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매거진M]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 김민희

일 때문에 수원에 온 영화감독 함춘수(정재영)는 우연히 만난 화가 윤희정(김민희)에게 반한다. 남자는 은근히 수작을 걸고, 여자는 야무지게 뿌리치지 않는다. 술을 마시며 한층 가까워진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공기가 흐른다. 여자는 남자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혼자 샐쭉 화가 나기도 한다. 별것 없는 연애담인 것 같지만, 막상 보고 나면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9월 24일 개봉, 홍상수 감독)는 퍽 신기한 영화다. 1부 ‘그때는맞고지금은틀리다’와 2부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언뜻 보면 헷갈리기 십상인 제목만큼이나 닮은 듯 다른, 다른 듯 닮은 이야기를 펼친다. 이는 같은 경험을 한, 두 사람의 다른 기억일 수도 있고, 영화적 상황과 현실적 상황을 나란히 붙여 놓은 두 개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정재영과 김민희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극 중에서 캐릭터와 실제 모습을 줄타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디까지나 연기에 충실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재영은 춘수를 “좀 이상하다”고 하고, 김민희는 그런 춘수를 “너무 귀엽다”고 한다. 이날 화보 촬영과 인터뷰 현장에는 홍상수 감독이 자리해 그런 두 배우를 흐뭇한 얼굴로 지켜봤다. 홍 감독은 영화를 찍을 때 배우들에게 들려주었다는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의 노래 ‘페일 블루 아이즈(Pale Blue Eyes)’를 들려줬다. “어, 이 노래!”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차기작 영화 촬영 현장에서 바쁘게 달려와 숨을 고르던 두 배우가 반가워하며 멜로디를 흥얼거렸다. 그들에게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소환되는 순간이었다. 영화에 대해 묻자, 두 배우에게서 그들이 연기한 인물만큼 이상하고 귀여운 이야기가 쏟아졌다.


희정은 그림을 그린다. 예전에는 다르게 살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그의 말마따나 “그냥 그림만 그리면서” 산다. 희정이 우연히 만난 남자 춘수에게 조곤조곤 풀어놓는 말에서 조금씩 그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보이기 시작한다. 낯설어서 경계도 했다가, 토라지기도 했다가, 환하게 웃는 희정은 예민하고 귀여운 여자다. 홍 감독 영화 속으로 성큼 들어서 희정의 옷을 입은 김민희(33)는 예상보다 훨씬 근사했다. 아니나 다를까,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은 그는 “찍는 내내 너무 재미있었다”며 눈을 반짝였다.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감독이 배우를 캐스팅하는 과정은 때론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렵고, 때론 슥 하고 간단하게 해결되는 일이기도 하다. 홍 감독과 김민희의 만남은 후자였다. “어느 날 감독님이 그냥 툭 저를 떠올리셨대요. (이)선균 선배가 전화해서 ‘홍 감독님 이번 영화 출연할 생각 있어?’라고 묻기에 ‘있다’고 했어요.” 김민희는 홍 감독과의 첫 만남을 “소개팅 같았다”고 기억한다. “형제 관계 같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무래도 시나리오를 읽은 뒤 미팅하는 것과는 분위기가 다를 수밖에 없었죠. 소개팅은 안 해 봤는데 ‘남들은 이렇게 하는 건가’ 싶었어요. 홍 감독님께도 그렇게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소개팅하는 것 같다고.”

첫 촬영 날 아침까지도 김민희는 앞으로 자신이 연기할 희정이라는 여자에 대해 전혀 몰랐다. 수원에 사는 화가라는 설정은 표면적 정보에 불과했다. 어떤 마음을 안고 사는 여자인지,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는 여자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대신 김민희는 매일 아침 현장에서 홍 감독이 건네주는 따끈따끈한 ‘쪽 대본’을 받아들고 희정에 대한 밑그림을 그려 나갔다. 촬영 전 배우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인 시나리오. 그것을 통해 캐릭터를 구축하는 방식이 익숙한 김민희에게는 퍽 낯선 접근법이었다. 중요한 건, 이런 방식이 김민희에게 “너무 재미있게” 느껴졌다는 사실이다. “다들 모여 아침 식사를 할 때 시나리오가 나와요. 밥이 안 넘어가죠(웃음). 카메라 앞으로 걸어가는 와중에도 대사를 외울 만큼, 현장은 늘 빈틈 없이 꽉 짜인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그게 스트레스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김민희는 ‘이런 촬영이라면 매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즐거웠다고 했다.

 

사진=전소윤(STUDIO 706)

사진=전소윤(STUDIO 706)

이 영화에서 희정의 처음과 마지막 등장은 모두 뒷모습이다. 희정은 고궁을 거니는 뒷모습으로 다가와, 눈길을 사뿐사뿐 걸어가는 모습으로 멀어진다. 그러니 극 중 시간 흐름과 똑같은 순서로 찍은 이 영화에서 김민희가 희정을 가장 온전하게 이해하고 있는 순간은 마지막 장면일 것 같았다. 희정으로 산 시간이 김민희 안에 가장 많이 쌓여 있는 순간일 테니까. 이 추측을 가만히 듣고 있던 김민희는 “음… 전 희정이 어떤 사람인지 특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진 않았어요”라고 운을 뗐다. 그리고 나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촬영 당일 시나리오를 받으면 느껴지는 감정 그대로 몰입했어요. 그러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희정이 춘수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하는 마음과, 오늘은 이 현장에서 내가 과연 무엇을 찍을지 궁금해 하는 마음이 비슷하게 겹쳐졌다고 할까요. 저도 연기하면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죠.”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영화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그렇다고 김민희가 낯설도록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는 뜻은 아니다. 어쩌면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극 중 희정에게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쭈뼛대는 초식 동물 같은 모습이 여러 번 발견되곤 한다. 조금은 도도하고 대부분 수줍어 보이는 그 모습은 곧 배우 김민희의 매력이다. 캐릭터를 입고 있되 배우 고유의 매력이 가장 극대화된 모습으로 은은하게 빛나는 영화.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는 딱 그런 영화로 보인다. 이는 홍 감독이 그만큼 김민희에게 꼭 맞는 옷을 주었다는 말이기도 하고, 김민희가 그만큼 영화에 잘 녹아들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1부보다는 2부의 희정이 조금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면이 있는데, 김민희 역시 2부의 희정에게 마음이 더 간다고 했다. “홍 감독님이 1부 촬영이 끝나고 영화를 보여주셨어요. 데칼코마니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시면서, 2부에선 ‘이보다 조금 더 외로워졌으면 좋겠어’라고 하셨어요. 같은 사람이라도 어떤 감정을 지니고 있는지에 따라 표정이나 말투, 모든 것이 바뀌니까요. 그렇게 2부의 희정이 나왔어요.” 김민희는 이 영화가 “예쁘고 깨끗해서 좋다”고 했다. “더 이상의 표현은 잘 못하겠어요. 찍으면서 ‘말은 말일 뿐’이라는 걸 느꼈거든요(웃음). 정말 좋은 마음은 표현하기에 쑥스럽기도 하고, 괜히 잘못 말하면 가식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냥 마음에 잘 간직해야죠.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관객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는 걸 보고 내심 기뻤어요. 저와 같은 마음인 것 같아서요.”

알려졌듯, 김민희는 지금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2016년 개봉 예정)를 촬영 중이다. 내로라하는 작가 감독들이 궁금해 하고, 함께 작업하기를 원하는 배우. 어느덧 김민희는 상업영화와 작가영화를 유연하게 오갈 수 있는 귀한 여배우가 됐다. 배우로서 행복한 환경이지만, 모두의 기대치가 올라간 만큼 예전보다 덜 자유로운 것은 아닐까. 김민희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연기로 보답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예전보다 커진 건 맞아요. 그런데 전 그 기분이 버겁거나 나쁘지 않아요. 오히려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예전 같으면 ‘이게 아닌가’ 하면서 움츠러들었을 부분에서도, 이제는 적어도 자신 있게 지를 수 있어요. 아주 쪼~끔이지만(웃음).” 외롭고 예민하고 귀여운 여자 희정은 영화 안에서 사뿐사뿐 걷고 말하고 웃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다름 아니라 한껏 자유로워져 더없이 가볍게 걷고 있는 배우 김민희의 움직임이기도 했다.


글=이은선 기자 haroo@joongang.co.kr 사진=전소윤(STUDIO 706)

*매거진M 130호(2015.09.11-2015.09.17)에 실린 기사입니다.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