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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 강유정의 까칠한 시선] 2016 내가 사랑한 영화, 실망한 영화

2016년을 보내며 나만의 영화를 뽑았다. 살짝 욕먹을 각오로, 나만의 골든 라즈베리 시상식도 함께. 2016년은 유독 다양한 영화들이 눈에 띈 한 해였다. ‘곡성(哭聲)’(나홍진 감독) ‘아가씨’(박찬욱 감독) ‘부산행’(연상호 감독) ‘밀정’(김지운 감독) 등 화제작의 면면만 살펴봐도 그렇다. 호러 스릴러, 퀴어 로맨스, 가족 드라마 등 장르가 다채롭다. 아쉬운 점은, ‘아수라’(김성수 감독) 개봉 무렵인 지난 9월 이후 한국영화 흥행세가 주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이를 영화계 탓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현실에서 ‘아수라’ 이상의 아수라판이 펼쳐지고 있으니, 누가 굳이 극장에서 허구의 세상에 눈을 두랴. 시국이 이러하니, 영화의 견고함이 오히려 세상의 유연함에 밀리는 지경이다.

그럼에도 2016년 한국 영화계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여성 감독의 약진이다. 우선 ‘비밀은 없다’(이경미 감독)를 언급하고 싶다. 이 작품은 ‘영화적 낯설게 하기’에 도전하는 맹랑한 예술가의 진격과도 같았다. 불편해서 더 기억에 남는 음악과 화려하고 기괴한 미술도, ‘비밀은 없다’의 강렬한 인상을 완성하는 데 한몫했다. ‘미씽:사라진 여자’(이언희 감독)도 의미 있는 영화다. 이 영화는 수퍼맘을 꿈꾸는 워킹맘의 뒷덜미를 송연하게 만드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스크린으로 데려왔다. 두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지금껏 한국 영화계가 얼마나 여성의 삶과 현실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물론 ‘부산행’에도, ‘밀정’에도, ‘판도라’(박정우 감독)에도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하지만 극의 전개상 한 명쯤 있어야 하는 ‘연결 고리’ 같은 기능적 인물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최악의 영화를 꼽아 보자면,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다. 원작 소설가 세라 워터스식 공격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제강점기 ‘경성 시대’에 짜릿한 한 방을 날리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기대감이 컸기에 실망감도 컸다. 또한 ‘아가씨’에 그려진 여성들의 사랑은 지나치게 전시적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정사인지 의구심이 든다. (극 중 현실에서 여지없이 튕겨 나온 것이라면) 분명 이 영화가 주장했던 의도가 애초부터 위장이었거나 잘못 전달된 것임에 분명하다.

반드시 봐야 할 영화도 챙기고 싶다. 다행히 각종 시상식의 신인감독상에 여러 차례 이름을 올려 마음이 흐뭇하지만, 여전히 많은 관객과 만나지 못한 ‘우리들’(윤가은 감독) 말이다. ‘우리들’이야말로 한국 영화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문제적 시기의 소녀들을 주인공으로 다룬 이야기다. 마치 ‘인사이드 아웃’(2015, 피트 닥터·로니 델 카르멘 감독) 속 기억의 무덤처럼, 윤가은 감독은 성인이 된 후 잊고 지낸 어떤 기억을 예민한 ‘기억소환술’로 재구성했다. 이 영화에는 어린 시절 누구나 경험해 봤을, 외로움·두려움·상처·기대 등의 감정들이 너무 뜨겁지도 따갑지도 않게 영화적 언어로 옮겨져 있다. 마술 같은 연기를 보여 준 아역 배우들도 칭찬하고 싶다.

누군가는 ‘아수라’를 2016년 최고의 영화로 꼽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는 미학을 넘어선 탕진과 과잉의 영화다. 영화 전체에 넘실거리는 마초이즘은 한계효용을 넘어섰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자, 이제 최악의 배우를 선택해 보자.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홍지영 감독)에서 김윤석의 연기가 아쉬웠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쎄시봉’(2015, 김현석 감독)의 근태(김윤석)가 중첩됐다. 2인 1역 캐스팅, 연인과의 뒤늦은 재회 등 서사적 공통점이 있는 데다 그 기시감을 넘어선 차별성도 찾기 힘들었다. 누르듯 발성하는 목소리가 지닌 매력도 여전한데 지나치다.

최고의 여성 배우와 최악의 여성 배우는 손예진 하나다. 최고가 ‘비밀은 없다’의 손예진이었다면, 최악은 ‘덕혜옹주’(허진호 감독)의 손예진이었다. 아이를 찾아다니는 엄마의 분노엔 공감했지만(비밀은 없다), 절망과 망각 사이를 헤매는 옹주에겐 모순을 느낄 뿐이었다(덕혜옹주). ‘해어화’(박흥식 감독)에서 한효주가 보여 준 연기도 다소 실망스러웠다. ‘말하는 꽃’ 기생들의 욕망을 아름답게 그리려 했으나, 기존 이미지를 활용한 ‘한효주 영화’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2017년, 이제 또다시 새로운 영화들 만날 차례다. 어제의 최고가 내일의 최악이 되기도 하고, 어제의 최악이 내일의 최고가 될 수도 있다. 사람이니까 변하고, 변하니까 사람이다.


글=강유정 영화평론가, 강남대학교 교수, 허구 없는 삶은 가난하다고 믿는 서사 신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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