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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널드 피터슨 “21일 오후 3시15분 헬기서 군중 쐈다”

아널드 피터슨(左), 조비오 신부(右)

아널드 피터슨(左), 조비오 신부(右)

1980년 5월 광주에서 군이 헬기 사격을 했다는 사실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석과 광주광역시의 발표로 확인된 12일 정수만(70) 전 5·18 민주유공자유족회장은 “진실 찾기는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말했다.

5·18 당시 세 살 아래 동생을 잃은 정 전 회장은 헬기가 투입됐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80년 5월 20일 낮 광주 금남로에서 마지막으로 본 동생이 6월에 시신으로 발견된 것을 계기로 헬기 사격 등 5·18과 관련한 진실 찾기에 나섰다.

작은 출판사를 하던 그는 81년 5월 1주기 추모식을 했다가 옥살이를 한 뒤 이듬해 2월 풀려난 후 본격적으로 자료 모으기에 나섰다. 국내 곳곳은 물론 독일까지 날아가 자료를 모았다. 정부기록보존소, 육군본부, 국군통합병원 등을 누볐다. 정 전 회장이 모은 자료는 A4용지 30만~40만 쪽에 달할 정도로 방대하다. 이 가운데 중요한 것들을 추려 5·18 기념재단에 기증했다. 5·18 계엄군이었던 전투병과교육사령부가 육군본부에 제출한 서류로 헬기 사격을 유추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진 비밀 문서 ‘광주 소요사태 분석 교훈집’도 그중 하나다.

지난해 9월 선종한 조비오 신부는 또 다른 헬기 사격 목격자다. 조 신부는 89년 2월 국회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청문회에 출석해 자신이 목격한 헬기 사격에 대해 증언했다. 그는 80년 5월 21일 낮 1시30분부터 2시 사이 호남동성당 주변 상공 헬기에서 ‘드르륵’ 소리와 함께 사격이 있었다고 말했다. 조 신부는 군이 헬기 사격을 인정하지 않는 배경에 대해 “헬기 사격을 인정하면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정당방위’ ‘자위권 발동’ 등 그동안 내세운 발포 이유가 거짓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청문회 증언 이후 육군본부와 민정당에서 형사고발을 당하기도 했지만 끝까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80년 5월 선교 활동을 위해 광주에 있던 미국인 선교사 아널드 피터슨도 헬기 사격을 목격한 인물이다. 그는 95년 펴낸 체험기 『5·18 광주사태』에 “5월 21일 오후 3시15분쯤 헬기가 거리의 군중을 쏘기 시작하면서 병원에 환자들이 몰려들었다”고 남겼다. 5·18 때 적십자 소속으로 봉사(구조)활동을 해 온 이광영(당시 27세)씨도 같은 날짜를 언급하며 헬기 사격으로 여학생이 어깨를 다쳐 병원으로 후송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군 관계자의 진술도 있다. 5·18 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95년 전두환 전 대통령 등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5·18 당시 군의관이 헬기 사격에 대해 말했다. 그는 “(같이 있던) 피터슨의 말(헬기 사격)을 듣고 상공을 보니 헬기에서 사격을 하고 있었다. ‘타다닥’ 하는 소리가 세 번 들렸던 것 같다. 불빛도 보였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군 당국은 ‘헬기 사격이 없었다’는 주장을 해 오고 있다. 확인된 목격자만 20명 안팎에 달했지만 물증이 없었던 상황에서 이번 국과수의 판단은 37년 만에 5·18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5월 단체들은 기대하고 있다. 다만 이번 국과수의 감정서는 전일빌딩에 남은 총탄 흔적 자체를 분석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어서 헬기 사격에 의한 사상자가 몇 명인지, 이들이 누구에 의해 어디로 옮겨졌는지 등에 대한 내용은 없다.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5월 21일뿐 아니라 27일에도 목격했다는 증언이 있다”며 “군 당국이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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