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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훈의 시시각각] 국정 농단보다 더 큰 죄

고대훈 논설위원

고대훈
논설위원

헌법재판소가 농락당하고 있다. 필자는 지난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3차 공개 변론의 현장에서 ‘헌재의 굴욕’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오전 10시 변론이 개시된 헌재 대심판정은 엄숙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 기각(2004년), 친일 재산의 몰수 규정 합헌(2011년), 간통죄 합헌(2015년) 등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중요 변론과 선고가 이뤄진 바로 그 장소가 주는 중량감 때문이었다. 짙은 자주색 법복을 입은 박한철 소장 등 9명의 재판관이 60㎝ 높이의 심판대 위에서 굽어보는 심판정 구도는 도전할 수 없는 권위를 풍겼다. 최순실씨,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전 부속비서관(이하 경칭 생략) 등 국정 농단의 핵심 인물이 헌재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다기에 긴장감은 더했다. 기자와 시민이 뒤섞인 100여 명의 방청석은 역사의 현장을 지킨다는 설렘 속에 숙연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증언석에 최순실과 정호성은 나타나지 않았다. 국회와 특검의 소환에는 불응하더라도 국가 최고의 헌법 해석 기관인 헌재의 부름은 거부하지 못하리라는 당위론은 빗나갔다. 변론은 30분 만에 허망하게 휴정했다. 오후 2시 재개된 변론도 30분 만에 끝났다. 안종범마저 불과 2시간 전에 불출석을 통보하는 바람에 재판관들은 할 일이 없게 됐다. 박 소장, 강일원·이진성 재판관을 빼고 나머지 6명의 재판관은 말 한마디 할 기회조차 없이 퇴정했다. 하루 종일 텅 빈 증인석은 구겨진 헌재의 체면을 압축한 상징이었다.

3일의 1차 변론에선 박 대통령이, 5일의 2차 변론에선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이, 10일의 3차 변론에선 세 명이 짜고 친 듯이 일제히 불출석한 것은 계산된 무시 전략이다. 마지못해 출석한 윤전추 행정관과 이영선 행정관은 재판관의 호통을 ‘국가기밀’ 운운하며 비웃었다. 잠적해버린 이재만·안봉근의 소재를 찾아달라는 헌재의 요청에 ‘파악 실패’라고 답한 경찰의 의도된 무능은 헌재의 한계를 드러냈다.

박 대통령과 ‘헌재 불출석 5인방’은 국정 농단의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줄 숨겨진 고리다. 증언대를 외면하는 속내는 짐작된다. 특검의 1차 법정 수사 기한은 2월 28일까지다. 30일간 연장할 수 있지만 보장할 수가 없다. 특검 활동 종료 전에 헌재에서 파면되면 박 대통령은 민간인 신분이 되어 불기소 특권이 사라진다. 곧바로 구속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헌재를 무력화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박 소장이 퇴임하고(1월 31일), 특검 수사가 종료되고(2월 28일), 이정미 재판관이 퇴임하면(3월 13일), 남은 7명의 재판관 중 두 명만 반대해도 탄핵이 기각되는 시나리오를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촛불 민심’이 아닌 ‘그들의 민심’이 돌아올 때까지 무작정 끌어보자는 속셈일 수 있다.

탄핵심판이라는 역사적 사건에 증언을 거부하는 배짱은 어디서 기인하는가. 양심과 죄의식에서 그 배경을 찾을 수밖에 없다. 유무죄를 떠나 나라를 이런 대혼돈에 빠뜨렸다면 대통령과 그의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게 상식이다. 양심은 ‘선(善)을 행하려는 자신에 대한 의무 의식’(칸트)이고, 배우지 않아도 선악을 분별하는 선천적인 도덕적 판단능력인 양지양능(良知良能)(맹자)이다. 최순실은 민간인이라서 그렇다 치자. 국정을 논하던 공직자라면 자신의 양심을 배반하며 저지른 일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는 게 마땅하다. “죄의식은 죄를 고백함으로써만 경감될 수 있다”(베네딕트, 『국화와 칼』)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비겁하게 도망만 다닐 일이 아니다. 헌재도 이들의 방종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국정 농단 사건이 남길 가장 큰 상처는 리더십 공백도, 진보와 보수의 갈등도 아니다. 대통령의 사람들은 법을 우습게 아는 풍조를 전염시키고 있다. 염치나 양심을 벗어던지는 도덕적 아노미와 냉소주의를 전파하고 헌법과 법률을 불신하도록 부추긴다. 이런 사회라면 법치주의는 힘없는 서민이나 지키는 공허한 수사(修辭)로 전락한다. ‘법, 그거 정말 웃기는 농담’이란 세상을 만드는 더 큰 죄를 그들은 저지르고 있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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