 전통놀이로 선보이고 있는 것은 이런 시대의 변화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1983년에 만들어진 1000원짜리 구권 지폐의 앞면에는 퇴계 이황의 초상화와 사슴, 그리고 투호에 쓰이는 통과 화살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만큼 조상들이 중요시 여기던 놀이였죠. 투호는 단순한 오락이 아니었습니다. 주인과 손님이 술자리를 가질 때 예법을 실천하는 수단으로 권장되고 장려됐습니다.

사극을 보면 점잖은 양반들이 활쏘기를 하며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활쏘기가 덕을 함양하는 수단으로 권장됐던 것과 마찬가지로 투호 역시 마음을 다스리는 데 도움을 주는 놀이란 인식이 강했습니다. 화살을 던져 통에 들어가게 하려면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 후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 과장은 “투호는 당시 양반들이 집중력을 기르고 스트레스를 푸는데 즐겨 활용했다”고 말했습니다.

조선 성종 10년에는 ‘투호의’라는 예법이 제정되고 권장되면서 궁중행사의 하나로 관례화 되기도 했습니다. 투호는 왕실과 한양의 양반 계층뿐 아니라 지방의 향교를 중심으로도 활발히 행해졌습니다. 성종 임금은 투호가 백성들에게까지 널리 보급되고 성행할 수 있도록 궁중행사는 물론 각 지방 모든 행사에서 투호를 하도록 권장했어요. 그 결과 설과 같은 명절이나 집안에 큰 잔치가 있는 날이 되면 일가친척이 모두 모여 투호를 하는 풍경도 펼쳐졌죠. 무엇보다 투호는 우아하고 예절을 바탕으로 하는 놀이라는 게 특징입니다.
 
우선 투호통과 화살을 준비합니다. 투호통이 없으면 쓰레기통이나 빈 분유통처럼 뭐든 들어갈 수 있는 형태를 갖춘 도구를 준비해도 괜찮습니다. 화살이 없다면 나무젓가락을 이용해도 좋고요. 한 사람당 12개의 화살을 던지는데, 1개가 들어가면 10점씩 점수가 주어지는 방식이 사용됩니다. 물론 꼭 12개를 준비할 필요는 없어요. 화살의 숫자는 놀이하는 사람의 합의 하에 조정이 가능합니다.

통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원래 2살 반, 즉 화살을 2개 놓고 반개를 더한 정도의 거리에서 던지는 것이 정석입니다. 하지만 굳이 이를 지키지 않고 가족끼리 적당히 규칙을 정해 1~1.5m 거리에서 던져도 상관 없습니다. 이렇게 화살을 던져 통에 집어넣어 가장 많은 점수를 확보한 팀이 승리하는 방식입니다.
 
학생기자단의 놀이 한 줄 평(★은 난이도)
김예찬 ★★★★★

가장 재미있는 놀이였다. 바람의 세기를 예상해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더 흥미를 느꼈다.

서여진 ★★★
난이도가 가장 높은 놀이라고 생각한다. 집중력이 엄청 필요하다.

이준량 ★★★
화살을 던질 때 안정된 자세로 던져야 들어갈 확률이 높다.

이지민 ★★★★
가장 자신 있는 놀이였는데 1점도 받지 못해 아쉬웠다. 모든 연령층이 즐기기 좋다
 
민속놀이 대결을 마친 학생기자단과 한국민속촌 캐릭터들이 초가 담장에 올라가 환하게 웃고 있다. 오종택 기자

민속놀이 대결을 마친 학생기자단과 한국민속촌 캐릭터들이 초가 담장에 올라가 환하게 웃고 있다. 오종택 기자

연날리기
마지막 대결 종목은 연날리기입니다. 2017년엔 연날리기를 별로 하지 않는다는 학생기자들의 말에 조상팀이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어요. 방패연과 가오리연을 넉넉히 준비해 연날리기 명소인 한양 청계천변으로 향한 이들은 바람을 맞으며 연을 날리기 시작했습니다. ‘연 높이 날리기’로 대결을 펼쳤는데, 하늘 높이 날아오른 연을 보자 대결은 까맣게 잊고 모두 즐겁게 웃으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연날리기는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와 어린아이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매년 정초가 되면 즐길 수 있는 놀이입니다. 연날리기에 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인 『삼국사기』에 따르면, 647년 김유신 장군이 비담과 염종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연을 만들어 전략적으로 이용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하늘의 별이 떨어지자 김유신군의 사기가 크게 저하됐는데, 김유신 장군이 연에 등불을 매달아 띄워 마치 별이 다시 솟아오르는 듯한 연출을 한 것이죠.

또 조선시대 『나재집』에 실린 ‘지연’이라는 시에도 연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머리 부분은 화살촉과 같고 꼬리는 깃발과 흡사하네’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연날리기는 원래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됐습니다. 그러다가 점차 연날리기를 놀이의 일종으로 여기기 시작했다고 해요.

조선시대엔 주로 음력 12월부터 연을 날리기 시작해 정월 대보름까지가 본격적이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지며 바람이 많이 불 때 연이 잘 떠올랐기 때문일까요. 지금도 연날리기는 겨울에 즐겨 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연의 종류는 형태와 문양에 따라 분류되며 약 100여 종에 이를 정도로 다양합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방패연은 네모난 직사각형 중앙에 둥글게 ‘방구멍’이 뚫려 있습니다. 방패연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독특한 형태로, 연의 가운데에 방구멍을 내 맞바람의 저항을 줄이고 뒷면의 진공상태를 즉시 메워주기 때문에 연을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합니다. 강한 바람을 받아도 잘 피해갈 수 있게 설계돼 있는 것도 특징입니다. 날리는 사람의 손놀림에 따라 상승과 하강, 좌우로 빙빙 돌기, 급상승과 급강하, 전진과 후퇴가 가능하죠. 얼마든지 높이 날릴 수도 있고 빠르게 날릴 수도 있습니다.

연 이마 부분에 둥근 꼭지를 오려서 붙인 ‘꼭지연’도 있습니다. 꼭지연은 바탕이 흰색이며, 꼭지의 색에 따라 연의 이름이 결정됩니다. 꼭지가 검은색이면 먹꼭지, 푸른색이면 청꼭지가 되는 식이죠. 반달연은 이마 가운데에 반달 모양의 색지를 오려 붙인 연을 말합니다. 치마연의 경우 연의 위는 흰색 그대로 놓고, 아래 부분에만 여러 색을 칠한 것입니다. 마치 여인들이 입던 치마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역시 치마 부분의 색에 따라 먹치마·청치마·홍치마·황치마 등의 이름이 붙습니다.

연을 만들 땐 뼈대가 되는 ‘대’와 종이가 필요합니다. 대는 대나무로 만들고, 종이는 보통 창호지를 사용합니다. 요즘은 비닐을 종이 대신 사용하기도 하죠. 방패연을 기준으로 했을 때 종이의 가로·세로 비율을 1 대 3이 되도록 직사각형으로 자른 후 종이 한 가운데에 연 길이 3분의 1이 되는 둥근 구멍을 만들면 됩니다. 여기에 가로·세로·대각선으로 대를 붙인 후 얼레에 감은 실을 연과 연결하면 완성됩니다.
연 높이 날리기 대결을 펼치는 학생기자단과 한국민속촌 캐릭터들. 오종택 기자

연 높이 날리기 대결을 펼치는 학생기자단과 한국민속촌 캐릭터들. 오종택 기자

겨울 세시풍속으로 자리하게 된 연날리기 놀이에는 ‘연줄 끊어먹기’와 ‘연 높이 날리기’가 있습니다. 연줄 끊어먹기는 일명 ‘연 싸움’이라고도 불립니다. 2개 이상의 연을 띄운 후 서로 교차시켜 연실을 비벼 끊어버리는 것입니다. 연줄 끊어먹기를 할 땐 바람의 흐름을 잘 파악해 자신의 연을 상대편 연실에 거는 것이 유리합니다.

또 연 높이 날리기는 연을 얼마만큼 멀리, 높이 띄울 수 있는가를 겨루는 놀이입니다. 바람을 잘 타기만 한다면 500m 이상 연을 띄울 수도 있다고 해요. 물론 높이 올라갈수록 연에 가해지는 바람의 세기가 커지기 때문에 파손이나 분실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죠. 추운 겨울에 밖에 나가 연을 날리는 활동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줍니다. 넓은 공터에 나가 신나게 연을 날리며 가족들과 대결을 펼쳐도 좋겠죠.
 
학생기자단의 놀이 한 줄 평(★은 난이도)
김예찬 ★
바람을 잘 타지 못해 연이 추진력을 얻지 못했다. 잘만 하면 무척 쉬울 것 같다.

서여진 ★★★
하늘 높이 솟은 연을 바라보면 마음이 어쩐지 평온해지는 것 같다.

이준량 ★★★★
연을 띄우기 위해 빠른 속도로 달리느라 힘들었다. 띄우는 것이 무척 어렵다.

이지민 ★★★
바람 세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 컴퓨터 게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건강한 놀이라 생각된다.

글=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oh.jongtaek@joongang.co.kr
동행취재=김예찬(용인 동백초 5)·서여진(용인 신월초 4)·이준량(성남 서현초 5)·이지민(군포 산본중 1) 학생기자·모델
촬영협조=한국민속촌, 참고도서=『한국세시풍속사전』,
도움말=이관호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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