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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안산에 있는 두 배우가 한 무대서 연기를?

무대에 3m 높이의 멀티스크린 4개가 직사각형 모양으로 서 있다. 스크린이 사방을 둘러싼 공간 안에 관객 50여 명이 갇혀 있다. 스크린 한쪽은 남자 배우의 얼굴로, 반대쪽 스크린은 여자 배우의 얼굴로 꽉 차 있다. 두 사람은 영상통화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둘의 대화는 수시로 겹치더니 끝내 갈등을 부른다.
텔레마틱 공연 ‘All in the mind’의 무대. 사각형으로 둘러싼 스크린 안에서 영상을 관람한다. [사진 서울예대]

텔레마틱 공연 ‘All in the mind’의 무대. 사각형으로 둘러싼 스크린 안에서 영상을 관람한다. [사진 서울예대]

여자: 아니요, 아니요, 내 말은…. 하고 싶었던 말이 뭐였어요?

서울예대와 미국 라마마극장
인터넷 화상기술 활용한 연극
‘Hi-fi : Wi-fi : Sci-fi…’ 선보여

남자: ‘아니요’라구요? 무슨 말이에요? 시간 낭비하고 있네. 아! 내가 뭐라고 그랬냐면 나는 당신과 얘기하게 돼서 좋다구요!

여자: 화내지 말아요. 그리고 소리지르지 말아요.

남자: 소리지르는 거 아니에요!

대화 같지 않은 대화를 나누는 남과 여는 다른 공간에 있다. 같은 시각 남자는 경기도 안산 서울예대에서, 여자는 미국 뉴욕 라마마(La Mama) 극장에서 따로 연기를 하고 있다. 이처럼 서로 다른 무대의 배우가 인터넷 화상기술로 한 무대에 있는 것처럼 표현하는 공연을 텔레마틱(Telematic·원격동시) 공연이라고 한다.

텔레마틱 공연을 표방한 실험극 ‘Hi-fi : Wi-fi : Sci-fi-현재 미래의 설계’가 지난 18일 서울예대 예술공학센터에서 선보였다.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이 디지털 공연은 미국 실험연극의 메카로 불리는 뉴욕 라마마 극장이 개관 55주년을 기념해 서울예대와 공동으로 진행했다. 50분 공연을 위해 라마마 극장의 연출가 제이슨 트루코(45)가 내한해 열흘 동안 서울예대 교수·학생들과 밤을 새며 작업했다. 공동연출을 맡은 박일규(54) 공연학부 교수를 비롯해 서울예대 교수만 20명이 참여했다.

이날 공연은 1960년대 미국의 아방가르드 작가 로버트 패트릭의 실험희곡 2편을 대본으로 삼았다. 한 편이 앞서 소개한 두 남녀의 대화 ‘Camera Obscura(암상자·暗箱子)’이고, 다른 한 편이 남녀가 일상을 무심한 듯 연기하는 ‘All in the mind(모든 건 마음 속에)’다. ‘All in the mind’는 스크린을 통해 출근을 준비하는 남녀의 아침 일상을 건조하게 보여주고, 동시에 획일화한 삶의 가치를 꼬집는 남녀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이날 공연은 뉴욕에서도 동시간(현지시각 오전 2시)에 상연됐다. 다음달엔 뉴욕에서 이날 작품과 추가 작품 3편이 무대에 오른다. 제이슨 트루코는 “오늘 공연이 1편인 셈으로 4편이 모두 완성되면 월드투어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남녀의 대화가 엉킨 건 원작의 의도였다. 대본을 보면 ‘잠시 멈춤’ 지문이 수시로 등장한다. 남녀의 대화가 멀리 떨어진 상대에게 전달되는 시간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럼에도 대화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50년 전 작가는 상상했다. 21세기의 연출가는 대사 사이에 5초의 시차를 뒀다. 초고속 인터넷 세상에서 50년 전 상상을 구현하려면 억지로 시차를 일으켜야 엇갈리는 대화를 표현할 수 있었다. 세상은 그만큼 진화했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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