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취재일기] 소녀상, ‘제2의 한·일 어업협정’ 안 되려면

유지혜 정치부 기자

유지혜
정치부 기자

1997년 12월 30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외상이 청와대로 김영삼(YS) 대통령을 예방했다. 오부치 외상은 양국이 협상 중이던 한·일 어업협정에 대해 ‘파기’ 운운하면서 으름장을 놓던 인물이었다. 그런 오부치 외상이 외환위기를 맞은 한국에 67억 달러 추가 지원 카드를 들고 방한했다. 95년 과거사 왜곡 발언을 한 일본 정치인을 향해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했던 YS였지만, 오부치 외상에겐 “일본의 지원에 고마움을 표한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약 한 달 뒤인 98년 1월 22일 일본은 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김대중(DJ) 당선인이 “새 정부에서 해결하자”고 했지만 일본은 무시했다. 65년 체결돼 30년 이상 어업 질서를 규율했던 어업협정 협상의 쟁점은 자국 어선만 조업할 수 있는 ‘전관 수역’의 범위를 어떻게 설정할지, 양국이 공동 어로를 할 수 있는 중간 수역의 동쪽 경계선을 어디에 그을지였다. ‘환란’과 정부 교체기를 노려 뒤통수를 친 일본은 “한국이 양보하지 않아 어쩔 수 없다. 차라리 일방 파기가 협상을 가속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궤변을 펼쳤다.

19년이 지난 2017년 1월 비슷한 일이 재연되고 있다. 부산 총영사관 앞 소녀상 설치를 이유로 일본이 취한 한·일 통화스와프 협상 중단 등의 강경 조치들이 리더십 공백 상태인 한국을 흔들고 있다는 점에서다.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19년 전 일본의 협정 일방 파기는 국제사회에서 비판받아 마땅한 규범 위반이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변변한 대응도 못했다.

임기 시작과 함께 부담을 지게 된 김대중 정부는 협상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DJ의 첫 방일(99년 10월) 직전 타결을 하긴 했으나, 한국 어선이 쌍끌이 조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빼먹어 외교장관이 도쿄로 가 재협상을 조르는 우스운 모양새가 연출됐다. 외교부 관계자는 “알고 보니 일본은 YS의 버르장머리 발언 이후 2년 동안 물밑에서 치밀하게 어업협정 개정을 준비해 왔더라.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에서 우리는 많이 양보할 수밖에 없었고, 국내 반발까지 겹쳐 곤욕을 치렀다”고 회고했다.

이번엔 19년 전과 달라야 한다. 한·일 관계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거나 섣불리 감정적인 대응을 해선 안 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정지 상황에서 각 정당은 물론 대선주자들부터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외교부도 무대응으로만 일관할 때가 아니다. 국내적으로 합의에 반대하는 국민과 피해자에 대한 설득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일본 지도자들이 합의의 본질을 오도하면 명확히 경고도 해야 한다. 적도, 친구도 없는 외교무대에서 상대가 우리의 약점을 이용한다고 비난만 해 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유지혜 정치부 기자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