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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의 맛집] 바삭 껍질, 쫄깃 뱃살, 꾸덕 등살…대구포 한 접시에 담긴 세 가지 식감

| 셰프 최정윤의 ‘충무집’


메뉴판 따로 없고 벽면에 ‘제철 메뉴’
고소한 소라무침, 시원한 물메기국
1년에 한 번 통영 제사음식으로 단골 초대


 
도시 지하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외관. 하지만 통영의 제철 해산물을 사용한 음식을 일단 맛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왼쪽 사진은 이집의 대표메뉴 중 하나인 물메기국.

도시 지하 건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외관. 하지만 통영의 제철 해산물을 사용한 음식을 일단 맛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왼쪽 사진은 이집의 대표메뉴 중 하나인 물메기국.


19살에 처음 요리를 시작한 후 직접 요리하는 만큼 시간을 투자하는 일이 남이 만든 요리를 먹어보는 일이다. 그리고 15년 전 도쿄 미식투어를 갔을 때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 식당의 가치를 알려주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요소는 바로 ‘손님’이라는 사실이다. 음식을 잘 만드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음식을 잘 즐기는 것도 대단한 내공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제는 식당의 손님을 구경하는 일이 음식 맛보는 것만큼 재밌다.

최근에 이렇게 반갑고 즐거운 경험을 한 식당이 있다. 통영의 제철 해산물로 통영 음식을 선보이는 ‘충무집’이다. 을지로 입구쪽에는 기본 30년에서 길게는 50년 된 복어집이나 노포들이 많다. 그래서 겨우 17년 밖에(?) 안 된 충무집에는 큰 기대가 없었다.

이 집엔 메뉴판이 따로 없다. 자주 바뀌는 제철 메뉴들이 벽에 붙어 있는 게 전부고, 메뉴판 이름만 봐서는 뭐 그리 특별한 맛이 있을까 감이 잘 안 왔다. 오래 고민한 끝에 벽에 붙은 메뉴 중 하나인 소라무침을 주문했다. 혹시 옆동네에 쭉 늘어선 을지로 골뱅이 같거나 초고추장에 오이·미나리 넣고 빨갛게 무친 소라 무침이 나올까봐 두렵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곳을 추천한 지인에게 할 말이 없어지니까.

하지만 나의 예상은 기분 좋게 빗나갔다. 바로 삶아내 아직도 따뜻한 소라를 약간의 참기름과 소금·깨소금·파·마늘로 가볍게 무쳐냈다. 굉장히 두껍게 썰어낸 소라에선 이곳 사장님의 재료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이집 메뉴 중 소라무침과 쏨뱅이찜은 사장님 댁에서 제사 음식으로 올렸던 것들이라고 한다. 통영 음식들은 양념을 거의 않고 재료 자체의 맛을 살리는 담백한 음식이 대부분이란다. 기본반찬이나 요리에 넣는 고춧가루도 재료의 맛을 헤치지 않는 최소한으로만 사용한다고. 그래서 국은 있어도 탕이라는 음식이 전통적으로 없는 곳이 통영이라는 곁들임 설명까지 들으니 충무집과 다른 메뉴들에 대해 기대가 생겼다.

마침 굴이 제철이라서 정갈하게 부쳐 나온 굴전과 잡어회까지 맛있게 먹고 대구포를 먹기로 했다. “충무집에 가면 대구포를 꼭 맛봐야한다”는 게 이곳을 추천한 지인의 당부였다. 유럽에서 대구 요리들을 먹으면서 대구의 맛이 이렇게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우리가 아는 건 고작 시원한 대구탕 정도 아닌가. 그런데 충무집에서 맛본 대구포는 굉장히 특색 있었다.
 
어른 팔보다 길고 살이 통통한 말린 대구를 들어 보이는 ‘충무집’ 배진호 대표.

어른 팔보다 길고 살이 통통한 말린 대구를 들어 보이는 ‘충무집’ 배진호 대표.


충무집의 대구포 한 접시에는 껍질·뱃살·등살 세 가지 부위의 세 가지 맛과 식감이 있다. 대구를 통째로 말리는데 껍질과 내장을 빼내면 살이 얇아지는 뱃살쪽은 바삭하게 마르고, 등살쪽은 살이 두꺼워서 촉촉하면서도 꾸덕한 식감이 자연스럽게 만들어 진다. 한 눈에 봐도 대충 말린 대구가 아니었다. 껍질은 여느 미슐랭 레스토랑에서 맛 볼 수 있는 애피타이저 스낵 수준으로 바삭하고 고소하다. 살짝 촉촉하면서 쫄깃하고 꾸덕꾸덕한 반건조 상태의 등살에선 염장한 대구 특유의 꼬릿한 냄새와 짠맛이 복합적으로 느껴진다. 여기에 더해지는 별미는 깨소금 살짝 뿌려 만든 초간장이다. 간장회사에서 일한지 7년이 넘다보니 웬만한 간장 맛은 본 것 같았는데 이건 대구포를 살짝 적셨다가 먹기에 알맞은 만큼 간이 딱 맞았다. 초간장에 대구포를 담갔다가 하나씩 꺼내 먹으면 말린 대구포의 고소함과 풍미가 배가 된다. 이렇게도 대구를 먹을 수 있다니, 정말 행복한 경험이었다.

마지막은 국물로 끝내야 할 것 같아서 물메기국을 주문했다. 자박자박 얇게 썬 무와 시원한 국물을 만들어주는 파, 옅은 분홍빛이 보일 정도로만 고춧가루를 더한 물메기국은 단연코 서울에서 맛본 최고의 물메기국이었다. 더하고 덜 할 것도 없이 균형 잡인 국물 맛이 보통이 아니었다. 당장 주방에 들어가서 국 끓이는 방법을 배우고 싶을 정도였다.

통영 토박이 배진호 대표님은 식당을 운영하면서 가장 하고 싶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통영의 음식문화’를 손님들에게 소개하는 일이란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다른 식당들과는 다른 충무집의 분위기가 이해됐다.

충무집의 손님들은 소란스럽지 않다. 어떤 음식부터 시켜야 할지 순서도 다 아는 듯 보인다. 결정적으로 제철 음식이 나올 때마다 “1년 만이구나” 하는 탄사가 터진다. 테이블마다 오른 술병은 그저 음식의 맛을 돋울 뿐, 과음하는 사람도 없다. 최고급 인테리어도 아니고, 주방이 바로 코앞에 있는 작은 지하의 식당인데 테이블 마다 놓인 음식들은 정갈하고, 그 음식을 먹는 손님들의 표정은 즐겁다. 식당 풍경으로 이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더욱이 이 집은 단골이 되면 배 대표님의 특별한 날에 초대도 받을 수 있다. 1년에 한 번 통영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날이다. 예전에 집에서 드시던 제사음식을 재현해서 감사한 손님들을 초대하고 있단다. 경쟁률이 세긴 하겠지만 앞으로 부지런히 다녀서 나도 그 초대를 받고 싶다.


 
충무집
● 주소: 중구 다동 140(남대문로 9길 24) 지하1층
● 전화번호: 02-776-4088
● 운영시간: 오전 11시~오후 10(일요일·공휴일 휴무)
● 주차: 건물 주차장 이용
● 대표메뉴: 잡어회 6만5000원(중)·8만5000원(대), 물메기국 1만6000원, 물메기국·멍게비빔밥 세트 2만1000원, 소라무침 3만원, 대구포 3만원
● 드링크: 소주·맥주 5000원씩, 화요25 2만5000원

 
이주의 식객
최정윤
셰프. 웨스틴조선호텔, 호주 하얏트퍼스, 스페인 알리시아 연구소 등에서 일했다. 전통 장의 가치와 식재료를 연구하고 해외에 알리는 샘표 장 프로젝트 디렉터로 근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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