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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서울에서 2시간30분 이땅에서 만난 ‘일본’

|  군산 역사·문화유산 탐방
군산은 희한한 도시다. 다른 지역에서는 지워버린 일제의 흔적을 복원하는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식민지’라는 불편한 역사를 관광 콘텐트로 활용해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 1930년대 일본식 가옥을 본뜬 게스트하우스 고우당에 머문 날, 옅은 눈발이 날렸다.

군산은 희한한 도시다. 다른 지역에서는 지워버린 일제의 흔적을 복원하는 프로젝트가 한창이다. ‘식민지’라는 불편한 역사를 관광 콘텐트로 활용해 많은 사람을 불러 모으고 있는 것. 1930년대 일본식 가옥을 본뜬 게스트하우스 고우당에 머문 날, 옅은 눈발이 날렸다.


겨울에 들자마자 군산행을 벼르고 별렀다. 이왕이면 눈 내리는 날이어야 했다. 오래된 일본식 가옥에 앉아 창밖으로 눈 내리는 풍경을 보고 싶었다. 지난해 12월 28일, 일기예보 앱에서 군산을 검색하니 눈사람이 등장했다. 예상 강설량은 고작 0.8㎜. 군산은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 아니어서 망설이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에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입력하고 남쪽으로 내달렸다. 특별히 군산에 얽힌 추억이나 일본에 대한 동경이 있는 건 아니었다. 군산이 품은 낡은 풍경에 흰 눈이 덮이면 어쩐지 애틋할 것 같았다. 때로는 이렇게 시덥지 않은 생각이 여행을 부추길 때가 있다.
 
1930년대풍으로 꾸민 근대역사박물관.

1930년대풍으로 꾸민 근대역사박물관.


서울 아침 기온이 영하 8도였는데, 2시간 30분 만에 도착한 군산의 낮 기온은 영상이었다. 바람도 잔잔해 내복을 껴입고 간 게 머쓱했다. 찬찬히 군산 원도심을 걷기 좋은 날씨였다. 군산에서는 약 5년 전부터 ‘시간 여행’이 유행했다. 거창한 건 아니다. 한 세기 전까지 시간을 거슬러 오르며 우리네가 겪어온 세월을 만나는 것이다. 역사를 더듬는 모든 여행이 시간 여행일 텐데, 유독 군산에서 유행하는 건 흥미로운 현상이다. 군산에 가면 ‘근대’라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시절을 만날 수 있어서일 것이다. 군산에는 일본이 지은 세관과 은행 등 근대 건축물 10여 개와 적산가옥 약 170채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적산(敵産·적국의 재산)이란 말에 스며있듯 일제 강점기, 그러니까 근대라는 시간은 아직까지 우리가 편하게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은 아니다.
 
햇살 비친 히로스 가옥 다다미방.

햇살 비친 히로스 가옥 다다미방.


흥미롭게도 요즘 군산을 찾는 여행자 대부분은 20~30대다. 이들은 전주·부안 등 주변 지역을 함께 여행하거나 1박2일 일정으로 오롯이 군산을 즐긴다. 근대 문화유산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기념 사진이 아니다)을 찍고 틈틈이 맛집을 찾아다니며 일본식 다다미방으로 만든 게스트하우스에서 잠을 잔다. 이들에게 군산은 수탈의 역사가 서린 아픈 도시라기보다는 재미난 여행지다. 김중규(52)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장은 이렇게 설명한다.

“불과 10년 전까지 군산을 찾은 사람들은 진지하게 ‘답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는 군산의 역사·문화유산을 가볍게 즐깁니다. 우려할 일은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과거와 친숙해지는 것도 역사를 배우는 좋은 방법이니까요.”

군산은 기억의 도시, 역사의 도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맛의 도시다. 사실 겨울 군산이 그리웠던 또 다른 이유는 못생긴 생선 물메기 때문이다. 시린 바람 불어오니, 몇 해 전 군산 선유도에서 먹었던 물메기탕 생각이 간절했다. 한 해가 저물어가던 날, 뜨끈한 국물에라도 위로 받고 싶은 헛헛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시원하면서도 쿰쿰한 그 국물 맛을 생각하면 입안에 군침이 맴돌았다.

 
해풍에 말린 물메기로 끓인 탕.

해풍에 말린 물메기로 끓인 탕.


물메기탕은 외지인에게 인기 있는 음식은 아니다. 식도락가에게 인기 있는 메뉴는 따로 있다. 짬뽕을 비롯한 중화요리, 전쟁통에 내려온 피난민이 팔기 시작한 이북식 냉면, 작은 기사식당에서 먹던 무국, 그리고 단팥빵 등이다. 종류는 다채롭지만 이 음식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수십 년 역사를 자랑하는 유서 깊은 집에서 음식을 판다. 그러니까 지금 주목받는 군산의 음식을 먹는 건 또 다른 시간 여행인 셈이다.

겨울에 군산을 찾은 이들은 순례 코스처럼 겨울 철새를 구경하곤 했다. 붉은 노을을 배경으로 가창오리 수만 마리가 군무를 추는 모습은 겨울 군산 여행의 진풍경이었다. 하나 올 겨울은 심각한 조류독감 사태로 철새 출몰 지역 대부분이 통제됐다. 새들의 힘찬 날갯짓을 못 보고 온 것이 못내 아쉬웠다. 그럼에도 오래된 풍경 속에서 아늑함을 느꼈고 맛난 음식으로 가슴이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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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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