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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매창 ㅡ거문고를 사랑한 조선의 뮤즈ㅡ #9. 이 맑고 시린 공기는 누구의 것입니까? (1)

전쟁이 터지고 스무날도 안 돼 임금은 도성을 내놓고 북쪽으로 피난을 갔다. 사월 그믐날 어두운 새벽에 임금은 수행원 몇 사람과 함께 서대문을 빠져나갔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한양을 떠나는 왕의 모습은 비참하고 처절했다. 민심을 잃은 임금의 몰락을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정치란 무릇 그런 것임을 임금은 몰랐단 말인가.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정치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공자는 세 가지를 말했다. 먹을 양식과 나라를 지킬 병사와 백성의 믿음. 자공은 세 가지 중 하나를 뺀다면 무엇이 좋겠느냐고 다시 물었다. 공자는 서슴없이 국방을 맡은 병사를 들었다. 자공이 만약 하나를 더 뺀다면 무엇을 빼야 하냐고 물으니 공자는 양식을 책임지는 나라 살림이라고 답했다.
 
“예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다 죽음을 맞게 되어 있거니와 신의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는 것이다.”
 
공자의 말은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현실이 되어 눈앞에 나타났다. 임금이 돈의문을 나서기 무섭게 노비 한 떼거리가 궁궐로 몰려왔다. 그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노비 문서가 보관되어 있던 형조와 장례원을 불태워버린 것이다. 내탕고에 쳐들어가 궁 안에서만 쓰는 물품을 약탈해가는 자들도 있었다. 경복궁, 창덕궁에도 잇달아 불을 지르고 달아났다. 왕족과 사대부의 집을 습격해서 부수고 불을 질렀다. 장안 이곳저곳이 연기에 휩싸였다. 전쟁은 안에서도 일어났다. 지켜야 할 것과 따라야 할 것들이 뒤바뀌거나 무너졌다. 혼란을 애통해하는 자들과 통쾌해하는 자들이 한데 뒤섞인 속에서 전쟁의 기세는 날로 거세졌다.
전쟁의 기미가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는 통신사의 의견을 묵살한 조정은 막상 왜적이 쳐들어오자 이리 뛰고 저리 뛸 뿐 뾰족한 수를 마련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왜적은 빠르게 북쪽을 향해 파죽지세로 나아갔다. 평양까지 가는 데 두 달밖에 걸리지 않았다. 왜군이 지나간 자리는 피바다, 불바다가 되었다. 피비린내 나는 공기와 바람과 함께 몰려다니는 것은 지독한 소문이었다. 소문은 장소를 가리지 않았다. 우물가에도, 안방에도, 부엌에도, 사랑방에도 들이닥쳤다.
 
“왕이 도망갔대. 의병이나 군졸로 나간 병사들도 절반은 죽었다니까. 조총은 눈이 달려서 정확히 상대의 심장을 찾아가서 박힌다잖아. 에고, 무서워라.”
 
“우물에 독을 타서 물도 못 마신 사람들이 까맣게 말라 죽어간다는데 뭘. 으스대면서 거들먹대던 명나라 군사도 왜군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쥐라잖아. 굶어 죽은 노인과 애들 시체가 길거리에 뒹굴어 발에 챈다니 지옥이 따로 없지 뭐야. 무슨 놈의 전쟁이 해가 바뀌어도 끝날 줄을 모르니. 쯧쯧.”
 
“말도 마. 우리 군대는 도망가다 붙잡혀 죽는 게 일이고 왜놈들은 단숨에 한양으로 진격했다니까. 곡식이고 패물이고 다 뺏고 여자들도 남아나지 않는다잖아. 하여간 숭악한 놈들이야. 여자들을 범하고 나서는 절벽으로 밀어버린대. 에이그, 전쟁 나면 어쨌거나 여자들만 죽어나지.”

 
출처가 불분명한 소문은 서로를 부추기며 바람 속의 들불처럼 퍼져나갔다. 관군은 적정을 미리 정찰하고 멀리서 적진을 망보는 척후와 요망의 중요성을 돌아볼 정신이 없었다. 무턱대고 움직이다가 뜻밖의 적과 마주치면 놀라 달아났다. 싸우기도 전에 패했다. 왜군이 두려워 군량과 병장기를 버리고 흩어졌다. 왜군이 조선군의 병장기와 군량을 모두 불태웠다. 화살로는 왜군의 조총을 당할 수가 없었다. 날아가는 새도 맞출 수 있다고 이름까지 조총이라 붙였다 했다. 충청도와 한양까지 초토화시킨 왜병은 평양으로 달렸다. 전라도는 보존되었다고 하나 관군의 군량으로 곡식을 싹쓸이하다시피 해서 물력이 고갈되었다.
삼도의 장수와 신하들이 모두 인심을 잃은 데다 변란이 일어난 뒤에 군사와 식량을 징발하자 백성들은 왜군을 만나면 싸우기는커녕 달아나기 바빴다. 국가의 명맥은 의병에 인해 유지되었다. 승려까지 의병에 가담하자 하나둘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전쟁터에 뛰어드는 것은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교리에 어긋나지만 불합리한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나섰다. 의병은 비록 큰 업적을 이루지는 못했어도 민심을 얻었다.
전쟁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공포에 떨망정 활기차 보였다. 왜군 진지에는 조선의 비단과 서책, 불경, 도자기와 소금에 절인 조선군의 코를 담은 상자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고 했다. 도자기 굽는 사람과 어여쁜 여인들을 배에 태워 몰래 끌고 간다고도 했다. 사람들은 머리를 득득 긁고 체머리를 흔들며 들은 얘기를 전했다. 전쟁에도 가난에도 아랑곳없이 이가 극성이었다. 머리통은 말할 것도 없고 배나 등이 가려워서 연신 긁어댔다. 아무리 없는 살림에도 도둑놈이 훔쳐 갈 건 있다더니 이는 짜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같이 말라빠진 몸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머리에도 옷에도 이들이 서캐를 슬고 뼈만 남은 궁기 든 몸에서 피를 빨았다.
죽었다, 다쳤다, 싸웠다, 묻혔다, 불탔다, 울부짖었다. 끔찍한 낱말들로 이어가는 대화로 밤이 깊어갔다. 소문의 발은 짧지만 빨랐다. 사실의 진위 여부는 중요하지 않았다. 말이 오가는 상황과 위태로움을 감지하는 심사가 문제였다. 지금 이 순간도 어디선가 집들이 불에 타고 화살이 허공을 날아 누군가의 몸을 꿰뚫고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진저리를 치면서도 밥을 입에 넣고 똥을 쌌다. 매창은 그 모든 이야기의 중심에서 유희경의 고통을 보았다. 입에 오르내리는 모든 곳에 유희경이 있었다. 가닿을 수 없는 곳. 그곳에서 그는 자신을 죽음 한가운데 던졌다. 싸움터로 나간 남자와 그들을 기다리는 여자들의 삶은 똑같이 기약이 없었다. 매창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전쟁과 무관한 사람은 없었다. 죽고 죽이는 일이 일상사가 되었다.
유희경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그는 매창에게 삶의 지렛대 같은 존재였다. 그를 기다리며 보낸 세월이 아깝지 않았다. 그가 없다면 그녀의 인생은 텅 빈 곳간 같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걸로 충분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의 실재가 필요했다. 그의 손을 잡고 그의 몸을 어루만지고 그의 뜨거운 체액을 받아들이고 싶었다. 지금은 갈 곳도 없고 반기는 사람도 없고 몸은 허깨비 같았다. 고집부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움을 믿지 않아야 한다. 뻔뻔하고 어리석고 끝을 모르는 무모함을 믿지 않아야 한다. 알맹이가 없는 껍질뿐인 감정놀음이다. 고작 여기까지가 허락받은 사랑이고 나의 운명이란 말인가. 여기서 멈춰야 한단 말인가. 나는 그럴 수 있을까?’
 
지난봄 저녁은 즐겁기만 해서
술잔 앞에서 이 몸은 춤까지 추었지

 
시 끝에 한숨이 매달렸다. 하늘과 땅 사이 이 맑고 시린 공기는 누구의 것입니까? 이 공기 속에 당신이 마신 숨도 섞여 있겠지요. 내가 숨을 쉬면 당신의 숨이 나의 것이 되겠지요. 잠은 쉬이 그녀 옆에 자리를 틀지 못했다. 그 사람의 부재 앞에서 추억은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몸을 웅크리고 겨우 잠이 들었을 때 꿈속에서 아버지 목소리를 들었다.
 
“누구나 어떤 인생에나 고통은 있는 법. 이제부터 너는 너대로 버텨내라. 절대 우는소릴 해선 안 된다. 남 앞에서 눈물을 보여선 안 된다. 사람들은 약한 사람을 동정하기는커녕 업신여긴단다. 눈물로 살려고 했다간 두 배로 딱한 인생이 될 것이다.”
 
열다섯에 처음으로 몸을 바친 부사는 임기를 마치고 떠난 뒤 그녀를 곧 한양으로 부르겠다는 약조를 지키지 않았다. 그녀 인생에 찾아온 첫 시련이었다. 거짓도 빈말도 모르던 그녀는 그를 찾아 한양으로 갔다. 부사를 만나 약속 운운하다가 문전에서 박대를 받고 쫓겨났다. 마지막 희망이 깨져버린 그녀는 낯선 땅에서 의지가지없었다. 눈물을 흘리며 한양에서 객점을 하는 선배 기생 국향을 찾아갔다. 거기서 국향을 도와 거문고도 켜고 시도 읊으며 한두 해 살았지만 다친 마음에서 생긴 병은 낫지 않고 깊어져 도로 부안으로 내려왔다.
그때도 그녀는 아버지 말을 떠올렸다. 가질 수 없는 것을 한탄하며 서러워할 여유가 없었다. 당장 먹고 살 궁리를 해야 했다. 부사가 떠나면서 그녀를 기적에서 빼준 덕분에 몇 사람의 도움을 받아 객점을 차려 살림을 꾸려나갔다. 그녀의 나이 열여덟 살이었다. 조금도 봐주지 않는 야멸스러운 아비의 성격이 그녀를 강하게 만들었다. 참고 견디고 버티는 힘은 지금 그녀가 가진 전 재산이었다. 그토록 야속하던 아버지의 매정함을 고마워할 날이 오다니 인생에는 자신이 모르는 것들이 얼마나 더 숨어 있을까, 궁금했다.
명나라 군사가 파병되고 관군은 의병과 합세하여 평양성을 되찾았다. 그 기세로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폭탄이 달려 있는 소형 화살인 신기전을 백 발씩 한꺼번에 쏠 수 있는 화포로 왜군을 집중 사격했다. 행주대첩의 승리는 군기시의 장인 이장손이 만든 ‘하늘에서 공격하는 천지를 뒤흔드는 우레’라는 뜻의 포탄, 비격진천뢰에 힘입은 바 컸다.
한양은 적에게 함락당한 지 거의 일 년 만인 십일 개월 보름 만에 되찾았다. 한양에서 왜병이 철수하자 임금은 도성으로 들어왔지만 궁궐이 불타 행궁에 머물렀다. 추운 겨울이 오고 왜군의 보급 사정이 나빠지면서 관군의 반격은 거세졌다. 왜병은 조선의 강추위와 전염병에 쓰러져 절반이나 죽었다. 이때 명나라 장수 심유경이 나서서 일본과 강화조약을 맺어 전쟁은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왜병은 남해 일대에 축성한 왜성으로 퇴각했다. 왜병들이 곱게 순순히 철수할 리 없었다. 경복궁에 불을 지르고 조선인 악공과 재인 미녀들을 납치해 북을 울리며 여유작작 남하했다.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에도 방화와 약탈을 멈추지 않았다.
전쟁을 참고 견딘 백성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기근이었다. 전쟁 중에 농사를 짓지 못했으니 기근이 드는 건 당연했다. 먹을 것이 없어 백성들이 굶어죽는데도 관에서는 징발과 징세를 멈추지 않았다. 조정은 유지되어야 하고 관군도 먹여야 했다. 관리들은 민가의 잡곡 한 주먹까지 모조리 뒤져 거두어갔다. 거기다 명군에 군량 보급이 늦어지면 영의정이 무릎 꿇고 빌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었으니 도리가 없었다.
 

작가소개
1964년 전북 익산 출생
건국대 영문과, 연세대 국제대학원 졸업.
2001년 <한국소설>에 「기억의 집」으로 등단.
허균문학상, 구상문학상 젊은작가상 수상.
2014년 아르코창작기금 수혜.
 
저서로는 소설집『식물의 내부』, 『스물다섯 개의 포옹』,
장편소설 『안녕, 추파춥스 키드』, 『위험중독자들』,
포토에세이집『On the road』, 에세이집『삶의 마지막 순간에 보이는 것들』,
소설창작매뉴얼 『소설수업』, 번역서 『위대한 개츠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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