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중앙시평] 사법·소송 만능 사회로 갈 건가

최근 우리 사회는 주요 정치.사회적 사건들이 전부 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사법적 판단에 의해 해결되는 현상을 반복하고 있다. 민주화가 오히려 사법화를 촉진, 한국 사회는 '사법국가'라 해도 좋을 만큼 법원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국가보안법 개폐, 대통령 탄핵 사태, 이라크 파병, 행정수도 이전, 호주제 등 정책과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되어야 할 의제들이 전부 법률적.헌법적 소송과 결정의 문제로 귀결되고 있다. 최근엔 과학적 발견을 둘러싼 소동조차 법적 조사와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가위 정치의 사법화, 사회의 법률화라 할 만하다.



일상 삶의 영역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검찰 통계에 따르면 1985년 100만9411건이었던 처리 사건은 2004년 260만2171건으로 증가하였다. 민주화와 범죄화가 함께 진행되어 온 것이다. 소송 역시 급증, 한국 사회는 이른바 '소송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2002~2004년의 소송 건수는 52만, 58만, 63만 건으로 증가하였다. 사회적 관계에서의 소송화를 넘어 가족관계에서도 소송이 폭증하고 있다. 이는 인간관계와 가족관계의 많은 부분이 사적 재산관계로 변전되었음을 의미한다. 일상 삶의 사법화, 비인간화라 할 만하다.



삶의 공사 영역이 모두 법률에 의해 규율되는 사법국가화, 소송사회화 경향은 결코 바람직스럽다 할 수 없다. 첫째,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영역을 크게 축소시킨다. 법적 판결은 항상 완승과 완패의 양자택일 구도를 낳는다. 그럴 때 패자는 사회에 다시 통합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법문에 가기 전에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이 적게 들며, 훨씬 더 안정적이다. 그럴 때 대립적 견해들은 법적 판결과 달리 중간 지점 어디에선가 함께 승리하는 윈-윈 해법을 갖게 된다. 예컨대 소송에 앞서 도입한 숙려 기간 제도의 성공이 이에 해당한다. 사법국가.소송사회의 대안은 대화와 타협, 즉 민주주의의 발전인 것이다.



둘째, '법의 지배' '법치'가 '법률가의 지배(rule of lawyer)'로 나타나고 있다. 집합적 시민의 지혜와 상식보다 소수 법률가의 전문지식이 더 중요하게 작용, 정치와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이 법률가의 조력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그러나 소수 법률가의 판단이 다수 시민의 의사보다 자주 우위에 서게 된다면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책임.능력은 크게 위축된다. 헌법적.법률적 판단은 '그 자체로' 독립되어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책임성 역시 결여되어 있다. 동일한 사안이 시대 변화에 따라, 또는 법원의 심급에 따라 자주 다른 판결을 보여준다는 점은 법적 결정이 갖는 최고성.일관성.책임성.객관성의 신화를 해체한다. 사법국가화의 한 치료제는 시민사회의 자율성과 책임.능력의 제고인 것이다.



셋째, 정치와 삶에서 중요한 인간관계와 신뢰의 해체를 막을 수 없다. 법적 판결에 따르는 인간관계와 신뢰의 파탄은 복원되기 어렵다. 패자들은 표면적으로 복종할 뿐 결코 내면적으로 승복하지 않는다. 법적 판결 이후 인간적.사회적 신뢰는 더 해체되는 것이다. 요컨대 사법적 신뢰는 민주적 신뢰나 인간적 신뢰를 넘어서지 못함은 물론 종종 파괴한다. 인간과 사회문제를 법률에 의해 해결하려 할 때 우리는 끝없이 더 많은 법률을 만들어 사회를 구속, 결국 법률가 천국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자율과 민주주의, 신뢰의 영역은 축소된다.



법률이 많은 사회는 결코 좋은 사회라 할 수 없다. 법률의 역할은 최소한의 범죄예방과 절서유지, 그리고 인권보호에 그쳐야 한다. 대신 시민사회의 기본 덕목인 자율성.책임.신뢰를 바탕으로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사법국가.소송사회를 넘는 좋은 민주국가를 갖게 될 것이다.



◆ 약력=고려대 정외과 졸, 고려대 정치학 박사,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역임, 저서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 '한국 1950:전쟁과 평화' 등



박명림 연세대 김대중 도서관 교수.정치학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