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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유의 직격 인터뷰] “불통의 거버넌스 뜯어고쳐야 이화여대 다시 살아난다”

21만 이화인 심정 토로한 모혜정 명예교수
국내 최초의 여성 물리학자인 이화여대 모혜정 명예교수. 그는 “교육 농단 사태로 자존심이 상했지만 똑똑하고 당당한 학생들이 잃어버린 이화의 가치와 정의를 되찾는 저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국내 최초의 여성 물리학자인 이화여대 모혜정 명예교수. 그는 “교육 농단 사태로 자존심이 상했지만 똑똑하고 당당한 학생들이 잃어버린 이화의 가치와 정의를 되찾는 저력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이화여대 사태를 보는 국민의 심정은 착잡하다. “돈도 실력이야, 너네 부모를 원망해.”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 막말 한마디가 촉발한 ‘이화여대 교육 농단’을 둘러싼 의혹이 모두 사실로 드러나고 있어서다. 국내 여성 인재 양성의 산실인 131년 전통의 명문 사학은 도덕성에 큰 상처를 입었다.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21만 이화여대 동문들의 심정은 어떨까. 평생을 ‘이화인’으로 살아온 원로 교수를 만나봤다. 한국 ‘여성 1호’ 물리학자인 모혜정(78) 이화여대 명예교수다. 그는 “이화의 자존감과 가치가 곧 나의 자존감과 가치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대선배로서 ‘모교에 누가 되지 않을까’ 고민하다 누군가는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해 인터뷰에 응했다고 했다. 그는 “불미스러운 일로 이화의 명예가 손상되고 있지만 반대로 보면 똑똑한 학생들이 잃어버린 이화의 가치와 정의를 되찾는 저력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충남 아산의 모 교수 자택에서 11일 진행했다.
 
평생 이화인의 삶을 살았는데 착잡할 것 같다.
“물리학과 58학번인데 ‘이화’와는 40년 연이다. 학부와 이화여대부속 중·고교 교사, 그리고 교수 34년을 합하면 그렇다. 2004년 8월 정년퇴임해 학교를 떠난 지 12년이나 돼 솔직히 사정은 잘 모른다. 그런데 언론 보도를 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내가 21만 동문(졸업생 기준)을 대표할 수도, 또 그럴 자격도 없다. 다만 뒤로 물러나 보니 전체가 잘 보이긴 한다.”
승마 체육특기생 정유라의 부정 입학과 학점 특혜에 연루된 남궁곤 전 입학처장과 류철균 교수가 구속됐다. 김경숙 전 신산업융합대학장에 이어 최경희 전 총장도 소환된다.
“대학은 정의의 보루인데 이해하기 어렵다. 어떻게 교수가 부정 입학에 관여하고 학점을 허위로 줄 수 있나. 교수들이 청문회에서 ‘다 아니다’고 거짓말한 것은 정말 부끄럽다.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해야지 변명만 한 것은 교육자의 도리가 아니다. 뭔가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것 같지만….”

비선 권력 앞에 무기력한 대학
21만 동문 자존감에 큰 상처
소수가 주인 행세 폐쇄적 운영
성급한 행정이 도덕불감증 불러
그럼 어떻게 했어야 했나.
“안 된다고 했어야지. 교육은 원칙이 중요한데 기본이 무너지니까 스스로 도덕 불감증에 빠졌다. 교수들이 왜 그렇게 비교육적 수렁으로 끌려갔는지 의문이다. 우리 세대 때는 부당한 지시가 있으면 얘기를 했다.”
사태의 근본 원인을 뭐라고 보는지.
“권력 비리가 사회 전체에서 일어나다 보니 대학까지 스며들었다. 대학 비리도 사회 비리와 유리될 수는 없다. 학교가 최고 권력과 재력에 무력화됐다는 게 마음 아프다. 학교가 너무 성급하게 움직인다. 교육부 재정사업을 따려다 보니 소통이 부족했다. 평생교육단과대와 정유라 체육특기자 문제는 대학의 본질이 아니다. 꼭 해야 할 일에 집중하지 않고 돈을 끌어오겠다고 ‘언저리’ 일에 치중하다 보니 탈이 생긴 것 같다.”
대학 운영에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닐까.
“우리 대학은 원래 주인이 없다. 그래서 출발부터 운영이 민주적이었다. 구성원이 신뢰해 왔는데 언제부터인가 몇 사람이 운영하는 폐쇄적 구조로 바뀌었다. 소수가 주인 행세를 하고 그런 일이 길어지다 보니 학교 운영의 지배구조, 즉 거버넌스가 고장 났다. 어느 조직이든 독재하면 폐쇄적이 된다. 그러면 불통이 생긴다. 정유라도 그런 거버넌스의 산물일 수 있다. 윗선에서 어떻게 개입했는지 밑에서는 몰랐을 수 있다.”

모 교수는 자세도 흩뜨리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저간의 사정과 진실은 모르지만 평생 과학자로서 사심 없이 반추해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법인의 거버넌스를 혁신하자는 얘기인가.
“이사회는 전문성과 식견을 갖춘 인사로 구성해 투명하고 개방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그래야 시대 흐름이 반영되고 전문성이 발휘된다. 대학을 잘 모르는 사람을 앉혀 놓으면 뭘 하겠나. 경제력이 있다고 이사를 하는 시대는 지났다.”
법인도 노력하는 것 같다. 지난해 평생교육단과대 사태 이후 윤후정 명예총장도 사퇴했다.
“제가 자연과학대학장 때 총장으로 모셨다. 총장·이사장·이사·명예총장을 하셨으니 그분이야 말로 뼛속까지 이화인이다. 사재를 털어 학교를 지원하는 등 애정이 남다르다. 그런데 오래 관여하다 보니 폐쇄성을 갖게 되고, 총장 선출에도 입김이 거세다는 의혹을 샀다. 소통이 부족해 불만이 쌓인 거다. 하지만 법인은 비리가 전혀 없고 깨끗하다.”
폐쇄 운영에 최 전 총장도 동조한 게 아닌가.
“최 전 총장(81학번)은 내가 두 과목을 가르쳤다. 굉장히 똑똑하고 야무졌다. 젊은 총장으로 일을 하려고만 했지 주위를 돌아보지 않다가 소통을 소홀히 한 것 같다. 사정이 있었는지 진실이 궁금할 뿐이다.”
교육의 정의를 저버린 교수들도 문제다.
“교수는 불의를 단호하게 막을 수 있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 최고 권력과 재력에 꼬였다는 게 서글프다. 평생교육단과대 설립을 반대하며 불볕더위 속에 농성하는 제자들을 방관한 면도 있다. 교수가 되면 이화의 가치와 전통부터 새겨야 한다. 학생을 학점을 주는 대상으로 보지 말고 제자라는 따뜻한 눈으로 봐야 한다.”
가장 아쉽게 본 상황이 있는가.
“처음엔 왜 저러나 했는데 알고 보니 그럴 만했다. 총장이 처음에 깨끗이 잘못을 인정했으면 좋았는데 질질 끌었고 대화가 부족했다. 소통이 안 된 건데 상당히 아쉽다. 교수와 학생이 적으로 대립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교수는 따뜻한 스승이어야 한다.”

정유라 사태 파헤친 건 이화인
대학의 큰 저력과 희망 보여줘
교수는 꿋꿋, 총장은 소통하고
재단이 혁신하면 새 도약할 것
이화여대의 위기라는 말도 들린다.
“그리 생각하지 않는다. 이화여대이기 때문에 비리가 파헤쳐졌다. 저력을 느꼈다. 학생과 동문이 나서서 밝혔으니 오히려 자랑스럽다. 평생교육단과대도 총장이 안 한다고 했는데 학생들이 물러서지 않았고, 그 와중에 정유라 문제가 나왔다. 학생들이 이런 건 역사상 처음이다. 학생들은 정말 똑똑하고 용기가 있다. 느린 달팽이 민주주의를 통해서도 그걸 입증했다. 학생들이 이화의 힘이다.”
곧 총장 선출을 한다. 어떤 리더가 필요할까.
“(웃으며) 누가 나오는 줄도 모른다. 이화의 특성을 살려 잘할 수 있는 걸 찾는 리더십과 추진력이 필요하다. 도덕성이 중요하다. 이화의 가치를 단단히 새기지 않으면 총장이 외부 세력에 흔들리기 쉽다. 김옥길 총장(1961~79년)은 배포가 굉장했다. 학생들이 데모할 때 ‘우리 학생을 체포하려거든 나부터 체포하라’고 했다. 학생과 함께하는 총장, 친근감 있는 총장, 따뜻한 총장이었다. 새 총장도 그랬으면 좋겠다. 연구와 교육을 제대로 알고 전문적 식견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
교수사회의 변화도 시급하다.
“후배 교수들 얼굴에 행복한 표정이 없다. 학기 단위로 업적평가를 받다 보니 단기 연구에 매달린다. 연구를 막 시작했는데 보고서를 내라는 격이다. 스트레스가 많으니 교육과 연구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 여유를 갖도록 생태계를 바꿔줘야 한다. 노벨상 수상자도 자기 분야에서 묵묵히 연구하다 10년, 20년 후 성과를 보인다. 경쟁이 아니라 협력해서 같이 발전시켜야 한다.”
평생 과학자의 길을 걸었는데 과학의 미래는 어떻게 보나.
“인간을 도외시한 과학의 발전은 재앙이 될 수 있다. 건전한 가치관과 도덕성이 결여된 과학의 산물은 기계일 뿐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과학을 바탕으로 한 교육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한국 안에서만 보지 말고 세계를 봐야 한다. 차기 총장이 재빨리 파악해 앞서가야 한다. 우리가 96년에 공대를 만든 취지에도 그 답이 있다. 기업체 총수를 만나 ‘왜 여성을 차별하고 안 뽑느냐’고 했더니 ‘전자와 컴퓨터 분야는 뽑을 여성이 없다. 키워만 내달라’고 하더라. 당시 여대가 공대를 만드는 건 난센스라고 했다. 한데 지금은 큰 장점이다. 기초과학에다 공학·약학·의학, 그리고 인공지능(AI)과 생명과학까지. 서로 통섭하고 융합해야 과학의 미래가 있다.”

이화여대에 따라붙는 수식어 중 하나가 ‘여성 1호’다. 최초의 국무총리·여의사·박사·변호사·헌법재판관 등등. 모 교수도 ‘1호’를 평생 달고 살았다. 여성 리더십에 대한 철학이 궁금했다.
 
여러 분야에서 여성 리더를 많이 배출했다.
“도전정신과 개척정신, 그리고 자존감이 그 힘이다. 신입생이 되면 이화여대만의 묘한 분위기가 있다. ‘우리가 주인’이라며 주저하지 않고 남성들과 나란히 한다는 그런 의지 같은 거다. 나도 처음 물리학을 공부할 때 어느새 그런 의지가 생겼다.”
박근혜 대통령이 여성 리더십 붕괴의 표상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개인 문제로 따져야 한다. 여성이라고 여성정책을 세운 것도 아니니 여성 대통령으로서의 의미가 없다. 여성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게 아니라 그분 자신의 어떤 문제 때문에 일이 벌어졌다. 소통이 적은 폐쇄적인 공간에서 오래 살다 보니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리더를 평가할 때는 능력과 자질을 보는 게 본질이다 .”
여성 리더를 키우려면 뒷받침도 요구된다.
“바로 육아 정책이다. 똑똑한 여성들은 애를 안 나으려고 한다. 저출산 문제도 거기서 출발한다. 육아 문제를 해결해 마음 놓고 일하게 만들어 줘야 여성의 사회 참여가 왕성해진다. 남성들도 육아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면 여성들이 경력단절 없이 곳곳의 리더가 될 수 있다.”
이화여대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꼭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나.
“21만 명의 동문이 주시하고 있어 이번과 같은 일은 다시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화인들은 131년 역사를 자랑할 게 아니라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데 동참해야 한다. 다 같이 힘을 모아 소통하며 뼈아픈 교훈의 출발점으로 삼는 게 중요하다. 예전에는 똑똑한 몇 명이 주도했지만 요즘은 다르다. 똑똑한 인재가 워낙 많으니 구성원들과 충분히 소통하며 협의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은 이화여대의 기회이기도 하다. 기존에는 남성의 영역에 끼어들 틈이 좁았지만 새 분야는 기득권이 없으니 도전해야 한다. 창의성과 감성을 요구하는 일에 이화인의 진출이 활발해질 것이다. 그런 식견을 갖고 인재를 키우면 이화여대의 역사가 달라질 것이다. 힘을 내자.”
 
여성 1호 물리학 박사 모혜정은…
아파트 안에 들어서니 온통 책이다. 거실의 책장과 서재, 그리고 다락방까지.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 같은 전문 과학서적은 물론 인문학·철학·사회학 관련 책들도 빼곡하다. 한국인 최초의 여성 물리학 박사의 집 안 풍경이다.

모혜정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1961년 이화여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다 65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당시로선 여성의 물리학 박사 학위 취득이 거의 없었다. 수학과 이론을 좋아했던 그는 “물리학은 과학 중의 과학인데 못할 것도 없다”며 도전했다. 그리고 69년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학위를 땄다.

그의 남편은 ‘온생명’ 주창자인 장회익(79) 서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다. 한 살 터울로 고교생일 때부터 알던 두 사람은 대학에 진학한 뒤 물리학도로서 더 친해졌다. 64년 결혼해 반세기를 학문적 동지로 산다. 남편은 화합물 반도체 연구로, 아내는 고체물리학의 에너지 띠 구조 연구로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나란히 박사가 됐다. 국내 첫 부부 물리학자였다.

71년 이화여대 교수로 부임한 모 교수는 자연과학대학장과 대학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10년 전 충남 아산에 새 둥지를 틀었고 ‘도전하는 여성이 아름답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양영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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