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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특집] 한국영화, 시나리오가 답이다. ③ 내가 생각하는 좋은 시나리오는?


PART 2 해법은 무엇인가

복잡하게 얽힌 시나리오 관련 문제를 풀 정확한 해법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 열쇠를 찾기까지 단서로 삼을 만한 소중한 이야기를 여기 모았다.
 

유영아 시나리오 작가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보장하기 위해 작가의 영역에서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작품을 반드시 극장에서 상영하겠다는 의지를 지니고 작업해야 한다’고 답하겠다. 계약금만 받는 작가가 아니라, 개봉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작가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간혹 ‘나는 여기까지만…’ ‘(감독 혹은 제작사가) 원하는 대로 썼는데, 뭐…’ 등의 입장을 가진 작가들을 본다. 제작자의 마음으로 접근해, 관객을 한 명이라도 더 끌어내기 위해 끝까지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높이고) 아이디어를 짜내야 하지 않을까. 이런 풍토를 만든 데는 제작자와 감독의 잘못도 크다. 시나리오 작가에게 작품에 대한 주인 의식을 심어 주지 못하니까.”
 
윤성호 감독
“TV 드라마, 웹툰, 페이스북 ‘짤방’까지 영화의 재미를 대체할 콘텐트는 널렸다. 그러나 ‘영화’라는 전통적 매체의 스토리텔링이 주는 즐거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끝내주는 영화 한 편의 파급력은 더 커졌다. 소셜 미디어에서 사람들은 흥행 영화를 패러디하며 놀지 않나. 그렇기 때문에 전통적 방식으로 이야기와 캐릭터를 만드는 시나리오 작가들은, 정교함 같은 고유의 가치로 인정받아야 한다.”
 
신연식 감독 겸 루스이소니도스 대표
“시나리오 작가 스스로 작품에 대한 권리를 찾는 방법? 나는 그것을 ‘공동 제작’이라고 본다. (나도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으로서 다른 제작사의 부당한 대우를 많이 접했지만) 직접 제작자가 되고 나니 모든 게 심플해졌다.”
 
윤태호 웹툰 작가
“웹툰 작가는 농담 같은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완성해 낸다. 독창성을 보장받는 자기 작품이니까 즐겁게 작업한다. 이야기를 쓰는 대로 고료가 나오고, 독자와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도 있다. 시나리오 작가는 몇 달 동안 글을 써도, 돈은 받지만 저작권은 보장받기 어렵다. 창작자에게 제일 중요한 것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인 셈이다.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쓴 작가일 경우, 제작사로 향하기 전에 웹툰 작가를 찾아오면 좋겠다. 그 이야기를 웹툰으로 먼저 만드는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 스스로 원작자가 되면, 그와 관련된 모든 지위와 권리를 누릴 수 있잖나.”
 
광화문시네마 김보희 프로듀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시나리오? 지금, 여기, 우리와 맞닿아 있는 이야기. 일상의 활력소가 되고 위로가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레드피터 이동하 대표
“한 편의 영화를 끝내고 나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지?’ 시나리오 역시 그런 고민에서 출발한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지? 이 이야기를 왜 지금 영화로 만들어야 하지? 어떤 자본, 어떤 규모가 적당하지? 나한테는 재미있는 이야기인가?’ 시나리오 기획·개발에 오래 매달리다 보면, 정작 처음에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들이 다 빠진 느낌을 받기도 하잖나. 그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놓치지 않도록 첫 단계의 질문을 끊임없이 되새겨야 한다.”
 
오퍼스픽쳐스 컨텐츠기획팀 이지영 팀장
“한 작품에 참여한 여러 시나리오 작가의 크레딧 표기를 제작사나 투자·배급사의 자의적 판단에 맡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선배 시나리오 작가들로 구성된 조합’ 같은 곳에서 판별 기준을 제시해 주는 건 어떨까. 할리우드처럼 말이다. 할리우드에서는 시나리오 작가 사이에 크레딧 관련 분쟁이 생길 경우, 우선 그들끼리 합의하도록 한다. 이 문제에 대해 제작사는 그 어떤 간섭도 할 수 없다. 끝내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미국작가조합에서 분쟁조정위원회를 꾸려 문제 해결에 나선다. 분쟁조정위원회는 미국작가조합 회원 가입 후 5년이 넘은, 3편 이상 시나리오를 쓴 작가 3인을 임의로 선발해 회의를 진행한다. 선발된 이들의 신원은 철저히 보안에 부친다. 이런 시스템이 한국 영화계에도 꼭 도입됐으면 좋겠다.”
 
김경찬 시나리오 작가
“모든 영화인이 ‘참고 작품(레퍼런스)’을 버려야 한다. 나는 목포MBC 시사·교양· 다큐멘터리 PD 출신으로 방송 일을 하다, 지난해 시나리오 작가로 전업했다. 제작사나 투자·배급사와 회의하며 가장 놀란 점은, 다들 당연하게 ‘(이 시나리오의) 참고 작품이 뭐냐’고 묻는 것이었다. 하나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해 영화로 개봉하기까지 짧아도 2~3년은 걸린다. 그때 관객이 무엇을 보고 싶어할지, 한국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미래’를 내다보고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영화계 전체가 ‘과거’의 흥행 코드에 집착하고 있다. ‘한국영화의 질이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그 때문 아닐까. 점쟁이처럼 미래를 정확히 예측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예를 들어 현재의 극단적인 ‘국정 농단 사태’까지는 예견하지 못해도, 정권 말기마다 되풀이된 레임덕 현상은 2~3년 전에도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 않았나.
어느 분야든 그런 식의 미래 예측은 다 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영화계만 과거 지향적이다. 개봉 시기의 사회 흐름과 대중 심리를 파악하는 것은, 사실 시나리오 작가보다 제작자의 몫이다.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춘 인물이 현재 충무로에는 많지 않은 듯하다.
신인 시나리오 작가에게는 이런 조언을 해 주고 싶다. ‘일단 데뷔시켜 줄 테니, 각본료는 조금만 줄게’라고 말하는 제작사와는 절대 계약하지 말라고.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계에 발 들이는 사람이 100명이라면, 그중 네댓 편 이상 경력을 이어 가는 사람은 1명 정도다. 나머지 99명은 형편없는 처우를 견디지 못하고 한두 편 작업하다 그만둔다. 그러니 ‘첫 작품’이라 해서 불공정한 계약에 응하면 안 된다.
충무로의 관행이나 제작사의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자신이 생각하는 정당한 조건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그 내용을 계약서에 정확히 명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오리지널 시나리오라면, 개발 진행 도중 제작사와 헤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 대비해 반드시 ‘해제권’을 요청해야 한다. 이는 시나리오 작가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저작권을 회수할 수 있는 권리다. 이 조건을 수락하지 않는 제작사와는 애초에 일하지 않는 편이 낫다. 시나리오가 정말 좋으면 언제든 임자는 나온다. 진짜 ‘물건’을 볼 줄 알고, 그 대가를 충분히 지급하는 제작자도 생각보다 꽤 많다.”
 
시나리오 공모전도 변화가 필요해
영화 `관상`

영화 `관상`

한국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데뷔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서경 시나리오 작가는 “시나리오 공모전이 거의 유일한 창구”라고 답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공모전, 각각 총 1억원대 상금을 내건 롯데시네마·화책연합 공모전, 크고 작은 기관 및 단체가 주관한 공모전을 합치면 한 해 수십 건의 시나리오 공모전이 열린다.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홍보 목적으로 개최하는 행사도 적지 않다. 그러나 공모전에 대한 영화계의 시각은 다소 회의적이다. 오퍼스픽쳐스 컨텐츠기획팀 이지영 팀장은 “이벤트성 공모전을 제외해도, 누구나 응모할 수 있는 시나리오 공모전은 접수 분량이 너무 많아 심사가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는 “포맷을 갖추지 못한 응모작이 많아 ‘접수된 시나리오의 절반 정도는 읽기 힘든 수준’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신인 작가들이 매달릴 수밖에 없는 건 “데뷔를 바라는 이들에게 공모전은 거의 유일한 ‘숨통’”(광화문시네마 김보희 프로듀서)이기 때문. 한재덕 대표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시나리오 공모전은 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신인뿐 아니라 프로 작가에게도 동기 부여가 된다. 그 공모전을 바라보고 한 작품을 완성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는 2010년 영진위가 주최한 ‘한국영화시나리오 공모전’ 대상작으로 개봉까지 성사된 ‘관상’(2013, 한재림 감독, 김동혁 각본)을 예로 들며, “당선 여부를 떠나 반짝이는 소재의 작품을 발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강조했다. 지금까지 공모전은 “정작 새로운 스토리가 드물다”(정서경 작가), “심사위원 취향에 맞춰 선정된 수상작과 실제로 영화화가 가능한 시나리오는 거리가 있다”(한준희 감독) 등의 이유로 실속이 없다고 평가받기도 한 터. ‘롯데 시나리오 공모 대전’만 해도 올해 제5회를 맞았지만, 수상작 중 지금까지 영화로 만들어 개봉한 작품은 제1회 대상 수상작 ‘관능의 법칙’(2014, 권칠인 감독, 이수아 각본)뿐이었다.

그러나 최근 ‘특색 있는 장르 작가 발굴’이란 명분과 실속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공모전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올해 처음 열린 ‘제1회 덱스터스튜디오 SF 판타지 시나리오 공모 대전’은, 김용화 감독이 운영하는 VFX(Visual FX·시각 특수효과) 전문 회사 덱스터스튜디오가 VFX 기술력과 상생할 작가 발굴을 위해 마련한 것. 공모전을 통해 국내에 빈약한 SF·판타지 장르 작가를 장기적으로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지난 11월 CJ E&M과 카카오페이지·다산북스 등이 주최한 일명 ‘추·미·스 소설 공모전’은, 한국 영화계에서 ‘효자 장르’로 손꼽히는 추리·미스터리·스릴러 장르의 원작 소설가를 발굴한다는 취지다. 시나리오 공모전은 아니지만, 수상작에 모바일 플랫폼 연재 및 전자책 출간과 함께 영화화 기회를 내걸었다. 공모전이 뚜렷한 개성을 내세운 만큼, 색깔 있는 신인 작가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기대도 크다. 시나리오 공모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글=장성란·나원정 기자,
취재=장성란·임주리·나원정·고석희·김나현 기자,
        윤이나 영화칼럼니스트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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