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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어떻게 아파트와 신도시의 아버지가 됐나


지난해 7월 현대 건축의 거장(Le Corbusier·1887~1965)의 건축물 17개가 세계문화유산에 동시에 등재됐다. 이례적인 기록이다. 한번에 등재한 작품 개수가 많을뿐더러 7개 국가에 산재한 건축물을 모아 등재한 최초의 사례가 됐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근ㆍ현대 건축물의 경우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처럼 하나인 경우가 많았다.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의 경우 여전히 짓고 있는 사그리아 파밀리아 성당의 예배실을 포함해 총 7개의 작품이 등재됐으나, 모두 한 국가(스페인)에 있는 건물이다.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 등재를 위해 프랑스ㆍ일본ㆍ인도ㆍ스위스ㆍ벨기에ㆍ독일ㆍ아르헨티나가 연합했고, 삼수 끝에 성공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는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은 근대 운동(Modern Movement)에 탁월한 공헌을 했다”며 선정 사유를 밝혔다. 그는 건축이 권위와 지배를 위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것임을 선언했고 실천했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다”라는 명언을 통해서다.


이처럼 20세기 시대 정신을 건축으로 구현한의 생애와 세계관을 둘러볼 수 있는 전시가 3월 26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다. ‘현대건축의 아버지: 4평의 기적’ 전이다.

인도 찬디가르 국회의사당(1952년).는 찬디가르 설계의 총괄 고문으로 임명돼 그간 꿈꾸던 도시계획을 유일하게 실현시켰다.
전시 부제인 ‘4평의 기적’은가 말년에 프랑스 니스의 카프 마르탱 휴양지에 짓고 살았던 오두막집을 일컫는다. 그는 4평짜리 오두막집에서 아내 이본느와 함께 살았다. 창을 열면 지중해가 펼쳐졌다. 전시장 말미에 이 오두막이 실제 크기로 재현돼 있다. 전시 주최 측에 따르면 이탈리아 장인들이 와서 일주일 간 작업했다고 한다. 오두막 안에 들어서면 작지만 있을 건 모두 있는 조그만 공간이 펼쳐진다. 화장실·천장 수납장·책상 겸 식탁·침대 등이 적재적소에 놓여 있다. 오늘날의 아파트를 최초로 짓고 신도시를 구상한 건축가가 사랑한 집은, 이렇게 작았다.의 오두막은 세계문화 유산에 등재된 가장 작은 집으로 기록됐다.


이번 전시에는 드로잉ㆍ회화ㆍ모형 등 그의 미공개 작품 140점을 포함해 총 500여점을 볼 수 있다. 모두 파리에 있는 재단의 소장품이다. 재단은 서울 전시에 앞서 뉴욕현대미술관(2013년 ‘근대 풍경의 아틀라스’전), 파리 퐁피두 센터(2015년 ‘인체의 비례’전)에서 그의 전시를 열었다. 다양한 도시 계획과 건축 프로젝트 등 건축가에 초점을 둔 전시였다.


서울 전시는 이와 다르게 화가로서의를 집중 조명했다. 전시 작품의 대다수가 그림이다. 작품 수만 따졌을 때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하지만, ‘건축가’의 철학과 작품을 좀 더 세밀하게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다소 아쉬울 듯 하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가로서 명성을 쌓았지만 늘 화가를 꿈꿨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 그는 어릴 적부터 여행을 자주 하면서 세상의 풍경과 디테일을 그려나갔다. 이 평생의 작업을 ‘인내심이 있는 비밀연구’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날마다 그림을 그리는 데에 시간을 할애했다. 형태의 비밀을 찾을 수 있는 데생 작업과 회화 작업을 결코 멈춘 적이 없다. 나의 작업과 연구의 열쇠를 다른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었다….”

[2차대전 후 집 없는 사람 위한 공동주택 프로젝트 진행]
르 코르뷔지에는 입체파의 군더더기를 덜어낸 순수주(퓨리즘)의를 표방했다. 본질을 가리는, 속임수로서의 치장을 거부했다. 늘 본질에 다가서려고 칼날을 예리하게 갈았던 그의 노력은 건축 프로젝트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건축의 본질로서 현대건축의 5요소(필로티·옥상 테라스·자유로운 평면·수평창·자유로운 파사드)를 발표했고, 이를 ‘사보아 주택’에서 고스란히 구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현대 건축의 아버지를 이야기할 때 이 선언을 빼놓을 수 없다. “건축이냐, 또는 혁명이냐.”


이는 오늘날에도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주제다. 최근 글로벌 건축계의 화두는 ‘사회 참여’다. 난민을 위한 건축, 저소득층을 위한 주거모델을 제시한 건축가에게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의 영예가 돌아갔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에서도 국가관마다 사회 문제를 건축으로 풀어보려는 다양한 시도가 돋보였다.


르 코르뷔지에는 이 방면에서 선구자이자 혁명가였다. 그는 1차 세계 대전 이후 ‘돔이노(Dom-ino) 이론’을 고안했는데, 집(Domus)과 혁신(Innovation)의 합성어인 ‘돔이노’는 전후 폐허가 된 도시를 빠르게 재건하기 위해 생각한 시스템이었다. 쌓는데 시간이 걸리는 조적식(組積式) 건물 대신 오늘날의 철골 콘크리트 구조를 고안해냈다. 얇은 바닥판, 바닥판 사이를 지탱하는 기둥,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을 집의 구조로 정의했다. 집이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이 뼈대에 조립하듯 벽만 세우면 기술자 없이도 집을 지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약 100년 전, 전쟁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식의 ‘사회 참여’였다.


그가 세계 최초의 아파트를 지은 배경에도 전쟁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집이 없는 사람들이 넘쳐나자, 이들을 위한 콘크리트 구조의 대규모 공동주택인 ‘유니테 다비타시옹(1952년 완공)’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자신이 개발한 ‘모듈러’를 적용한 아파트였다. 모듈러는 인간이 생활하는데 있어서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비율, 사람이 살기에 가장 편안한 최적의 수치를 만든 것이다. 오늘날의 아파트 방 높이가 약 2.3m인 것도 이 모듈러에 근거하는 것이다. 전쟁으로 집을 잃은 사람을 위해 고안한 아파트가 오늘날 한국의 도시 풍경을 휩쓸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이 같은 그의 건축 혁명에는 그림자도 있었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지을 때 “정신병의 온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 바람에 공사는 몇 번이나 중단되기도 했다. 1930년대 구상한 파리 재생 프로젝트 ‘300만 명이 거주하는 현대도시’의 경우 사회 각계의 반발에 부딪혀 프로젝트 자체가 무산됐다. 이 안은 시간이 흘러 한국의 신도시 프로젝트의 모티브가 됐다.


살아생전는 가장 논쟁적인 건축가였다. 그의 장례식에서 당시 프랑스의 문화부 장관인 앙드레 말로는 이 같은 추모사를 남겼다. “그토록 오랫동안, 그토록 끈질기게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한 사람은 없었다. 그는 오로지 인간과 건축만을 위해서 싸웠다.” ●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코바나컨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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