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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2월호] "몇 시간만 앉아 있으면 30만원 준다더라"

남성은 의사·변호사, 여성은 어리고 예쁘면 ‘의무등판 선수’로… 
업체 난립과 결혼기피 풍토 맞물려 모객 경쟁 치열해져
[중앙포토]

[중앙포토]

#1 그 남자 이야기
“데이트 비용으로 쓰세요. 식사만 하고 오시면 돼요.”

심층 취재 │ 그 남자, 그 여자의 수상한 ‘맞선 알바’

결혼정보회사 커플매니저가 사법연수원생이던 박정우(가명·30대·변호사) 씨에게 현금 15만원을 쥐어주면서 한 말이다.

이 커플매니저는 “부유한 집안의 자제를 자주 소개해주겠다”며 여러 차례 맞선 자리를 권유했다. 그때마다 데이트 비용으로 매번 10만여 원을 줬다. 장소는 서울 청담동 레스토랑이나 호 텔 등이었다. 20대 후반~30대 초반 여성들을 10여 차례 만났다. 대부분 부모님이 전문직이나 고위 공직에 있는 자산가들이었다. 외제 차는 기본이고, 개인 소유 헬리콥터를 보유한 경우도 있었다.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들 같았다. 간혹 마음에 드는 여성이 있으면 관계를 이어가기도 했다. 박씨는 주변 동기들까지 커플매니저에게 소개해주며 한동안 공짜 데이트를 즐겼다.

한 결혼정보업체 커플매니저와 친분이 있던 치과의사 김지훈(가명·30대) 씨는 이 업체에 가입 절차도 거치지 않고 프로필만 등록해 놓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건당 10만~15만원을 받고 맞선 자리에 나섰다. 상대는 주로 ‘처음 가입한 회원’이나 ‘기간이 만료돼 가는 회원’이었다. 첫 만남이나 마지막 소개 자리는 회원들이 기대를 적게 하기 때문에 성사율이 낮은 게 이유라고 했다. 나가서 밥만 먹고 오면 되는 자리여서 큰 부담도 없었다. 아르바이트로도 쏠쏠했다. “동료 치과의사나 한의사 가운데는 여성 회원 한 명당 5회에 걸쳐 한 회 최대 30만원까지 데이트 비용으로 지원받기도 했다더라”는 게 김씨의 말이다.
 
#2 그 여자 이야기
“회원님을 꼭 만나보고 싶어하는 분이 있으니 잠깐만 시간을 내주세요. 이번에는 (만남) 횟수를 차감하지 않고 모든 비용을 회사 측에서 부담하겠습니다.”

지역방송 아나운서 김은진(가명·여·20대) 씨는 커플매니저의 권유에 잠시 망설였다. 상대방의 프로필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교통비를 포함해 20만원이나 되는 돈이 아쉬웠다. 못 이기는 척 나갔지만 역시나 실망만 하고 돌아섰다. “집안은 좋았지만 외모나 성격도 별로인 데다, 무엇보다 가치관이 달라 잠시 만나는 시간도 괴로웠다”고 한다. 이전에도 몇번이나 커플매니저의 부탁으로 ‘공짜 밥’을 먹기 위해 억지로 자리를 채웠던 김씨였다. ‘횟수 차감’이나 ‘비용 제공’이라는 조건은 어차피 성사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내보내는 자리라는 것을 김씨도 알고 있는 터였다. 이런 경우 더 괴로운 건 파트너의 애프터 신청을 눈치껏 정중하게 거절해야 한다는 점이다. 냉정하게 굴었다가는 상대 남성이 불만을 제기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후로도 몇 번 더 억지로 자리를 채웠던 김씨는 진정으로 만나는 사람이 생기고 나서 더 이상 그런 자리에 나서지 않게 됐다.이른바 ‘맞선 아르바이트’로 불리는 미팅 자리에 불려 나갔다는 미혼 남녀들의 이야기다. 결혼정보업체들 간 경쟁이 극심해지면서 ‘알바비’까지 쥐어주며 미팅 횟수를 채우는 상술이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성혼율’보다 ‘회원 모객’에 더 신경을 쓰는 결혼정보업체들이 벌이는 진풍경이다.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던 국내 결혼중개업체가 2012년 1180개로 정점을 찍은 이후 하향세를 보이고 있다. 4년 새 문을 닫은 업체가 300개 가량이나 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결혼 적령기의 미혼남녀들이 취업난에 시달리며 결혼정보업체를 이용하는 빈도도 감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결혼정보업체들은 파격적인 혜택을 내세워 고객 그러모으기에 나섰다. 가입 상담만 해도 항공권을 제공하고, 결혼에 성공하면 가입비의 절반을 되돌려주겠다는 조건도 내세운다. 심지어 커플매니저가 결혼을 성사시킨 회원에게 “이혼하면 연락주세요”라는 말까지 남길 정도라고 한다. 결혼정보업체는 ‘맞선 알바’의 존재를 대부분 부정했다. 그러면서도 ‘수요와 공급의 차이’로 일부 회원에게 싸게 기회를 제공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밝혔다. 조건이 좋은 회원들에게는 ‘50만~60만원에 무제한’ 등으로 마케팅을 한다는 것이다. 회원 확보가 시급한 신규 업체나 중·소 업체로서는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라고 토로한다. 만
남 주선비만 받는 곳도 있다.

 
‘커리어 좋은 남성’ ‘외모 뛰어난 여성’은 무료 가입?
업계 1, 2위를 다투는 G결혼정보회사의 커플매니저는 “메이저 회사에선 절대 (아르바이트가) 있을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이 매니저는 “인증 시스템에 따라 등본·가족증명서(미혼확인용)·재직증명서·소득증명서 등 각종 증명서를 필수적으로 제출받는다. 그런 사건이 하나라도 새나간다면 회사로서는 엄청난 타격이다. 그동안 쌓아온 신뢰와 명성이 무너지기 때문에 위험한 일은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가끔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 ‘커리어가 좋은 남성’ ‘외모가 훌륭한 여성’의 경우 무료로 해준다는 이야기를 하는 회원도 있다”고 밝혔다.

가까운 지인이 대형 결혼정보업체에 종사한다는 장인영(여·20대·대학원생) 씨는 “유명 결혼정보업체에서도 모든 미팅을 정성스레 주선하지 못한다고 하더라. 정해진 횟수에서 몇 번은 ‘끼워넣기’ 식으로 채운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결혼정보업계에서는 이를 ‘의무등판’이라고 표현한다. 모객이 시급하다 보니 ‘성혼’ 가능성보다 횟수 채우기에 더 신경쓰는 모양새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 이른바 ‘돌려막기’다. 회원들이 요구하는 조건을 갖춘 상대를 찾다 보니 자연스레 아는 커플매니저들 사이에 해당되는 한 명의 회원을 공유하며 여러 만남의 자리에 투입하는 식이다. 이 경우 ‘돌려막기’의 주인공은 남성인 경우가 많다. “전문직이나 스펙이 좋은 남성은 무조건 무료로 가입시킨다”는 말의 진원지다.
몇 년 전에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한 결혼정보업체 가입 회원들의 직업별 등급. [중앙포토]

몇 년 전에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한 결혼정보업체 가입 회원들의 직업별 등급. [중앙포토]

이처럼 결혼정보업계에서 남성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대부분의 결혼 적령기 여성이 찾는 조건을 갖춘 남성은 적은데, 이들 남성은 같은 조건이면 어린 여성을 찾기 때문이다. 10년 경력의 한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는 “대부분의 회원이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는 게 당연한 순리다. 결혼 적령기인 30대 초·중반의 여성들이 원하는 남성의 조건은 거의 모두 비슷하다 보니 남녀 간 시장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게다가 이들 여성이 찾는 남성들은 오히려 어린 ‘돌싱녀’를 찾는다”고 말했다.
 
싫다는데 왜 자꾸 전문직 만나 보래?
S결혼정보업체 관계자는 “선천적 조건인 외모나 나이가 후천적인 직업에 밀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한다. 예컨대 ‘연봉 7000만원 이상의 안정적인 직업’을 갖춘 남성에게 나이는 그다지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고를 수 있는 여성의 연령대가 넓다는 말이다. 반대로 여성은 ‘나이’가 큰 걸림돌이다.

전문직종에 종사하는 여성이어도 결혼 적령기를 지나면 성혼률이 떨어진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의무등판 선수로 남성들이 더 많이 발탁되는 이유다. 직업군이 좋은 경우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의사·판검사·변호사·회계사·변리사 등 각광받는 전문직으로 분류되는 남성들은 서로 모셔 가려고 아우성이다. 의전원(의학전문대학원)이나 로스쿨을 졸업한 의사·변호사를 무료로 회원가입시킨 후 그 회원의 동기생들을 차례로 소개받기도 한다. 심지어 의사인 양정모(가명·30대) 씨는 공중보건의 오리엔테이션에서 단체로 결혼정보업체에 무료 가입을 권유받았다고 한다.
결혼정보업계에서는 주로 남성이 유리한 입장이다. 좋은 조건을 갖춘 남성들은 대부분 같은 조건이라도 어리고 외모가 빼어난 여성을 찾기 때문이다.

결혼정보업계에서는 주로 남성이 유리한 입장이다. 좋은 조건을 갖춘 남성들은 대부분 같은 조건이라도 어리고 외모가 빼어난 여성을 찾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더 심한 경우도 있다. 이른바 ‘돌려막기’다. 회원들이 요구하는 조건을 갖춘 상대를 찾다 보니 자연스레 아는 커플매니저들 사이에 해당되는 한 명의 회원을 공유하며 여러 만남의 자리에 투입하는 식이다. 이 경우 ‘돌려막기’의 주인공은 남성인 경우가 많다.

반면 ‘나이’와 ‘외모’ 등을 갖춰야 하는 여성 회원들 가운데서는 ‘의무등판 선수’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여성들, 특히 자격을 갖춘 여성일수록 회원 가입 자체를 예민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커플매니저가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카페에 앉아 있다 뜬금없이 결혼정보업체의 가입 권유를 받은 여성도 있다. 다른 어떤 조건도 확인하지 않은 채 “미모가 뛰어나니 의사나 변호사를 만나게 해주겠다”며 “일단 한 번만 나가봐 달라”고 부탁한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외모가 뛰어난 여성회원은 무조건 ‘아르바이트’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업체에서 주선하는 단체 미팅에는 별도로 섭외하는 ‘현장 아르바이트’가 등장하기도 한다. 상류층만 대상으로 하는 P 결혼정보업체에서는 연말이면 프리미엄 파티를 연다. 200여 명의 회원을 유명 호텔로 초청해 번호표를 부여하고 10분씩 돌아가면서 미팅을 하는 방식이다. 1회 참가비만 50만~60만원에 달한다. 그런데 1년 전 이 파티에 참석했던 이지은(가명·40대) 씨는 유독 눈에 띄던 미모의 여성을 떠올렸다. 여성 참가자 대부분 30대에 정장차림인 데 반해 유독한 여성만 20대 중반에 빨간 드레스를 입고 와서 참석한 남성들의 시선을 끌었다고 한다. 이날 미팅에 참가했던 200명의 회원 중 공개적으로 성사된 커플은 그 여성뿐이었다. 이씨는 “나중에 들으니 그 여성은 업체에서 잠깐 섭외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서도 이씨는 “믿고 싶지는 않지만 현장에서 단 한 커플이라도 나와야 한다는 업체의 의무감이 있다면 현장 아르바이트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더 심한 경우도 있다. 이른바 ‘돌려막기’다. 회원들이 요구하는 조건을 갖춘 상대를 찾다 보니 자연스레 아는 커플매니저들 사이에 해당되는 한 명의 회원을 공유하며 여러 만남의 자리에 투입하는 식이다. 이 경우 ‘돌려막기’의 주인공은 남성인 경우가 많다.
 
한국결혼문화연구소 이웅진 소장의 저서 <결혼을 부탁해>.

한국결혼문화연구소 이웅진 소장의 저서 <결혼을 부탁해>.

가입비가 비싸다 보니 회원들의 요구는 점점 까다로워진다. 커플매니저들 사이에서 꺼리는 ‘블랙리스트’도 있다. 성격이나 외모에 결함이 있거나 지나치게 과도한 조건을 요구해 ‘결혼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듯한’ 회원을 말한다. 특정 종교를 원하는 것은 예사다. ‘아나운서나 승무원 출신’ 혹은 ‘20대 여성’만 만나겠다고 배짱을 부리면 매니저들로서는 어쩔 수 없이 요구조건에 맞는 여성 회원을 의무등판으로 메우곤 한다는 것이다.

의무등판을 동원해 무성의하게 만남의 횟수만 채우려는 경우도 있다. 중산층 출신으로 일반 기업에 다니는 전희영(가명·회사원·30대) 씨가 비슷한 경험을 했다. 전씨는 일반 회원으로 1회 미팅에 가입비에서 30만원 정도가 차감된다고 했다. 그래서 상대의 조건이 자신에게도 맞는 ‘평범한 직장인’을 원했다. 하지만 커플매니저는 몇 번이나 전문직 남성을 만나보라고 강권했다. 전씨는 “전문직일수록 조건이 까다로울 것 같아 부담스럽다며 몇 번이나 거절했지만, 자꾸 전문직만 만나보라고 하니 나중에는 만남 횟수를 차감하려는 건 아닌지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룹 연락처 1개당 100만원… 조건에 따라 A-B-V로 분류
무의미한 만남 횟수 채우기는 ‘계급화’된 서비스 때문에 더욱 심해졌다. 업계에 따르면, 일반적인 결혼정보업체 가입비는 보통 200만~500만원 정도다. 환산하면 미팅 1회당 적게 잡아도 30만~50만원의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하지만 최근에는 가입비가 1000만원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 프리미엄으로 돌아선 결혼정보업체들의 적극적인 전략 때문이다. G업체 관계자는 “조만간 서비스 가격을 15% 정도 더 올릴 예정이다. 3~4년간 회원 가입비를 동결해 저렴한 편이었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저렴한 서비스라고 내민 G업체의 가입비용은 880만원이었다.

“21세기 신귀족, 노블레스! 나는 과연 노블레스인가 아닌가? 간단한 테스트를 통해 점수로 확인 수 있습니다.”

유명 결혼정보업체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홍보문구다. 부모의 재력과 직업을 중시하면서 “엘리트 회원만을 위한 결혼정보를 제공해드립니다”는 홍보문구를 내걸고 있다.
업체에서 주선하는 단체 미팅에는 별도로 섭외하는 ‘현장 아르바이트’가 등장한다. 일부 결혼정보업체는 상류층을 대상으로 프리미엄 파티를 열어 회원들의 관심을 끈다. [중앙포토]

업체에서 주선하는 단체 미팅에는 별도로 섭외하는 ‘현장 아르바이트’가 등장한다. 일부 결혼정보업체는 상류층을 대상으로 프리미엄 파티를 열어 회원들의 관심을 끈다. [중앙포토]

‘결혼중개업법’ 12조에 따르면 “결혼중개업자는 국가·인종·성별·연령·직업 등을 이유로 차별하거나 편견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내용의 광고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 하지만 결혼정보회사들은 대놓고 상류층만을 위한 만남 주선을 앞세워 홍보한다. 한 결혼정보업체는 출신학교에 따라 점수를 매기기도 했다. 학벌을 기준으로 15등급으로 나누고 부모님의 출신학교와 재산까지 포함해 점수화했다. 서울대 출신에게는 25점, 연세대·고려대 출신에게는 20점을 배점하는 식이다. 이를 아예 특화한 결혼전문업체도 늘고 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결혼정보회사는 회원들을 등급화하는 시스템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몇 년 전 인터넷에서 한 결혼정보업체가 구분한 직업별 등급표가 떠돌아 논란이 일었다. 박씨에 따르면, “A-전문직, B-일반회원, V-준재벌급 이상의 부유층, 장/차관 국회의원 자녀 등으로 알파벳에 따라 프로필이 나뉘어 있더라”고 했다. 박씨는 “300억원 이상 자산가 집안만 찾던 한 지인이 나중에 알고 보니 소개받은 상대방의 집안 재산이 150억원 정도인 것을 알고 담당 커플매니저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싸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결혼정보업체의 가입 권유를 받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는, 결혼정보업체들이 개인정보를 획득하는 방법이다. 아버지가 의사인 이정현(가명·여·20대·대학원생) 씨는 얼마 전 한 결혼정보업체로부터 불쾌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커플매니저인 듯한 사람은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은채 대뜸 “실례지만 자제분이 몇 살이냐, 만나는 사람 없으면 차 한잔하자”고 청했다고 한다. 어떻게 연락처를 알았느냐는 질문에 커플매니저는 얼버무리며 다른 정보만 캐묻더라고 했다.
 

A-전문직, B-일반회원, V-준재벌급 이상의 부유층, 장/차관 국회의원 자녀 등으로 알파벳에 따라 프로필이 나뉘어 있더라”


맞선 아르바이트 경험이 있던 변호사 박씨는 사법연수생시절 동기 한 명이 100만원을 받고 연수생들의 모든 연락처를 결혼정보업체에 넘겼다고 귀띔했다. 이후 동기들이 차례로 한 결혼정보업체로부터 ‘소환’되다시피 불려가 미팅을 권유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 여자대학의 경우 “졸업앨범은 인쇄 직후 가장 먼저 뚜쟁이들에게 넘어간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런데 전공별로 인기가 달라 ‘이과계열 학과는 스테이플러로 먼저 묶인다”는 농담도 이어졌다. 또 다른 여대 인문대를 졸업한 김모 씨는 학부 졸업 직후 한 달에 두세 번씩 휴대폰으로 미팅을 권유하는 전화가 걸려왔다고 했다.

무성의하게 ‘끼워맞추기’ 식으로 파트너를 지정하다 보니 불만도 늘고 있다. 2014년 한국소비자원에서 발표한 피해 유형별 현황을 살펴보면 회원가입 시 요구했던 배우자 조건(직업·학력·나이·재산·종교 등)이 다른 상대를 주선하거나 허위 프로필을 제공한 사례가 70%를 차지했다. L업체의 주선으로 상대 여성을 만난 회사원 이형식(가명·40대) 씨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결혼정보업체에서 상대 여성에게 자신의 소득이 연봉 1억원에 가깝다는 허위 정보를 주면서 소개를 주선했다는 것이다. 연봉이 그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 상대 여성은 자신을 사기꾼 취급하며 헤어지자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씨는 “마치 내가 허위 정보를 흘린 것처럼 의심해 정신적 고통이 컸다. 만남 횟수를 채우려고 거짓말을 했다는 게 괘씸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결혼성사 실패가 회원만의 잘못인가?
결혼정보업체에서도 나름의 고충을 토로한다. 불확실한 정보 검증력은 아직도 골칫거리다. 민간업체인 결혼정보업체로서는 개인의 신용정보나 재산사항까지 조사할 능력이 없다. 부동산등기나 금융기관 계좌 조회 등을 통해 입증 가능한 유형의 재산도 있지만, 증빙서류로 제공하는 서류 검증은 쉽지 않다. 이런 까닭에 업체들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알아보기도 한다. 은행 PB 회원일 경우 재산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식이다. 졸업증명서를 통해 본 학력으로도 재산을 파악한다. 학부 유학생은 특정한 이유로 인한 도피성 유학일 수 있지만, 재산이 ‘넉넉한’ 회원으로 분류한다.

무형 정보에 대한 검증은 더 어렵다. 요즘에는 사기결혼을 막기 위해 이혼경력 여부에 관한 정보를 요구하는 업체도 늘었지만, 파혼 사실을 고의로 숨기면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 또 특정 종교를 기피한다든지 반대로 신앙심이 깊은 회원을 찾을 때면 종교 기재를 요구하지만, 증빙서류가 없어 상대가 속이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다. 심지어 상대방 가정이 화목한지 여부까지 확인해달라고 요구하는 회원도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커플매니저들은 ‘자라온 환경이나 인성’은 자신들이 확인할 영역이 아니라고 고개를 내젓는다.
결혼정보업체 입장에서는 회원 개개인의 정보를 검증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자라온 환경이나 인성 같은 무형 정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결혼정보업체 입장에서는 회원 개개인의 정보를 검증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 자라온 환경이나 인성 같은 무형 정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중앙포토]

회원들을 더욱 좌절시키는 건 만남 실패 후 돌아오게 되는 화살이다. 약정된 횟수가 차면 기회는 끝난다. 그럼에도 만남에 실패하면 결혼정보업체에서는 회원 탓으로 돌리기 일쑤다.

별정직 공무원인 최여진(가명·여·30대) 씨가 그런 경우다. “처음 상담 받을 때는 지금 가입하지 않으면 정말 큰일난다. 성혼까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 같다”면서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일반 회원의 두 배 이상의 가입비를 요구했다. 이후 최씨는 2년간 무려 결혼정보업체 세 곳에 가입하며 2000여 만원을 썼다. 회계사·변리사·공무원, 그리고 대기업 임원등 ‘조건 좋은’ 남성들이 테이블 맞은편 의자에 앉았지만 성사율은 ‘제로’였다. 나머지의 만남도 최씨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돌싱’인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커플매니저는 ‘나이가 너무 많아 어쩔 수 없다’며 다시 그에게 재가입을 권유했다. 최씨는 “가입할 당시에는 간이며 쓸개까지 다 내줄 것처럼 설득하더니, 결혼에 실패하자 모든 것을 내 책임으로 몰아붙였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중매는 오랜 세월 선남선녀의 인연을 잇는 ‘오작교’ 역할을 해왔다. 결혼정보업체들의 초반 설립 취지는 공신력을 바탕으로 만남의 기회를 갖지 못하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을 골라 꼭 맞는 만남을 주선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업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과당경쟁으로 인한 폐점이 속출하고, 여기에 결혼을 기피하는 사회현상까지 맞물리며 과당경쟁의 악순환이 계속돼 이제는 ‘회원 머릿수 채우기’로 전락하고 있다. 이에 업체들이 탈출구로 프리미엄 서비스에 치중하면서 조건을 더욱 세분화해 만남의 조건은 더 까다로워지고 있다. “결혼은 여정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박지현 기자 center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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