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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붕괴 #8. 잠입 (3)

“이런 식으로 한 구획씩 점검하면 안전할 겁니다. 다음은 저쪽입니다.”
 
“김원섭 씨와 이유리 씨 먼저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둘 다 무기도 없는데 아까 그 원숭이가 덤비기라도 하면 큰일 날지도 모릅니다.”

 
나는 복도 맞은편 문을 가리킨 차재경에게 반문했다.
 
“어차피 두 사람도 이 근처에서 멀리 가지 못했을 겁니다. 만약 그 두 사람을 찾는답시고 뿔뿔이 흩어지기라도 한다면 더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환자들을 미끼로 이 어두컴컴한 곳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여 놓고서 그런 태평한 얘기를 하는 겁니까?”
 

그의 판단이 합리적이라는 판단은 머릿속에서 맴돌았지만 울컥해진 가슴은 반대로 말을 하게 만들었다.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다면 말리지 않겠습니다. 나가시는 길은 알고 계시죠?”
 
푸르스름한 빛이 역류하고 있는 복도 끝을 가리킨 차재경이 이죽거리며 말했다. 분을 참지 못한 나는 차재경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말해봐. 대체 이 안에서 내 아들이랑 이 사람들 가족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흥분은 이 일을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우린 이제 겨우 시작한 거고, 아직 할 일이 많습니다. 아들과 아내를 찾고 싶다면 절 따라오십시오.”

 
한 모금의 감정도 담겨있지 않은 차재경의 말은 나까지 얼어붙게 만들었다. 양손을 하얀 가운의 주머니에 찔러 넣고 환자의 말 대신 차트에 쓰여있는 알 수 없는 기호들에게 더 무게를 두었던 주치의가 떠올랐다. 나중에 주치의에게 환자에게 감정을 느끼면 진료에 지장이 있기 때문에 일부러 차갑게 대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그때 느꼈던 미묘한 불안감은 아직 가슴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아픔을 치료하고 분석하지만 그 아픔을 받아들이거나 이해하지 못했던 의사들에 대한 깊은 반감은 차재경이라는 불씨를 만나 활활 타올랐다. 하지만 가족들은? 저 깊은 어둠 어딘가에서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들을 떠올리자 그만 증오의 불길은 사그러 들고 말았다. 두 손을 늘어뜨린 나는 눈을 치켜뜨는 소극적인 의사표시를 했고, 어깨를 한번 으쓱거린 차재경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쪽입니다.”
 
두 번째 구획 역시 별다른 구조물이 없었던 덕분에 금방 수색이 끝났다. 각 방을 뒤질 때마다 구석에 숨어있는 원숭이가 튀어나올까 바짝 긴장하던 사람들은 제법 능숙하게 방들을 뒤져나갔다. 우선 문 양쪽에 한 사람씩 붙어 있다가 문이 열리면 대각선 쪽으로 창에 달린 플래시로 살펴보고, 아무 이상 없으면 진입하는 식이었다. 벽에 바짝 붙어있던 책상 틈새로 화염방사기를 대고 화염을 쏘았다. 한 방의 수색이 끝나면 문을 닫고, 최종적으로 구획 전체의 수색이 끝나면 그 구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은 창을 비스듬히 세워서 막아두는 식이었다. 다른 두 구획의 수색은 순조롭게 끝났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뭔가를 잊기 위해 어둠 속을 헤집고 다녔지만 두 사람은 물론 기괴한 원숭이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형광색의 액체가 아주 희미하게 묻어있는 흔적과 이유리가 들고 다니던 포켓 성경이 두 번째 구획의 제일 큰 방구석에 떨어져 있는 것만 발견했을 뿐이었다. 팽팽하던 긴장감이 조금씩 느슨해지고 자연스럽게 역할 분담이 되면서 수색은 점점 빨라졌다. 농담 삼아 스스로를 돌격대라고 지칭한 이대백과 두 덩치, 그리고 오희섭이 선두에 섰고, 군대 시절 스나이퍼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주장한 김길수가 장전된 사제 권총 두 자루를 들고 뒤를 받쳤다. 나와 이무생, 그리고 그의 아들 이형주는 돌격대의 뒤를 따랐고, 자연스럽게 뒤로 쳐진 여자들 사이에서는 김승리가 보디가드 역할을 맡았다. 얼굴 여기저기에 반창고를 붙인 최민우는 김승리 곁을 떠나지 않았고, 박금봉 역시 누이 박금자와 쉴 새 없이 말다툼을 벌이면서도 멀리 떨어지지 않았다.
 
“어떻게 아래층으로 내려갈 겁니까? 아까 김원섭 씨 말로는 계단이 두 군데 있다고 그러던데요?”
 
마지막 네 번째 구획의 수색을 거의 마칠 즈음 나는 사제와 함께 사람들과 약간 떨어진 채 움직이는 차재경에게 물었다.
 
“중앙 쪽에도 나선형 비상계단이 있습니다. 비상계단들을 폐쇄하고 중앙 비상계단을 이용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한 군데만 남겨놓았다가 그곳에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합니까? 환자들이 상태가 안 좋아서 스스로 걷지 못하면 나선계단으로는 이동이 어려울 것 같은데요.”
 
“비상계단 문은 계단 쪽으로 열리게 되어있습니다. 위층에서 막아놓는다고 열리지 않는 건 아닙니다. 우리를 탈출한 실험용 동물들을 막기 위한 수단쯤으로 보시죠. 저쪽 비상계단은 저와 사제님이 가서 닫고 오겠습니다. 정현 씨가 저쪽을 막아주시겠습니까?”
 

차재경은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는 어둠 속을 성큼성큼 걸어가 버렸다. 차재경과 사제가 만들어낸 또각거리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몸을 돌렸다. 이곳에 비상계단이 있음을 알리는 녹색의 불빛이 복도 끝에 커튼처럼 걸려있었다.
 
“같이 가십시다. 혹시 또 모르니까...”
 
씩 웃은 이대백이 내 어깨를 툭 치고는 통로를 따라 먼저 걸어갔다. 창을 어깨에 걸친 나는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강화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통로의 벽들은 빛을 제대로 빨아들이지 못하고 거칠게 되 뿜어냈다. 빛과 벽이 뒤엉켜 부스러진 통로를 지나는 내내 이대백은 아무 말이 없었다. 비상계단의 넓은 철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천정을 흘끔 쳐다본 이대백은 막을만한 뭔가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구석에 놓여있던 소화기를 들어다가 철문 앞에 바짝 붙여놓았다.
 
“이 정도면 되겠죠?”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일행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다 철문 한쪽 구석에 묻은 형광색 피를 발견했다. 물론 구획들을 수색하면서 점점이 뿌려진 형광색 핏방울들을 봤지만 철문에 묻어있는 피는 앞의 것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 보였다. 눈길은 자연스럽게 그 형광색 핏자국들이 뿌려진 근원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그 피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게 되었을 때에는 숨이 멎어지는 것만 같았다.
 
“벽에다가 형광색 페인트를 확 뿌린 것 같군요.”
 

곁에 선 이대백이 씨근덕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중얼거렸다. 그의 말대로 비상계단의 철문 옆쪽 벽에는 양동이 가득 든 것을 힘껏 뿌린 것처럼 형광색 페인트가 잔뜩 묻어있었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아직도 흘러내리는 그 형광색 핏줄기 사이로 다른 잔해들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원숭이의 부서진 머리는 벽에 턱을 바짝 대고 있었고, 그 머리 아래 말린 미역처럼 푸석푸석한 몸통이 바닥을 쭉 늘어져 있었다. 벽에 달라 붙어있던 끈적한 형광색 핏물 중간중간에는 수프 위에 살짝 떠 있는 고명 같은 덩어리들이 바닥을 향해 천천히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자살이라도 한 걸까요?”
 
형광색 핏자국이 묻어있는 철문과 원숭이가 산산 조각나버린 벽을 번갈아 쳐다보던 이대백이 입을 열었다. 평소 같았다면 자살하는 원숭이 운운하는 것 자체가 농담거리겠지만 어둠은 모든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어버렸다.
 
“글쎄요. 뭔가에 쫓겨서 도망치다가 제대로 못 보고 부닥쳐버린 걸 수도 있겠죠.”
 
“어쨌든 골칫거리가 하나 해결됐네요. 돌아갑시다.”
 

내 어깨를 툭 친 이대백이 몸을 돌렸다. 어둠 건너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에서는 반딧불 같은 불빛들이 명멸했다. 천천히 뒷걸음질을 치며 원숭이가 죽어있는 비상계단 쪽을 벗어나던 나는 벽에 붙어있는 형광색 페인트 한가운데에 떠오른 한 쌍의 눈과 눈이 마주쳤다. 사람의 눈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원숭이의 눈은 담아낸 것을 저장하거나 기억해낼 수 있는 머리를 잃어버렸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맹렬한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삐빅거리는 나지막한 신호음이 깨울 때까지 나는 그 눈들과 눈싸움을 벌였다. 신호음을 낸 것은 이대백의 손목시계였다. 손목시계를 흘끔 들여다본 이대백의 표정이 복잡해졌다가 내 시선을 눈치채고는 풀썩 웃어버렸다.
 
“약 먹을 시간이었네요. 아들 녀석이 그렇게 죽고 나니까 몸이 예전 같지가 않아서 몇 가지 약을 먹고 있었습니다.”
 

허리 뒤에 매고 있던 가방에서 알약을 꺼내서 입안에 털어 넣은 이대백이 생수 한 모금으로 마무리했다. 문득 궁금해진 나는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약을 드시는 겁니까?”

 
“하나밖에 없는 아들 녀석이 비명횡사하니까 아내는 그 모든 게 다 내가 성찬이한테 복싱을 가리켰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라는 말을 정말 지독하게 경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살아야겠다고 약도 챙겨 먹고 운동도 했는데 그럴만한 이유가 사라져버리니까 어느 순간부터는 그 모든 게 다 귀찮아지더군요.”
 
“그래도...”
 
“여기 들어온 사람 중에 사연 없는 사람 어디 있겠습니까? 참, 지금은 여덟 시 사십오 분입니다. 사실은 그걸 물어보려고 했던 거 다 압니다.”

 
히죽 웃은 그가 걸음을 빨리했다. 세화 병원이 붕괴된 지 네 시간 사십오 분이 지났고, 우린 임상실험센터 지하 1층의 수색을 끝냈다.
붕괴 네 시간 사십오 분 경과, 지하 1층
 
통로 양쪽으로 나눠져서 우릴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눈에는 왜 늦었냐는 의문이 떠올랐지만 아무도 그걸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어깨를 으쓱거린 이대백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원숭이를 찾았습니다.”
 
“비명소리 같은 건 안 들리던데, 잡은 겁니까?”

 
오희섭이 물었다.
 
“사실은 벽에 부닥쳐서 산산조각 난 잔해를 발견했습니다. 왜 벽에다가 박치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골칫거리가 사라졌으니까 안심이네요. 선생님과 사제님도 아까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이제 아래층으로 내려가죠.”
 

오희섭의 말에 벽에 등을 붙이고 있던 사람들이 몸을 움직였다. 앞장선 차재경이 사람들을 끌고 교차하는 통로가 마주치는 곳으로 가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통로들이 마주치는 중앙 정원에 있는 비상계단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만들어놓은 겁니다. 물론 이럴 때 쓰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말입니다.”
 
원형으로 뻥 뚫려있는 중앙 정원 주변에는 나무로 만든 벤치와 하얀 화분에 담긴 꽃들이 놓여 있었다. 차재경의 말대로 삭막한 병원이라는 느낌을 조금이라도 희석시켜줄 의도였겠지만 지하에 있는 실험센터라는 무미건조함을 이겨내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가슴 높이의 투명한 유리 난간 바깥쪽에는 철제로 만든 나선형 계단이 붙어있었다. 유리 난간에 손을 잡고 머리를 바깥으로 삐죽 내민 최민우가 탄성을 질렀다.
 
“오마이 갓! 여기서 보니까 그랜드캐니언 같은데요. 승리누나 그랜드캐니언 가봤어요?”
 
사람들은 하나둘씩 유리 난간 주변에 몰려들었다. 최민우의 호들갑만큼은 아니었지만 지하 7층까지 한꺼번에 뚫린 공간은 광활히 보이기까지 했다.
 
“그냥 계단을 타고 병실이 있는 곳까지 한 번에 내려가면 안 됩니까? 아무것도 없는 곳을 뒤지는 건 시간 낭비인 것 같은데요?”
 
그때까지 잠자코 있던 김달호가 한없이 깊은 난간 아래쪽의 어둠을 내려다보며 차재경에게 물었다.
 
“지하 3층에 동물 실험실이 있습니다. 아까 그 원숭이도 그 실험실에서 탈출한 것 같은데 그놈들이 숨어 있다가 환자들을 데리고 올라오는데 공격이라도 해오면 일이 더 복잡해질 수 있습니다. 초조하더라도 한 층씩 뒤져가면서 안전한지 확인한 후에 가는 게 좋겠습니다. 거기다 김원섭 씨와 이유리 씨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개를 저은 차재경의 말을 이무생이 거들고 나섰다.
 
“그려, 우리 선상님 말씀대로 해야제. 속담에도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잖아.”
 
“환자들은 병실에 그대로 있을까요?”
 
아버지를 흘끔 노려본 이형주의 물음에 차재경이 턱으로 바닥에 깔린 어둠을 가리켰다.
 
“일단 비상 상황이 생기면 7층에 있는 중앙 실험실에 집결시키라는 지시를 내려놓았으니까 간호사나 의사들이 환자들을 그곳으로 이동시켰을 겁니다.”
 
“어서들 움직입시다. 벌써 밤 아홉 시에요.”

 
이대백의 말에 차재경은 유리 난간 중 붉은색 삼각형 표시가 있는 칸을 밀었다. 지하철 스크린 도어의 비상 탈출구처럼 바깥쪽으로 열린 유리 난간 바깥에는 계단과 이어진 발판이 있었다.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철이 깔린 철제 발판은 나선형으로 비틀린 채 어둠 속으로 이어져 있었다.
 
“정말 안전한 거 맞아요?”
 
박금봉이 묻자 차재경은 대답 대신 발판에 몸을 실었다. 아무 말 없이 계단을 내려가는 그를 따라 사람들은 하나둘씩 발판에 올라섰다. 파이프로 만든 계단의 난간 너머는 완곡한 어둠뿐이었다. 무심코 난간 바깥을 내려다보던 박금봉이 어지럽다는 듯 머리를 터는 모습이 보였다. 계단에 몸을 싣고 제일 처음 느낀 것은 발밑이 허전하다는 불안감과 어디선가 물이 콸콸 흐르는 소리였다. 혹시 어둠에 너무 오랫동안 갇혀있어서 들리는 환청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대백을 쳐다보자 그 역시 뭔가 들린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우와, 저기 봐요. 완전 나이아가란데요.”
 
난간에 몸을 기댄 최민우가 신기하다는 듯 소리쳤다. 최민우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은 두 층 아래였다. 계단으로 이어지는 발판을 타고 아래로 떨어지는 물의 양은 만만치 않아 보였다.
 
“대체 왜 저런 겁니까?”
 
“아무래도 소화전이 터진 모양인데요. 내려가서 잠가야겠습니다.”
 

짧게 대꾸한 차재경은 아래층의 발판에 서서 유리 난간을 밀어젖혔다. 털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안쪽으로 열린 난간을 밀치고 계단을 벗어난 그가 헤드램프로 천천히 지하 2층을 둘러보았다. 사방으로 뻗은 통로들 한편에는 거의 사람 크기로 02라는 굵고 검은 숫자가 쓰여 있었고, 그 옆으로 작은 하이픈과 함께 숫자 절반 크기로 영어가 쓰여 있었다.
 
“south? 그냥 남쪽이라고 하면 어디가 덧나나?”
 
김길수의 이죽거림에 앞장선 차재경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지하 2층도 1층을 복사한 것처럼 똑같은 구조였다. 다만 한 층 아래로 내려왔다는 설익은 불안감 탓인지 좀 더 싸늘한 공기가 느껴졌다. 두 덩치들을 마지막으로 지하 2층 중앙 정원에 내려온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생각인지 어두운 얼굴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뭣들 해요. 어서들 서둘러야지 애기엄마랑 아빠를 찾을 거 아니에요.”
 
약 상자가 무거운지 바닥에 내려놓고 숨을 고르던 박금옥이 남자들에게 말했다. 이대백도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아주머니 말대로 좀 서두릅시다.”
 
갑자기 입을 다문 이대백이 시선을 비스듬하게 들어 올렸다. 그의 눈빛에 떠오른 놀라움이라는 감정을 읽어낸 나는 그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분명 우리들이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존재에 대한 생각이 얼핏 들었다. 느슨하게 쥐고 있던 창을 바짝 움켜쥐고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헤드램프의 불빛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 역시 주변을 살펴보는 기색이었지만 별다른 걸 발견하지는 못한 것 같았다. 사실은 너무 조용해서 통로를 하고 흘러가는 바람 소리나 상태가 안 좋은 조명등이 지지직거리는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왜 겁을 주고 그래요. 놀랬잖아요.”
 
칭얼거리는 것 같은 최민우의 말에 곁에 있던 김승리가 바로 쏘아붙였다.
 
“입 좀 다물어! 이 소리 안 들려?”
 
“어떤 소리?”

 
그 순간 모두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최민우의 반문에 답하듯 이대백이 시선을 얼어붙게 했던 소리가 나지막하지만 좀 더 강하게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대부분 그 소리의 정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 역시 그냥 물이나 공기가 흐르는 소리라고 느꼈으니까...
 

작가 소개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대기업 샐러리맨을 시작으로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를 거쳐 길을 쓰고 있다. 소설과 교양서를 비롯해서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쓴다.  
장편소설 『폐쇄구역 서울』 『마의1, 2』 『쓰시마에서 온 소녀』 『김옥균을 죽여라』 『바실라』 『명탐정의 탄생』 등을 썼으며,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시리즈에 〈불의 살인〉을 비롯한 단편추리소설들을 발표했다.
역사 교양서 『연인, the lovers』 『혁명의 여신들』 『조선의 명탐정들』 『조선전쟁 생중계』 『고려전쟁 생중계』 『조선직업실록』 『조선백성실록』 등을 펴냈다.
2013년 제1회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했으며 2016년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W 크리에이터 상을 받았다.
현재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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