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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해장 천국’ 여기는 제주

|  애주가 부르는 섬
 
표선어촌식당 송금산(45) 사장이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옥돔국 재료들을 들어보이고 있다.

표선어촌식당 송금산(45) 사장이 제주 바다를 배경으로 옥돔국 재료들을 들어보이고 있다.


제주에 잘 왔수다. 해장국 순례를 한다고? ‘해장국’이라는 이름이 붙은 향토 음식은 제주에 없어마씸(없지요). 그래도 속 풀어줄 해장 음식은 제주에 하영(많이) 널렸수다. 누구는 국수로 숙취를 달랜다 하고 누구는 물회를 먹어야 술이 깬다지만, 우리 하르방(남편) 말마따나 해장에는 시원한 국이 제라지지(좋지). 요조금(요즘)처럼 날까지 추우면 절로 생각나는 게 뜨끈한 국물이우다. 섬사람 음식 얘기를 풀어볼 거정 한번 들어봅서. 내 이름을 알려달라고? 이름이 뭔 필요 있수꽈. 물질 하멍 농사짓는 할망으로 해둡서.
  
지금은 쌀이 흔하지만 어렸을 땐 곤밥(쌀밥) 먹는 게 소원이었수다. 제주는 사방이 뜬땅(찰기 없는 흙)이라 논농사가 어려웠수다. 조랑 보리만 넣은 밥은 코실코실(거칠거칠) 햄수다. 제주에는 찌개가 없수다. 밥 꿀떡 삼키게 흘탁한(묽은) 국만 있수다. 바당(바다)서 난 것 우영(텃밭)서 난 것 가져다 국을 끓였수다. 된장이든 소금이든 물에 타서 먹는데 그게 국이고 안주고 해장 음식이었수다.
 
각재기(전갱이)국 전문 앞뱅디식당의 김미자(52) 사장. 제주시 공무원의 단골 해장국집이다.

각재기(전갱이)국 전문 앞뱅디식당의 김미자(52) 사장. 제주시 공무원의 단골 해장국집이다.


우리 하르방이 가장 좋아하는 국거리는 생선(옥돔)이우다. 멜(멸치)은 멜이고, 각재기(전갱이)는 각재기고, 갈치는 갈치지만, 제주 사람에게 옥돔만은 생선이우다. 제사상에 올리는 귀한 물궤기(물고기)마씸. 생선으로 생선국 만들멍 하얀 국물이 우러나는데 여기에 소금 조금 놓고(넣고), 무 조금 놓고 미역 있으멍 미역 놓았수다. 시원하고 구수하니 신선한 옥돔이 아니면 이 맛이 안나. 생선국 내면 하르방 또 술을 자시니 그게 문제였수다.
 
제주에서 난 갯것을 죄다 넣고 칼칼하게 끓인 해물뚝배기. 전복과 성게알이 기본으로 들어간다. 자연산 오분자기를 넣기도 한다.

제주에서 난 갯것을 죄다 넣고 칼칼하게 끓인 해물뚝배기. 전복과 성게알이 기본으로 들어간다. 자연산 오분자기를 넣기도 한다.


물궤기 있으면 물궤기국 끓였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았수다. 지픈(깊은) 바당 야픈(얕은) 바당에 먹을 거 천지우다. 겡이(게)멍 보말(고둥)이멍 성게멍 가져다 넣고 된장국 끓이면 바릇(바다의)국이우다. 여기에 전복까지 들어가면 참 맛 좋수다. 오분자기 들어가면 더 맛있수다. 전복이랑 오분자기가 비슷하지만 전복은 바위에 딱 달라붙어 있고 오분자기는 바위 틈 새 숨어 있는데, 빗창(전복 따는 기구)으로 똑 따내면 그날 물질은 성공이우다. 요조금 뭍사람들도 좋아라하는 제주 해물뚝배기가 그 옛날 바릇국이우다.

해콩이 나오는 겨울에는 날콩가루로 콩국을 햄수다. 씨어멍(시어머니)이 메누리(며느리) 골탕 먹일 때 만들라고 하는 게 콩국이우다. 물에 콩가루를 살살 풀어 놓아 덩어리 만드는데, 저어도 안 되고 국이 넘쳐도 안되마씸. 덩어리 풀어지지 않게 뽀글뽀글 물이 끓으면 우영(텃밭)서 따 온 배춧잎 콕콕 꽂아. 물질도 해야 하고 밭일도 해야 하는데 콩국 옆에 딱 달라붙어있어야 햄수다. 술 먹고 들어와 아칙(아침)마다 콩국 찾는 하르방이 밉긴 햄수다.
 
자연몸국 정영옥(63) 사장이 몸국을 끓이고 있다. 자연몸국은 제주 동문재래시장 안에 있어 시장 상인 사이에 사랑방으로 통한다.

자연몸국 정영옥(63) 사장이 몸국을 끓이고 있다. 자연몸국은 제주 동문재래시장 안에 있어 시장 상인 사이에 사랑방으로 통한다.


잔칫날에는 부락 사람 모두 모여 육궤기(고기) 국물을 먹었수다. 돗(돼지) 잡어다 국물 냈는데 이것도 해장으로 좋아마씸. 뼈랑 내장이랑 몬딱(모두) 넣고 한나절 국을 고았수다. 여기에 톳처럼 생긴 바당풀 몸(모자반)을 놓으멍 몸국, 한라산서 캔 고사리 놓으멍 고사리육개장으로 불렀수다. 모멀(메밀)가루를 풀어서 베지근하게(걸쭉하게) 먹으면 훌륭해마씸. 잔칫날마다 애든 노인이든 전부 한 사발은 먹는 음식이우다. 술꾼은 몸국 한 숟가락에 소주 한 모금 들어간다지.

제주 해장국이 이리 풍부하니 애주가가 행복한 섬이 아니고 뭐겠수꽈. 바당보며 산보며 놀멍 쉬멍 속 풀고갑서. 헛헛한 속 뜨겁게 달래고 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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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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