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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이야기 해줄까 #8. 밤의 하얀 집 - 다시, 열한 살의 봄(4)

“한눈팔면 안 돼. 사랑은 그럴 때 달아나는 거란다.”
 
눈이 동그래진 내게 안나 이모가 말했다. 그녀는 정말 뜬금없고 종잡을 수 없는 말을 하고는 한다. 대기실의 누구도 안나 이모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다행스러웠다.
극장 안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었다.
나는 안나 이모가 말한 제일 앞자리에 앉았다.
두꺼운 외투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와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그들의 작은 입김과 기대에 찬 눈빛, 조그맣게 주고받는 말소리가 공기 속을 술렁이며 떠다녔다. 불이 꺼지자 주위의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안나 이모의 공연을 기대하며 숨을 죽였다. 겨울이지만 손바닥에 땀이 고여 외투에 몇 번을 닦아냈다.
분명 커다란 극장에서 펼치는 이야기라면 이제까지 듣지 못했던 깜짝 놀랄 만큼 멋진 세계일 거였다. 지난밤 초라하고 비참한 들판의 나무 따위는 이미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불이 켜지고 무대에 주인공 남자와 여자가 나왔다.
뒤편으로는 나무 옷이나 검은 천을 뒤집어쓰고 두 팔을 한껏 벌린 사람들이 서 있었다. 배경 역할인 모양이었다. 주인공 여자 배우가 움직일 때마다 검은 천을 입고 얼굴만 빠끔히 내놓은 사람이 따라다녔다. 깜깜한 밤하늘 같은 검은 천 때문에 여자 배우 얼굴이 더 환하게 보였다.
나는 그 진중한 움직임을 보며 입을 막고 쿡쿡 웃었다. 관객들도 자주 웃음을 터뜨렸다. 연극은 코믹한 내용이었지만 주인공들은 진지한 얼굴로 대사를 이어나갔다. 코믹하게 행동하는 것은 배경들뿐이었다. 여자 배우가 빠르게 걸으면 무표정한 검은 천도 우르르 걸음을 옮겼고 또박또박 걸으면 덩달아 느려졌다. 그런 우스꽝스럽고 하찮은 역할로 출연하는 배우가 있다는 게 계속, 계속 신기했다.
무대에 환한 불이 들어왔다.
배우들이 다시 나와 작별 인사를 했다.
그렇게 연극은 끝났다.
관객들이 극장을 빠져나가느라 잠시 술렁였을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안나 이모의 이야기 공연 따위는 없었다. 나는 꿈쩍도 않고 앉아 있었다. 손가락도 움직일 수 없었다. 눈으로 어딘가에 있을 안나 이모를 찾았다.
 
“차차.”
 

목소리를 좇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눈이 크게 벌어졌다. 안나 이모가 자루 같은 검은 천을 입고 서 있었다. 검게 칠한 분장도 지우지 않은 채였다. 온통 검은색이어서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조금은 찡그린 것 같기도 하고 조금은 웃는 것 같기도 한 그녀는, 희미한 조명 아래서 정말 까만 밤하늘처럼 보였다.
안나 이모가 천천히 걸어와 옆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서로 말이 없었고 꼭 그만큼 조용한 극장에 앉아 있었다. 세상의 모든 불빛이 꺼진 느낌이었다.
 
“외롭지 않나요?”
 
내가 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바보 같은 질문이었다.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안나 이모가 신경질을 낸 것도 아니었다. 조용하고 희미한 어둠 속에 앉아있을 뿐이었다. 나는 신발 속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그때는 밀려난다고만 생각했지, 스스로 가는 방법을 몰랐으니까.”
 
안나 이모가 말했다. 다시 침묵이 이어졌지만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별이 보이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손으로 눈을 비비자 안나 이모가 담담한 표정과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대에서 나무나 바위, 혹은 밤하늘로 살아가는 일과 까맣기만 했던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는 것들이 어떤 빛을 띠는지,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것들을 곤란하지 않을 정도로 맞아들이고 믿는 일에 대해서였다. 슬픔 자체는 끝이 없지만 ‘어떤 슬픔’에는 끝이 있다는 걸, 사랑은 영원하지만 ‘어떤 사랑’은 분명 끝이 난다는 걸 깨달은 일도 있었다.
어쩌면 이야기 예술사인 그녀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바로 그런 것들이 아니었을까 한동안 생각했다.
많은 것들이 더디거나, 혹은 빠르게 그녀 곁에 머무르거나 스쳐 지나갔고 다시 찾아왔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커다란 나무처럼 아름다운 그녀 몸에서 잎들이 돋아났다 시들었으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고, 또다시 푸른 잎이 돋아나는 풍경이 솟아올랐다. 안나 이모는 아름다운 것들은 그렇게 한순간에 지나가버린다 했다. 그런 것들은 세상에 얼마든지 많으며 그걸 깨닫는 순간이 등뼈가 자라는 때라고도 했다. 그래서 자신은 등뼈가 십 센티미터나 자랐다며 희미하게 웃었다.
 
“평생 알아차리는 순간이 안 오면 어떻게 되는데요?”
 
“등뼈가 자라지 않겠지.”
 
“그럼 키가 크지 않을까요?”

 
나는 그렇게 물었지만 그녀가 말하는 것이 진짜 등뼈일 리는 없다 생각했다.
 
“괜찮아.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크고 작게 그런 순간을 맞으니까.”
 
그녀의 말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 충분히 알 수 있는 순간이 찾아올 거라 생각하니 크게 두렵지는 않았다. 그녀는 자신이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아닌, 누군가 보기에 볼품없다고 말할 수도 있는 지점을 지나는 중이라 했다. 나는 특별할 게 없지만 똑같은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듣고 싶어 하는 아이처럼 계속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우리는 극장을 나와 너무하다 싶을 만큼 깜깜한 어둠 속을 걸었다.
담쟁이덩굴 집에서 사계절을 보냈지만 여전히 새아빠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안나 이모는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엄마가 죽었을지 모른다 생각했다. 나를 향한 그녀의 순정한 배려는 뭉근하게 부드러워질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하나의 이야기로 풀어지겠지.
우리가 걷는 동안 바람이 눈송이들을 밤의 허공으로 흩날렸다.
느린 걸음을 걷기 시작하자 소복하게 내리는 눈이 소리를 낸다는 걸 알게 되었다. 깜깜한 하늘에서 눈의 빛이 내는 소리였다.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걸음 소리 누군가를 끌어당겨 등뼈를 어루만지는 소리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소리였다. 안나 이모와 나는 어둠 속에 쭈그려 앉아 눈송이들을 한없이 들여다보았다. 작고 사소한, 대단한 건 아니겠지만 분명 무언가 솟아오르고 있을 세계였다. 나는 눈물을 흘렸다. 길게 울지는 않았다. 아주 조금이었다.


 
*
 
 
가방에서 다시 초대장을 꺼내들었다.
안나 이모를 닮은 날렵한 글씨들을 보자 예전처럼 쿡쿡 웃음이 나왔다. 기차에서 내려 햇살 사이로 먼지가 흩날리는 길을 걸었다. 내가 열한 살 때 안나 이모와 함께했던 풍경을 지나는 동안 서서히 푸른빛이 내려앉았다. 나는 외삼촌 집으로 가기 전 바이바이 바의 담쟁이덩굴 집에서 안나 이모와 사계절을 함께 보냈다. 그 후로 만나지 못했지만 종종 깜깜한 어둠 속으로 내려앉을 때마다, 그래서 등뼈가 자라나는 순간마다 내 안에서 그녀가 솟아올랐다.
이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안나 이모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있을지 궁금해 걸음을 재촉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눈앞이 성큼성큼 어두워졌다.
마당 앞에 다다라 가쁜 숨을 골랐다.
바이바이 바의 낡은 나무 간판이 바람을 타며 탕탕 흔들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담쟁이덩굴 집은 불이 꺼져 온통 깜깜했다. 분명 초대장에는 안나 이모가 출연하는 연극 공연이 오늘 열린다고 적혀있었다.
 
푸르스름한 어둠에 싸인 담쟁이덩굴 집을 향해 곧장 걸었다.
큰소리로 안나 이모를 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걸어가는 동안 이유를 알 수 없는 뭉근한 덩어리 하나가 가슴속에서 일렁였다. 멀리, 숲을 휘돌아온 바람이 내 쪽으로 불어왔다. 멈춰 서서 바이바이 바의 지붕을 쳐다보았다. 무언가 바람을 타며 흩날리고 있었다. 기다란 깃대에 꽂아놓은 흰빛의 천이었다. 어두웠지만 그것이 함께 살 때 내가 입었던 하얀 레이스 원피스란 걸 단박에 알아보았다. 순간 열한 살의 내가, 그리고 원피스를 만들어주었던 안나 이모가 까만 밤하늘에서 부들부들한 촉감으로 일어섰다. 그녀는 그녀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흰빛의 천으로 나를 맞아들였다.
안나 이모다운 초대 방식이었다.
나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전해주는 이야기 앞에 서 있었다.
혼을 떠나보내는 의식 같은 공연이 마음에 든 건 아니지만 지붕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바이바이 바의 나무간판이 바람을 타며 탕탕 소리를 냈다. 동시에 안나 이모의 노랫소리가 검은 허공으로 흩어지며 희미한 빛으로 반짝거렸다. 그녀 말대로 이별은 정말 곤란한 일이지만, 그것에서 솟아오르는 것들이 어떤 빛을 띠는지 알기에 크게 두렵지는 않았다.
나는 타이가 숲에 사는 바예스타예프의 할머니가 왜 비싼 운석을 팔지 않는지 지금에야 안다. 절망이든 고통이든 기억을 버리지 않는 것, 그것은 안나 이모와 맞닿아 있을 거였다. 그녀가 그랬듯 신발을 벗어 들고 맨발로 마당을 걸었다. 작은 돌멩이가 발바닥을 찔러댔지만 걸음을 멈추지는 않았다. 발을 디딜 때마다 등뼈가 꿈틀거리며 찌릿한 기운이 지나갔다.
 
안녕, 안녕, 안나.
나는 마지막이 아닌 첫인사를 하듯 이별을 말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길게 울지는 않았다. 아주 조금이었다.
 
- ‘밤의 하얀 집’ 끝.
 

작가 소개    
동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9년, 단편 『아칸소스테가』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등단.
창작소설집 『마리 오 정원』
테마소설집 『2012신예작가』
12월 테마소설집 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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