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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훈의 직격 인터뷰] “노조 전임자들도 현장 일터에 가 용접봉 들어야”

‘조선 도시’ 탈피 시도하는 권민호 거제시장
권민호 거제시장이 지난해 12월 22일 대우 옥포조선소 야드에서 조선업 위기는 “비정상적 호황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과정”이라며 “조선소 빈터를 관광지로 개발하는 것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사진 송봉근 기자]

권민호 거제시장이 지난해 12월 22일 대우 옥포조선소 야드에서 조선업 위기는 “비정상적 호황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과정”이라며 “조선소 빈터를 관광지로 개발하는 것도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사진 송봉근 기자]

‘동네 개도 1만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던 거제다. 세계 2, 3위 조선소(대우해양조선, 삼성중공업)가 있는 ‘조선업의 메카’다. 1990년대 후반의 IMF 외환위기가 뭔지도 모른 채 국내 최고의 ‘부자 도시’로 살아왔다. 그런 거제가 74년 조선소가 들어선 이후 처음으로 깊은 불황의 늪에 빠져들었다. 구조조정의 아우성이 빗발치고, 노동력은 빠져나가고, 문 닫는 상가가 줄을 잇고 있다. 권민호(60) 거제시장은 “빚내 누렸던 초호황의 거품이 꺼지고, 정상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진단했다. 지난해 12월 말 민원실 옆 ‘열린 시장실’과 대우조선해양 도크에서 이어진 인터뷰에서 ‘거제=조선’을 탈피하려는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언론이 망한 것처럼 너무 비관적으로 보도한다”는 불만도 토로했다.

수주절벽…올해 1만3000명 실직
상가·식당·부동산 경기에 칼바람
‘거제=조선’ 벗고 해양관광 육성
조선소 빈터에 카지노·쇼핑몰

 
조선업이 가져다준 영광이나 호황은 사실상 끝난 것 아닌가.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5만5000달러(6500여만원, 1달러=1190원)를 넘던 2010년대 초의 초호황기에 비하면 4만6000여 달러(약 5500만원, 전국 평균 3000여만원)로 소득이 떨어지고 있다. 올해 대우조선해양(이하 대우)과 삼성중공업(삼성)에서 해고된 정규 인력만 직영 3000여 명, 협력업체 9000여 명 등 모두 1만3000여 명에 달한다. 인구 유출, 아파트 값 하락, 소비 위축, 상가 폐업 등 조선업 위기에서 촉발된 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제는 ‘거제=조선’의 통념을 털어내야 할 때다.”
인구(25만7000여 명) 중 70%를 먹여 살리는 조선업 의존 구조를 탈피할 수 있겠는가.
“조선업이 영원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영원히 번창할 수도 없다. 조선업의 초호황기를 더 이상 기대해서는 안 된다. 거제는 한 해 6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해양관광도시다. 시민들이 조선으로 먹고살 때는 다른 고민이 없었는데, 조선 불황이 조선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인식을 일깨워줬다. 조선업 70%, 관광 20%, 농수산 10%의 경제 체질을 바꿔야 한다.”
‘조선 도시’를 관광 도시로 변모시키겠다는 뜻인가.
“조선이 끝까지 회복되지 않는 최악의 상황을 고심 중이다. 26만 거제시민을 이끄는 시장으로서는 여러 시나리오를 놓고 대비해야 한다. 대우와 삼성은 바닷가에 넓은 야드를 갖고 있는데 양질의 땅과 절벽 등을 활용해 관광자원으로 전환시켜도 손색이 없다.”
조선소를 관광지로 바꾸는 방안도 포함되나.
“대우 옥포조선소 부지 130만여 평(430만㎡)을 다 쓸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다른 활용 방안을 모색해볼 필요가 있다. 그곳은 중대형 크루즈가 몇 척씩 동시에 정박할 수 있는 완벽한 접안 시설을 갖추고 있다. 노는 조선소 야드에 외국인 카지노와 면세점, 백화점 등을 유치해 해양복합리조트를 만든다면 중국 등의 관광 수요를 창출할 수 있고, 조선 침체로 위축된 지역경제를 되살릴 수 있다. 해군으로부터 80년 만에 돌려받는 지심도 생태공원 조성, 거가대교 근처에서 2000억원이 투입돼 2018년 완공되는 한화호텔리조트 등 관광 인프라 사업도 도움을 줄 것이다.”
2002년 스웨덴 말뫼 조선소의 골리앗 크레인이 단돈 1달러에 팔린 ‘말뫼의 눈물’이 거제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말인가.
“될 수 있다. 말뫼의 피눈물을 보지 않았는가. 우리라고 그렇게 안 되리라는 법이 있겠는가. 세계적인 흐름상 조선이 쇠퇴하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조선업이 망했을 때 조선소의 설비와 야드를 재활용해 도시를 어떻게 재생시킬 것인지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조선업 종사자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반발할 것 없다. 잘되는 산업을 전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손 놓고 있을 순 없지 않은가. 미국 피츠버그(철강), 일본 기타큐슈(北九州·제철), 스웨덴 말뫼(조선) 등 도시 산업이 몰락했을 때 그 도시의 강점을 살려 발전시킨 외국 사례를 면밀히 검토 중이다.”
조선 불경기에 경제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더 나빠질 수 있다. 한국은 기술력과 경험이 떨어지면서도 해양플랜트(해저 석유·가스를 시추·생산하는 시설물)를 대량으로 수주하면서 초호황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냈다. 거제는 상선 분야로 발전했지, 해양플랜트로 발전한 도시가 아니다.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로 치솟으면서 어느 날 해양플랜트가 쏟아져 들어왔고, 기술력도 없이 이걸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마구 받아들이는 바람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해양플랜트가 없다고 지역경제가 초토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지금은 ‘빚낸 호황’, 즉 거품이 꺼지고 있는 과정이다.”

“빚내 누린 호황…거품 꺼지는 중”
‘말뫼의 피눈물’ 오지 말란 법 없어
조선업, ‘치킨게임’ 견디면 부활
최순실 사태 여파…정부 지원 미적
그렇다고 조선을 방치할 수는 없지 않은가.
“‘치킨게임’이다. 전 세계 물류의 70%를 커버하는 선박 중 1만t을 넘는 배가 2만6000여 척이다. 이들의 선령(船齡)을 25년 정도로 보는데, 이는 매년 1000척을 새로 건조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래서 조선업은 지구상에서 사라질 수 없다. 살아남은 자만이 영원히 산다. 호황 때 한국이나 중국 등 신흥 국가들이 설비를 엄청 늘렸다가 갑자기 불황을 맞는 바람에 고생하고 있다. 도태하는 조선 기업이 늘고 있어 조선업이 다시 활기를 되찾을 땐 생존한 기업만이 그 기회를 잡는다. ”
대우와 삼성의 1인당 평균 연봉이 7000만원이 넘는 고임금 구조다.
“대한민국 조선 기술이 세계 1위인데도 경쟁에서 밀리는 이유는 고비용 생산 구조 때문이라고 본다. 중국의 4배, 필리핀의 20배에 달한다. 방만한 경영이 실패의 원인이지만, 그 속에서 임금을 받던 사람들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회사가 살아야 그분들의 일터가 유지될 것 아닌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노조 전임자들도 현장 일터에서 용접봉을 들어야 한다. 회사가 수조원의 적자를 내고 한 치 앞이 안 보이는데 노조 전임자라고 일을 안 하고 있다면 그 회사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거제와 거제시민이 살고 죽는 중대한 기로에서 노조도 뼈를 깎는 각오로 나서야 한다.”
실업급여 신청자가 지난해 동기에 비해 올 11월 현재 257명에서 1227명으로 무려 337%나 폭증했다. ‘휴가 갔다 오니 해고 통지를 받았다’ 등의 흉흉한 소문이 돈다.
“상선 분야는 2년 치 일감을 확보한 상태로 그나마 다행이지만, 해양플랜트 분야는 조만간 수준 잔량이 바닥나고 인력이 남아돌 것이다. 대우와 삼성의 정규직과 협력사 인력은 올 초 9만1000여 명에서 11월 현재 7만8000여 명으로 줄었고, 앞으로 5만여 명 수준으로 조정된다. 게다가 조선소 근로자의 70% 이상이 협력사와 일용직 근로자다. 이들은 신규 수주가 없어 일감이 떨어지면 바로 실업자로 추락한다. ”
불야성의 도시에 불이 꺼져 가는 느낌이다.
“경제지표가 나빠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일감이 줄면서 잔업수당이 없어져 씀씀이도 비례해 줄고 있다. 저녁 시간에 유흥 활동이 위축받아 택시 승객이 20% 감소하고, 전통시장·식당·부동산 거래 등이 15~20% 정도 떨어졌다. 하지만 언론 보도처럼 심각한 상황은 아직 아니다. 부정적 보도는 투자자들에게 ‘거제는 안 되겠다’라는 인식을 심고, 금융기관이 대출 기피 등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케 만든다. 수백 개의 협력업체는 은행권 대출을 통해 운영자금을 조달하는데 원천적으로 막혀버린다. 지갑을 열 수 있는 여유 있는 시민들마저 지갑을 닫고 있으니 상권이 더욱 위축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인구 유출 등 시민들의 동요는 없는가.
“26년 연속 증가하던 인구가 감소세로 전환했고, 15년 연속 증가해온 외국인 유입도 감소세로 돌아섰다. ‘물량팀’(협력업체 일당 노동자) 1만 명 정도가 타지로 빠져나간 것 같다. 통계상 급격한 인구이동은 없지만 장기간 불황이 이어진다면 거제를 떠날 여지는 있다. 최근 17개월 동안 전국의 아파트 값은 평균 3.4% 상승한 반면 거제에선 11.5% 하락했다. 차량 등록 대수는 올 11월 말 현재 1600대로 지난해 동기(4500대)에 비해 63%가 떨어졌다.”
외부에서는 부러움과 시샘의 시선이 교차한다. 빚내서 떵떵거리고 살다가 불황이 오니 세금으로 도와달라고 손 벌린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있다.
“조선소가 생긴 이래 지난 40년 동안 거제시민만 먹고산 게 아니다. 조선 현장에서 땀 흘리며 일하면 국가가 세금의 80%를 가져가고, 20%만 거제로 들어왔다. 정부는 그 돈으로 전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했다. 우리만 다 먹고산 게 아니다. 이제 못살게 됐으니 국민 세금으로 도와달라고 하는 게 아니다. 그동안 세금으로 많이 거둬 갔으니 조선산업이 어려울 때 역할을 해달라는 것이 시민들의 바람이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데.
“글로벌 경제위기와 국제 유가 하락으로 선박 발주가 거의 없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올해 대우가 목표액의 25%(15억5000만 달러), 삼성이 목표액의 15%(5억3000만 달러)밖에 실적을 올리지 못했다. 남아 있는 수주 잔량이 고갈되고, 수주절벽이 계속되면 대량 실업 사태가 불가피하게 된다. 정부가 국가의 기간산업을 손 놓고 있진 않겠지만 주도면밀하게 진단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인한 국정 공백이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국이 어수선하다 보니 정부 부처에서 적극적으로 안 챙긴다. 해양플랜트 분야를 계속 끌어안고 갈지 말지 판단하지 못하고 미적대고 있다. 거제가 유치한 ‘해양플랜트 국가산업단지’ 사업이 그런 사례다. 1조8000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인데 정부의 승인이 지연돼 차질을 빚고 있다. ”
조선업에 희망은 있는 것인가.
“ 적자 구조에서 성과급을 받는, 그 비정상의 ‘아 옛날이여’를 생각하면 안 된다. 내년에도 올해처럼 수주가 없으면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다만 2018년부터 조선 경기가 개선된다는 클락슨(조선·해양 분석 업체)의 전망이 있어 조심스럽게 기대할 뿐이다.”
 
권민호 거제시장은…
널찍하고 잘 꾸며진 집무실을 기대하면 오산이다. 시민들이 북적대는 1층 민원실 옆에 책상 하나를 갖다 놓고 ‘열린 시장실’을 차려 놓았다. 시장 자신을 비롯해 모든 직원이 이름표를 단 근무복을 입고 일한다. 시민과 공무원을 쉽게 구분시켜 비리와 부정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겠다는 취지라고 한다. 공사와 관련된 부패 혐의로 구속된 세 명의 전임 시장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의지도 담았다. 처음엔 ‘쇼’라고 비아냥대며 손가락질했으나 이제 거제시민들에게는 익숙한 모습이다. 수행비서를 두지 않고 경차(기아 모닝)를 손수 운전해 출퇴근하는 시장으로도 유명하다. 거제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흙수저’ 출신이다. 그래서 거제의 불황을 누구보다 두려워한다.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의 설움을 잘 알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인 열 살 때 남의 집 머슴살이를 살아봤고, 중학교 때 학교 급사를 병행하면서 졸업한 뒤 열여섯 살 때 멸치잡이 배를 타기도 했다. 동아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박사 학위를 받고 강사 생활을 했다. 이후 골재사업에 뛰어들었으나 어려움을 겪다가 2003년 거제를 강타한 태풍 ‘매미’ 덕(?)에 골재 특수를 타고 ‘큰돈’을 벌었다고 한다. 그해 경남도 의원에 당선돼 연임했으며, 2010년 거제시장에 오른 뒤 재선에 성공했다.

글=고대훈 논설위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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