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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 TV 보는 여자] 미모만으로는 부족해, '전지현표' 인어

소위 잘나가는 TV 드라마를 가리켜 ‘영화 같은 드라마’라 부른다. 이를테면 해외 로케이션으로 촬영이 이뤄지거나, 극장에서 볼 법한 거대 스케일에 ‘때깔’ 좋은 영상을 갖춘 드라마를 뜻한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으면 다행이지만, 꼭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푸른 바다의 전설’(SBS)의 아쉬움은 여기서 시작한다. 카메라는 신비로운 인어와 독보적인 배우 전지현의 조합으로 도출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장면을 포착하는 데 여념이 없다. 그 정점은 폭풍 때문에 뭍으로 밀려와 인간에게 잡혀 양씨(성동일)의 연못에 갇힌, 심청(전지현)의 뽀얗고 매끈한 상반신 클로즈업 장면이다. 탄성이 나올 정도로 아름답지만 뭔가 많이 아쉽다.

극 중 심청의 설정 값은 그저 허준재(이민호)를 사랑하는 데만 맞춰져 있다. 오로지 한 사람을 향해 뛰는 가슴을 부여잡고 뭍으로 올라온 인어 심청이 내내 보여 준 건 ‘먹방’과 인간계 적응기뿐이다. 심청에게 부여된 임무는 인어의 눈물인 진주를 팔아 돈 좋아하는 준재에게 돈을 주는 것. 그리고 심장이 굳어 목숨을 잃기 전에 그에게 사랑받는 것이다. 연고도 없고 세상 물정도 모르는 인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의류 수거함에서 쓸 만한 옷을 꺼내 입거나 동네 꼬마와 어울리는 일이다. 심청의 (인간 세계에 대한) 무지와 식탐은 순수함으로 여겨지기보다 그저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 어린아이 같다. 정신없이 음식을 흡입하는 그녀를 사람들은 신기한 동물 보듯 대한다. 뛰어난 지능으로 몇 시간 만에 인간의 언어를 습득한 능력이 무색할 지경이다.

박지은 작가의 드라마에서 여자 주인공의 백치미는 종종 등장하는 설정이다. ‘토사구땡’ ‘마그네슘 카드’ 등 다양한 어록을 남긴 ‘내조의 여왕’(2009, MBC)의 천지애(김남주), 모카를 목화로 알고 있는 ‘별에서 온 그대’(2013~2014, SBS, 이하 ‘별그대’)의 톱스타 천송이(전지현)가 그랬다. 이들의 백치미는 그 캐릭터가 가진 인간적 매력을 돋보이게 하는 데 성공했다. 반대로 ‘별그대’의 도민준(김수현)은 인어만큼 신비로운 외계인이며 박학다식하다. 지구를 떠날 타이밍을 놓친 그는 400여 년간 자그마치 스물네 번이나 입대해야 했고, 각종 직업을 두루 거쳐 현재는 대학 강사로 일한다. 그동안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쉽게 식고 허무하게 사라질 수 있는지 경험한 그가 사랑에 냉소적으로 변한 것도 수긍이 간다. 운명을 믿지 않는 외계인과 어린 시절 자신을 살려 준 운명의 남자를 기다리던 여자는, 그렇게 우주를 초월한 로맨스를 완성했다.

반면 심청의 단조로운 서사는 소소한 웃음만 자아낼 뿐 그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현재 극 중에선 준재를 달가워하지 않는 계모 강서희(황신혜)의 음모가 진행 중이고, 서희와 한패인 마대영(성동일)은 준재와 심청의 주변을 맴돌며 해칠 기회를 엿보고 있다. 이 갈등 구조 속에서 심청이 할 수 있는 일은, 해맑은 얼굴로 자신을 구해 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로맨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준재가 어떤 상황에 처하든 심청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리는 일밖엔 할 수 없을 테다. 극 중에서 주체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인물만큼 매력 없는 것이 또 있을까. 그것이 사람을 홀릴 정도로 아름다운 인어라 해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먼저 인간 세상에 적응한 남자 인어 유정훈(조정석)은 심청의 좋은 멘토가 될 만하다. 짧은 분량의 특별 출연이었지만, 이름과 직업 그리고 멜로적 서사까지 갖춘 그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정훈이 어떤 사연으로 육지에 올라왔는지, 사랑하는 여자를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는지 말이다. 수상 안전 요원으로 일하며 아파트도 장만해 그녀와 행복한 가정을 꿈꿨지만, 자신의 비밀을 알고 떠난 연인을 기다리다 결국 심장이 굳어 버린 남자 인어라니. 왠지 그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스핀오프도 가능할 것 같다. 과연 ‘푸른 바다의 전설’이 끝날 때까지 심청은 이 정도의 상상력을 끌어낼 수 있을까.

황혜민
TV 한 대만 있으면 시사 상식과 외국어 마스터, 세계 여행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TV 만능주의자. 훌륭한 ‘덕후’ 한 명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고 믿는, 그래서 오늘도 꽂힌 드라마를 보고 또 보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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