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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특집] 한국영화, 시나리오가 답이다. ② 한국영화 시나리오··· 이게 문제야

 
ISSUE 4 시나리오 작가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
“처우를 생각하면, 시나리오 작가가 아니라 TV 드라마 작가를 하는 게 낫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한준희 감독) “(시나리오 작업만으로는 생계를 잇기 힘들어) 작가 지망생 가운데 시나리오를 쓰려는 사람이 별로 없을 수밖에 없다.”(레드피터 이동하 대표) 현재 한국에서 시나리오 작가에 대한 처우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단적으로 보여 주는 이야기다. 이번 인터뷰에 응한 22명의 영화인은 “이러한 문제를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가장 해결이 시급한 문제는 보수와 크레딧 표기다. 두 가지 문제 모두 신인 작가들에게 가혹하다. 원작이 없는 창작 시나리오의 경우, 현재 충무로에서의 신인 시나리오 작가 각본료는 1편당 2000만~4000만원선. ‘기존에 흥행작을 몇 편이나 썼느냐’ 하는 경력이 각본료 선정의 절대적 기준이다. CJ E&M 글로벌 기획제작본부 서영희 프로듀서는 “신인 시나리오 작가의 각본료, 특히 계약금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말했다. “작가 자신이 쓴 오리지널 시나리오의 완성도를 믿고 제작사 두세 군데와 접촉해 각본료를 협상하려 들면, 곧바로 충무로에 ‘돈 밝히는 작가’라 소문난다. 유독 시나리오 작가에게만 충무로의 ‘관례’를 강조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김경찬 시나리오 작가)

다른 분야와 비교하면 더 절망적이다. 신인 작가는 TV 드라마 1화에 600만~1000만원, 웹툰 1화에 25만~35만원, 웹 드라마 1화에 50만원 정도를 받는다. 시나리오 한 편이 영화로 완성되기까지 소요되는 집필 시간은 짧게는 2년, 길게는 5~6년. 이 점을 감안하면 “시나리오만 써서는 먹고살 수 없다”는 조슬예 시나리오 작가의 이야기가 피부에 와 닿는다. 오퍼스픽쳐스 컨텐츠기획팀 이지영 팀장은 “제작사 혹은 프로듀서와 계약할 때, 대부분의 시나리오 작가는 적은 액수의 계약금만 먼저 받는다. 이후 ‘촬영에 들어가면’ 잔금 지급이 이뤄지는 것이다. 이러한 관례를 적용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시나리오를 쓰고 수정하느라 몇 년의 시간을 쏟았어도, 실질적으로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계약금 500만원 정도만 받고 마무리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영화가 흥행해 수익을 내거나 그 작품이 해외에서 리메이크되는 경우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추가 수익과 관련해 시나리오 작가가 지분을 요구하는 건 엄두도 내기 힘든 상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해 10월 공표한 시나리오표준계약서는 ‘시나리오 작가에게 영화의 수익 지분과, 2차 저작물에 대한 재산권을 보장해 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권고일 뿐, 의무는 아니다. 익명을 요구한 응답자는 “이를 보장해 주는 제작사를 찾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김경찬 작가는 “시나리오표준계약서 발표 후 수익 지분은 어느 정도 인정해 주는 추세다. 하지만 해외 리메이크에 대해 시나리오 작가의 저작권을 인정한 제작사는 지금껏 단 한 군데도 만나지 못했다”면서 “‘투자·배급사가 그 조건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 그 이유”라 전했다.

영화 한 편의 각본과 각색에 여러 작가가 투입된 경우, 각각의 기여도와 그에 따른 권리를 명확히 구분 짓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 역시 시나리오 작가의 수익 지분과 2차 저작권 보장의 장애 요인으로 꼽힌다. 이에 대해 김경찬 작가는 “그것을 판단하고 조율하는 것은 프로듀서의 책임”이라며 “시나리오 작가 개개인의 계약서에 그 조건을 명시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일축했다. 그는 또 “소설·웹툰을 각색한 영화는 리메이크 판권이 팔리면 원작자의 저작권을 인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쓴 작가의 2차 저작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불합리”라 지적했다. “영화로 만들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시나리오를 쓸 게 아니라 소설로 먼저 완성해 원작자가 된 뒤 직접 각색하는 편이 낫다”는 것. 이에 대해 어느 제작사 관계자는 “시나리오 작가를 포함해 모든 스태프의 보수를 올리고 권리를 인정하면, 제작사가 그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시나리오 작가의 경력을 우선시하는 관례상 크레딧 표기도 중요한 문제다. “특히 신인 작가에게는 각색 크레딧 하나도 굉장히 소중하다.”(유영아 시나리오 작가)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감독·조감독·프로듀서가 시나리오 작업에 일부 참여했다는 이유로 ‘각본이나 각색 크레딧에 이름을 올려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여러 작가의 손을 거친 시나리오라면, 신인 작가는 상대적으로 크레딧에서 제외되기 쉽다.

각본료와 크레딧 문제 모두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시나리오 작가의 위상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지표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작가는 “영화 방향에 관련한 중대한 결정은 주로 감독과 프로듀서가 내리고, 이러한 변화에 대해 시나리오 작가는 전혀 알 길이 없다”고 말했다. 유영아 작가 역시 “‘한 명의 관객이라도 더 끌어내려는 마음’으로 작품을 쓰길 바란다면, 시나리오 작가에게도 주인 의식을 심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방자전’(2010) ‘인간중독’(2014, 김대우·오태경 각본)의 김대우, ‘신세계’(2013) ‘대호’(2015)의 박훈정, ‘차이나타운’의 한준희, ‘오피스’(2015, 최윤진 각본)의 홍원찬. 모두 시나리오 작가 출신 감독이다. “능력 있는 시나리오 작가들이 왜 줄줄이 감독으로 데뷔하겠나. 시나리오 작가로는 영화계의 스타플레이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윤성호 감독의 설명이다. 특히 한국 영화계는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경우가 많다. 봉준호·최동훈 등 작품성과 흥행성을 두루 인정받은 감독일수록 더 그렇다. 신인 감독이라면 직접 시나리오를 쓰는 것 자체가 그 작품의 비전에 대한 검증 절차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김경찬 작가는 “유명 감독들이 꼭 자기가 쓴 시나리오만 고집할 게 아니라 다른 작가의 작품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특히 신인 작가의 완성도 높은 시나리오를 가지고 연출해 준다면, 시나리오 작가 발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제언했다. CJ E&M 글로벌 기획제작본부 이창현 부장은 “작가뿐 아니라 촬영·조명 감독 등 주요 스태프가 시나리오 작가 등 전체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에 적극적으로 함께 나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도표=최종윤, 김민선

도표= 최종윤, 김민선

ISSUE 5 영화 한 편에 투입되는 작가가 너무 많다?
한국 상업영화 시나리오는 통상 몇 명의 작가를 거칠까. 각자 경험을 바탕으로 최대치를 물었더니, “한두 명”(NEW 한국영화팀 김수연 팀장)부터 “각본만 다섯 명”(폭스 인터내셔널 한국 프로덕션 김호성 대표) “각색까지 여섯 명 이상”(유영아 시나리오 작가) 등 다양한 답변이 나왔다. 영화 한 편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이상적인 시나리오 작가 수는, 크게 “작가를 신중하게 섭외해 한두 사람의 에너지로 쭉 끌고 가는 게 좋더라”(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입장과 “한국 영화계의 자본과 시장 규모 한계로 인해 아직은 어렵겠지만, 할리우드처럼 더 많은 작가의 창의성이 모일수록 콘텐트가 새로워지고 완성도 역시 높아질 것”(김수연 팀장)이라는 기대로 나뉘었다. 명확한 정답이 존재한다기보다, 작품의 성향과 상황에 따라 장·단점이 있다는 게 중론이다.

전자에 목소리를 보탠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작가를 여러 명 거치는 것 자체가 그 작품이 갈팡질팡한다는 이야기”라고 귀띔했다.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 역시 “한두 명의 작가가 시나리오를 써야 작품 고유의 색깔을 지킬 수 있다”며 “일부 제작사들은 작가를 창작자가 아닌 ‘소모품’으로 여겨 입맛대로 바꾼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숙련된 작가가 나오기 힘들다”고 호소했다. 반면 각본만큼 각색에도 활발히 참여해 온 유영아 작가는 “여러 작가의 협업이 꼭 나쁜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시나리오 수정 과정에서 각자 자신의 생각과 방향만 쏟아 놓으면, 퍼즐이 맞지 않는 부분들이 거칠게 도드라진다. 작품 본연의 온도와 결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ISSUE 6 프로듀서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
“한국영화 시나리오의 위기는 곧 프로듀서의 위기다.” 윤성호 감독의 말이다. 아닌 게 아니라, 한국영화 시장에서 프로듀서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는 증언은 차고 넘친다. “신진 제작사들이 개성 강한 영화를 경쟁적으로 기획했던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과 달리”(강우석 감독), “흥행 감독이 제작사를 차려 투자사와 직접 계약하는 경우가 증가하면서, 기획 프로듀서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익명을 요구한 응답자)

영화인들은 입을 모아 프로듀서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십세기폭스코리아 김성경 마케팅 이사는 “작품과 영화 시장을 읽는 통찰력, 감독이나 투자·배급사와 정확하게 소통하는 능력”을 프로듀서의 덕목으로 들었다.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4~5년의 시나리오 개발 기간 동안 “이 아이템이 왜 좋았는지 초심을 잃지 않고”(김성경 이사), “객관적인 시선으로 감독의 독창성과 작품의 중심을 지켜 나가며”(광화문시네마 김보희 프로듀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만한 제작진을 꾸리는 것”(윤성호 감독)도 모두 프로듀서의 몫이라는 설명이다. 그런 만큼 이들은 한국 영화계 내에서의 프로듀서 입지 변화가 시나리오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고 본다.

어느 제작사 대표는 “감독 중심 제작사가 투자·배급사와 직접 계약한 경우, 감독이 연출 도중 제작 공정을 속속들이 총괄하기 힘들다. 투자·배급사 또한 관리할 작품이 워낙 많다 보니 제작 과정에서 ‘누수’가 발생하기도 한다”며, 이를 “최근 한국영화 시나리오의 부진”에 대한 원인으로 조심스레 진단했다. 자신의 연출작을 직접 제작해 온 신연식 감독은 “기성 제작자 중에도, 이 영화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 구체적 이유와 방향을 제시할 만한 전문가가 드물다”고 지적했다. CJ E&M 글로벌 기획제작본부 이창현 부장은 “달라진 풍토에서 프로듀서는 기존 역할을 넘어, 한국영화 발전에 새로운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찾아 나서야 한다”면서 “참신한 신인 작가·감독 발굴에도 더욱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ISSUE 7 최근 5년간 개봉한 한국영화 중 최고의 시나리오는?
영화 `곡성`

영화 `곡성`

한 사람의 응답자가 여러 영화를 꼽을 수 있는 조건 아래, 미스터리 호러 ‘곡성(哭聲)’(이하 ‘곡성’)이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나홍진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겸한 작품이다. 노코멘트인 4명을 제외한 18명 중 절반에 가까운 8명이 이 영화에 지지를 보냈다. 흥미로운 것은 이 8명 모두 투자·배급·제작 관계자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흥행하기 위해 시나리오의 보편성을 확보하는 과정은 불가피하다”(사나이픽처스 한재덕 대표)고 강조하면서도, 그로 인해 “기존 히트작을 모방한 비슷한 영화가 양산되는”(이십세기폭스코리아 김성경 마케팅 이사) 현실을 우려했다. ‘곡성’은 범죄 스릴러 ‘추격자’(2008) ‘황해’(2010)로 이어진 나 감독의 개성을 십분 살린 영화이며, 국내에서 관객 687만 명을 동원해 흥행에도 성공했다. 다수의 응답자가 ‘곡성’을 한국영화 시나리오 부진과 관련해 힌트를 얻을 만한 성공 사례로 바라보고 있었다. 제작자이기도 한 강우석 감독은 “최근 한국 상업영화 중에는 무언가를 강렬하게 남기는 작품이 거의 없었다. 그에 비해 ‘곡성’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시나리오가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봉 당시에도 해석이 분분했던 만큼, 이 영화를 둘러싼 엇갈린 의견도 눈에 띄었다. 익명을 요구한 어느 관계자는 ‘곡성’을 가리켜 “가장 실망스러웠던 시나리오다. 뒷수습이 안 되는 결말을 그럴듯하게 치장했다”고 꼬집었다.

‘곡성’ 외에는 여러 영화에 표가 나뉘었다. 두 번째로 많은 지지를 얻어 낸 시나리오는, 세 표를 획득한 ‘아가씨’다. ‘친절한 금자씨’(2005)를 시작으로 박찬욱 감독과 네 편째 호흡 맞춘 정서경 시나리오 작가가 원작 소설의 각색을 맡았다. 조슬예 시나리오 작가는 “‘아가씨’에는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정서경 작가만의 독특한 색깔이 배어 있다”고 설명했다. 전 세계 8개 언어로 제작돼 해외 합작 우수 사례로 남은 ‘수상한 그녀’(2014, 황동혁 감독, 신동익·홍윤정·동희선 각본)와 한국의 워킹맘이 처한 현실을 여성 감독의 시선으로 파고든 ‘미씽:사라진 여자’(홍은미 각본, 이하 ‘미씽’) 등이 한 표 차이로 ‘아가씨’의 뒤를 이었다. 여성 영화 기근인 한국 영화계에서 여성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들의 시나리오가 더욱 높이 평가받았다는 것은 특기할 만한 점이다.
영화 `아가씨`

영화 `아가씨`

특히 ‘미씽’은 올해 개봉한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6월 23일 개봉), 윤가은 감독의 ‘우리들’(6월 16일 개봉)과 더불어 여성 감독이 각본·연출을 맡은 작품(단, ‘비밀은 없다’는 박찬욱 감독·정서경 작가 등이 공동 각본 작업에 참여했다). 윤성호 감독은 세 편의 영화에 대해 “창작자의 야심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 한국영화 사이에서 여성 화자(話者)의 고민과 자신만의 목소리가 돋보인 작품”이라고 주목했다. 이 외에도 ‘내부자들’(2015, 우민호 감독·각본) ‘끝까지 간다’(2014, 김성훈 감독·각본) ‘건축학개론’(2012, 이용주 감독·각본) 등 탄탄한 완성도와 함께 흥행 면에서 성과를 거둔 작품들이 두 표 이상 받았다. 한준희 감독은 “이창동 감독이 쓴 모든 시나리오”를 꼽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난 5년간 개봉한 한국영화 중 최악의 시나리오도 있었을까. 이에 영화인들은 주로 특정 영화 제목을 들어 꼽는 대신 ‘지지할 수 없는 시나리오’가 어떤 것인지 밝혔다.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투자팀 이정세 부장은 “어느 대목에서 울리고 웃길지 빤하게 드러나는 작품”, 오퍼스픽쳐스 컨텐츠기획팀 이지영 팀장은 “흥행했어도 개발 기간이 너무 오래 걸린 작품”이라 답했다.

기획·글=장성란·나원정 기자,
취재=장성란·임주리·나원정·고석희·김나현 기자,
        윤이나 영화칼럼니스트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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