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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 강유정의 까칠한 시선] 혼모노, 너의 정체는

‘혼모노(ほんもの)’가 나타났다. ‘진짜·실물·전문가’라는 뜻을 가졌지만, 일반적으로 오타쿠 중에서도 몰입의 정도가 심한 오타쿠를 가리키는 말이다. 일본에서 이들은 바깥에 거의 나가지 않는 성향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히키코모리처럼 홀로 방 안에 박혀 좋아하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보며 즐거워하는 인물상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러한 혼모노가 외출을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바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 ‘너의 이름은.’(1월 4일 개봉)을 극장에서 보기 위해서다.

사실 ‘혼모노’라는 용어 자체가 차별적 의미를 내포한 말에 가깝다. 물론 오타쿠도 차별성을 띠는 단어이긴 마찬가지다. (모든 오타쿠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외모에 신경 쓰지 않으며,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관심사를 가진 이들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혼모노는 사전적 의미 그대로 이러한 점들을 ‘진짜’라고 강조한다. 진짜 오타쿠. 그러니까 진짜로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진짜로 외모에 신경 쓰지 않으며, 진짜로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따라 부르거나 캐릭터 베개와 결혼하는 그런 사람 말이다. ‘너의 이름은.’ 개봉 후 이 단어가 인터넷 게시판에 집중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영화관에서 혼모노를 봤는데, ‘너의 이름은.’ 주제곡이 나올 때 따라 부르더라” “어떤 혼모노가 극 중에 등장하는 술과 비슷한 음료를 가지고 들어와 극장에서 음미하며 마시더라” “이미 대사를 다 외워 방언처럼 읊조리더라”와 같은 약간의 과장과 허구가 섞인 목격담이 줄을 이었다.

오타쿠나 혼모노는 대중문화, 특히 일본 대중문화에 매료된 사람들을 가리킨다. 생각해 보면, 어떤 문화 상품이든 오타쿠는 필요하다. 그들이야말로 절대적인 지지자이기 때문이다. 가령 미국 TV 시트콤 ‘빅뱅이론’(2007~, CBS)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스타워즈’ 시리즈(1977~)의 오타쿠다. 그들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세세한 줄거리를 두고 싸우거나 자신이 사랑하는 캐릭터에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각별한 애정과 관심, 그게 바로 오타쿠의 기본 자세다. 문화 상품에 오타쿠가 필요하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도 걸 그룹 오타쿠가 존재한다. 그들은 10대 아이돌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심지어 카메라를 들고 아이돌의 일상을 쫓아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영화에 대해, 어떤 감독에 대해 이처럼 충성도 높은 관심을 드러내는 오타쿠 관객은 얼마나 될까. 매년 ‘1000만 관객’을 동원하는 한국영화가 한두 편 나오게 마련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도 감독이 누군지 모르는 관객도 많다. 대부분 여가 선용이나 킬링타임용으로 선택한 작품이다 보니, 감독이나 배우에 대해 깊은 애착이 생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기존 한국영화의 서사나 관습은 오타쿠적 취향 자극과는 거리가 멀다. 흥행에 적합한 시나리오, 흥행성이 보장된 배우를 동원한 영화에는 감독의 독특한 취향과 색깔이 드러나기 어렵다. 첨예한 감각을 관객과 공유하고, 그런 소통을 거쳐 폭발하는 감수성이 오타쿠적 애착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영화에는 오타쿠를 열광시킬 섬세하고 예민한 감수성의 지대가 비좁은 편이다.

‘너의 이름은.’은 신카이 감독의 애니메이션 중 가장 대중성을 갖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초속 5센티미터’(2007) ‘언어의 정원’(2013)의 감수성에 훨씬 더 공감한다. 그는 일상의 기적을 초극세사에 가까운 감각적 예민함으로 표현하는 감독이다. ‘초속 5센티미터’가 그랬다. 신카이 감독은 벚꽃이 초속 5센티미터로 떨어짐을 발견하고, 그 속도에 그리움의 감성을 담아냈다. 그가 만든 세계 속에서 벚꽃이 지는 일상적 풍경은 돌연 환상적 놀라움으로 바뀐다. ‘너의 이름은.’은 세심한 관찰을 조금 더 넓은 환상적 장르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는 오타쿠 정서를 넘어 보편적 정서로 확장된 신카이 감독의 세계다. 그래서인지 이 애니메이션은 수많은 지지자가 응원하는 흥행 영화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신카이 감독의 영화 세계를 지탱하는 근간은, 오타쿠들의 첨예한 ‘상호주관성(相互主觀性·하나의 주관을 초월해 다수의 주관에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성질)’일 테다. 이제는 한국영화에도 오타쿠나 혼모노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그런 특별한 감수성이 필요할 듯하다.

글=강유정 영화평론가, 강남대학교 교수. 허구 없는 삶은 가난하다고 믿는 서사 신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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