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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빚 내서 집 사라더니…” 곡소리 나나

이철호 논설주간

이철호
논설주간

요즘 ICBM을 어떻게 알고 있느냐가 삶을 가르는 새 잣대가 되고 있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하면 그냥 시사상식이 풍부한 사람이다. ICBM을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Cloud), 빅데이터(Big data), 모바일(Mobile)의 머리글자라고 한다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갈 자격이 충분하다. 사물인터넷 센서가 수집한 정보를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빅데이터 기술로 분석해, 모바일로 서비스하는 게 유망한 신산업이기 때문이다. AI도 마찬가지다. 겨울철에는 조류독감으로 불리지만 요즘은 인공지능을 가리킬 때가 훨씬 많다. 이미 AI와 ICBM은 세상을 뒤집어 놓고 있다.

미 금리 인상으로 가계부채와
부동산 하락이 최대 위협 요인
인공지능으로 일자리도 줄어
“없는 사람이 더 가난해질 것”
온갖 접두사의 대선 공약보다
3%대 성장 복원이 가장 절실


영국의 존 다우너는 1억 명 이상의 시청자를 사로잡은 야생 다큐의 황제다. 그런 다우너가 이달 12일부터 BBC를 통해 ‘야생의 스파이’를 방영한다. 실제 동물과 똑같이 생긴 로봇을 투입해 들개·원숭이·침팬지·오랑우탄·거북이·악어 등을 찍은 다큐다. AI와 원격제어 기술로 무장한 로봇은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고 동물 무리에 섞여든다. 일부 야생동물은 로봇을 향해 짝짓기를 시도하는 생생한 장면까지 찍혔다. 이 다큐가 히트하면 앞으로 BBC와 NHK, 디스커버리 채널의 수많은 야생다큐 전문가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지난해 영국 ‘텔레그래프’가 선정한 ‘올해의 로봇’도 눈길을 끈다. 한때 구글이 인수했던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는 아무리 넘어뜨려도 두 발로 일어서고, 미끄러운 눈길도 성큼성큼 걷는다. 이 업체의 로봇 ‘스폿 미니’는 실내와 계단을 청소하고 싱크대에선 주방청소까지 해냈다. 이제 단순 일자리가 사라지는 건 시간문제다. AI는 예측이 아니라 대응의 영역으로 넘어온 것이다. 미 백악관은 “AI로 인해 미국인 10명 중 4명의 생계가 위험해진다”며 “임금 수준과 교육 수준이 낮을수록 일자리를 잃을 확률이 더 높다”고 경고했다. “없는 사람이 더 가난해진다”는 의미다.

올해 세계 경제의 변수는 단연 미국 금리 인상이다. 국내 경제연구기관들은 “이로 인한 최대 리스크는 가계부채와 주택가격 하락”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동안 정부는 “가계빚과 부동산은 걱정되지만 관리가능한(worrisome but manageable) 수준”이라고 장담해 왔다. 하지만 갈수록 자신감을 잃어 가는 분위기다. 지난해 가계부채가 1300조원을 넘어섰고, 가구당 평균 부채도 6655만원으로 전년 대비 6.4%나 증가했기 때문이다. 통계청은 “치솟는 전세가로 인해 저금리 대출을 받아 집을 산 사람이 많았다”며 걱정했다.
 
신성환 금융연구원장은 기자간담회에서 “대출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집값은 2.7% 하락하고, 위험가구는 32만4000가구에서 36만5000가구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너무 신중한 입장이다. 올해는 사상 처음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든다. 여기에 현대경제연구원은 버는 돈보다 갚을 돈이 더 많은 ‘한계가구’를 그 5배인 160만 가구로 추산한다. 금융부채가 금융자산보다 많고, 원리금 상환액이 처분가능 소득의 40%를 넘는 ‘고위험 채무가구’들이다. 가구당 평균 가족수 2.9명을 곱하면 460여만 명이 벼랑 끝에 몰리는 셈이다. 금리가 오르면 저소득층부터 희생양이 되기 마련이다.

올해 한국 경제는 이런 쓰나미에 버틸 수 있을까. 물론 외환보유액 3720억 달러와 지난해 970억 달러의 경상수지 흑자는 든든한 방파제다. 한국 경제에 비관적인 일본 노무라증권도 “거시 펀더멘털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훨씬 탄탄한 게 다행”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미 금리 인상은 세계 금리를 동반 상승시켜 10년 주기로 아시아 외환위기와 서브프라임 사태를 불렀다. 이번에도 한국은행이 외국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할 궁지에 몰릴 수 있다.

어쩌면 올해 온 사방에서 “빚 내서 집 사라더니…”라는 통곡소리가 퍼질지 모른다. 정부 정책에 잘 따랐거나 가난한 계층부터 AI와 금리 인상의 피해자가 될까 겁난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달콤한 대선공약 만들기에 골몰한다. 경제성장 하나에도 동반성장·균형성장·포용성장·공정성장·국민성장 등 온갖 접두사를 붙인다. 양극화를 완화하겠다는 정치적 의지는 인정한다. 하지만 이런 접두어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사회적 강자에게 세금을 올리고 사회적 약자에겐 임금을 올려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휘황찬란한 구호보다 새해엔 훨씬 시급하고 절실한 소망이 있다. 2%대의 성장률을 3%대로 끌어올리는 게 그것이다. AI와 미 금리 인상의 충격에서 없는 사람들이 더 가난해지는 것을 막는 안전판이기도 하다. 경제성장만큼 중요한 건 없다. 과연 세금과 임금을 올리면서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까. 그렇다면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 할 판이다.

이철호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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