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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특집] 한국영화, 시나리오가 답이다. ① 영화계 22인에게 물어본 한국 시나리오는···

“영화의 기본은 시나리오다.” “(시나리오가 미흡하면) 촬영이나 후반 작업 단계에서 보완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부족한 시나리오로 영화가 잘 나온 경우를 본 적 없다.” 영화계 여러 분야의 사람들을 취재하며 숱하게 들어 온 말이다. 영화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재 충무로에는 스타 감독에 비해 스타 시나리오 작가의 수가 현저히 적다. 제작비 수십억원을 들인 한국영화를 보다 ‘이야기 자체에 문제가 있는데, 왜 시나리오 작업 단계에서 해결하지 않았지?’라는 의문이 든 경우가 올해도 여럿 있었다. 시나리오의 중요성은 누구나 인정하면서 왜 그만큼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는 것일까. 대다수의 시나리오 작가는 왜 여전히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것일까. 창작·연출·투자·제작 분야 영화인 22명에게 시나리오의 문제와 그 해법을 물었다. 이 기획이 한국영화의 성장을 위한 한 걸음이 되길 바란다.

PART 1 무엇이 문제인가
현재 한국 영화계에서 시나리오와 관련한 문제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에 대한 영화인들의 목소리도 제각각이다. 그 이야기를 일곱 가지 이슈로 정리했다.
 
ISSUE 1 최근 한국영화 시나리오는 질적으로 하향 평준화됐다?
도표 = 최종윤, 김민선

도표 = 최종윤, 김민선

한국영화 시나리오의 부진을 묻는 질문에, 이를 강하게 부정하는 입장과 조심스럽게 동의하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상업영화들이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보수적인 선택을 해 온 결과”(한준희 감독), “‘엣지’ 없이 두루뭉술한 시나리오가 많아졌다”(태원엔터테인먼트 정태원 대표)는 데는 대부분 수긍했다. 그러나 이를 전체적인 시나리오의 질적 저하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한국영화 시나리오가 “천편일률적인 할리우드, 정체 상태인 홍콩·일본 영화계에 비해 훨씬 다양하다”(CJ E&M 글로벌 기획제작본부 이창현 부장) “질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수준이 나아지고 있다”(정서경 시나리오 작가) 같은 긍정적 평가도 있었다. 그러나 위기론도 만만치 않다. 한 제작사 관계자는 “최근 해외에서 투자받는 경우가 늘었다. 이처럼 자본처가 다변화되면서, 스토리텔링이 빈약한 시나리오가 투자받는 경우도 예년에 비해 많아졌다”고 밝혔다. 강우석 감독 역시 “상영 시간을 치밀하게 계산하지 않은 시나리오로 일단 촬영부터 진행한 뒤, 편집 단계에서 무리하게 덜어내려는 영화들이 부쩍 증가했다. 그 때문에 제작비가 불필요하게 오르고, 완성도 낮은 작품이 늘었다”고 지적했다.
 
ISSUE 2 투자·배급사의 요구가 시나리오 완성도를 해친다?
 
도표 = 최종윤, 김민선

도표 = 최종윤, 김민선

한국영화 제작비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투자·배급사가 시나리오 개발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데 응답자 대다수가 동의했다. 문제는 시각의 차이다. 익명을 요구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감독·프로듀서가 그 작품만의 개성과 가능성 위주로 판단한다면, 거대 자본을 움직이는 투자·배급사의 경우 (흥행과 관련된) 위험 요소를 줄이려는 시각으로 작품을 검토한다”고 설명했다. CJ E&M 글로벌 기획제작본부 이창현 부장은 “투자·배급사가 위험 요소를 검증하는 것은, 한국영화 산업화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는 입장이다. 투자·배급사와 협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시나리오가 더 나아지는 경우도 있고, “시나리오의 특성과 장점이 사라지고 두루뭉술한 작품으로 완성되는 경우”(태원엔터테인먼트 정태원 대표)도 생긴다.

투자·배급사 입장에서도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투자팀 이정세 부장은 “투자·배급사에서도 무척 조심스럽다. 너무 적극적이면 ‘갑질’이라 생각하고, 아무런 의견을 주지 않으면 ‘신경 쓰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는다”고 전했다. 광화문시네마 김보희 프로듀서는 “투자·배급사는 시나리오가 지닌 개성을 흔들지 말고, 그 점을 더 많은 관객에게 선보이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투자·배급사의 의견이 일방적 요구로 느껴지지 않도록 소통하는 태도와 방식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ISSUE 3 스타 배우 일정에 맞춰 미흡한 시나리오로 촬영을 시작한 적 있다?
도표 = 최종윤, 김민선

도표 = 최종윤, 김민선

어떤 영화가 시나리오 완성 전에 서둘러 촬영을 시작했다면, 이유는 둘 중 하나다. 배우의 스케줄 혹은 배급 시기에 맞추기 위해서다. “특별히 최근에 불거진 문제는 아니다”(쇼박스 한국영화2팀 이민우 팀장)라고 말할 만큼, 이는 영화계에서 이미 공공연한 일이다. 자신은 그런 경험이 없다고 응답한 10명도 “이런 사례를 듣거나 본 적은 있다”고 말했다. 이유가 뭘까. 레드피터 이동하 대표는 “투자·배급 주체가 늘어나면서 좋은 아이템과 캐스팅을 조금이라도 빨리 선점하려는 경향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단 캐스팅과 스태프 세팅이 완료되면, 프리 프로덕션 기간에도 스태프들의 급여가 나간다. 이들은 대개 다음 영화 일정이 잡혀 있기 때문에 시나리오 수정을 이유로 마냥 기다리게 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정서경 시나리오 작가에 따르면 특히 한국 상업영화의 “배우 의존도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게다가 웬만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주연급 배우를 멀티 캐스팅하는 추세다. 폭스 인터내셔널 한국 프로덕션 김호성 대표는 “티켓 파워를 갖춘 배우들이 캐스팅되면, 시나리오가 조금 미흡해도 투자를 결정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강우석 감독은 “한국 영화판이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영화사들은 너무 배우만 쳐다보고 있다”며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담보할 만한 배우가 캐스팅되면, 시나리오 완성도가 좀 모자라도 무조건 제작에 들어간다. 하지만 시나리오가 아무리 좋아도 인기 많은 배우들이 붙지 않으면 전혀 눈길을 끌지 못하더라”고 씁쓸함을 표했다. 한 시나리오 관계자는 조금 당황스러운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3년 넘게 공들인 시나리오가 배우의 요구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로 완성됐다. 달라지는 것은 상관없지만, 주인공이 처음과 달리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로 바뀌어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과반수 응답자들은 스타 배우의 의견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광화문시네마 김보희 프로듀서는 “많은 영화에 주연으로 참여한 톱 배우들은, 오랜 기간 여러 작품을 비교·분석하며 체득한 통찰력이 있다”고 말했다. 오퍼스픽쳐스 컨텐츠기획팀 이지영 팀장은 “배우 의견이 보태지면서 캐릭터 디테일이 더 나아진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다만 익명을 요구한 응답자는 “상업영화들이 스타 파워에 지나치게 기댄 탓에, 정작 풍성하고 입체적인 서사 개발에는 소홀하다”고 우려했다.
  
인터뷰에 응한 영화인 22명
※이름(가나다순) | 직책 | 대표작

강우석 감독, 투자·제작·배급사 시네마서비스 대표 | ‘고산자, 대동여지도’(9월 7일 개봉)
김경찬 시나리오 작가 | ‘카트’(2014, 부지영 감독) ‘1987’(촬영 준비 중, 장준환 감독)
김보희 제작사 광화문시네마 프로듀서 | ‘범죄의 여왕’(8월 25일 개봉, 이요섭 감독)
김성경 투자·배급사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마케팅 이사 | ‘곡성(哭聲)’(5월 11일 개봉, 나홍진 감독)
김수연 투자·배급사 NEW 한국영화팀 팀장 | ‘부산행’(7월 20일 개봉, 연상호 감독)
김호성 투자·제작사 폭스 인터내셔널 한국 프로덕션 대표 | ‘곡성(哭聲)’
서영희 투자·배급사 CJ E&M 글로벌 기획제작본부 소속 프로듀서 | ‘성난 변호사’(2015, 허종호 감독) ‘집으로 가는 길’(2013, 방은진 감독)
신연식 감독, 제작·배급사 루스이소니도스 대표 | ‘조류인간’(2015) ‘배우는 배우다’(2013)
유영아 시나리오 작가 | ‘형’(11월 23일 개봉, 권수경 감독) ‘파파로티’(2013, 윤종찬 감독)
윤성호 감독 | 웹 드라마 ‘대세는 백합’(2015) ‘출출한 여자’ 시리즈 (2013~), 영화 ‘은하해방전선’(2007)
윤태호 웹툰 작가 | 웹툰 『미생』(2012~) 『내부자들』(2010~2012)
이동하 제작사 레드피터 대표 | ‘부산행’
이민우 투자·배급사 쇼박스 한국영화2팀 팀장 | ‘굿바이 싱글’(6월 29일 개봉, 김태곤 감독)
이재필 투자·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 투자제작팀 팀장 |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12월 14일 개봉, 홍지영 감독) ‘덕혜옹주’(8월 3일 개봉, 허진호 감독)
이정세 투자·배급사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투자팀 부장 | ‘미씽:사라진 여자’(11월 30일 개봉, 이언희 감독)
이지영 제작·배급사 오퍼스픽쳐스 컨텐츠기획팀 팀장
이창현 투자·배급사 CJ E&M 글로벌 기획제작본부 부장| ‘히말라야’(2015, 이석훈 감독) ‘국제시장’(2014, 윤제균 감독)
정서경 시나리오 작가 | ‘아가씨’(6월 1일 개봉, 박찬욱 감독) ‘박쥐’(2009, 박찬욱 감독)
정태원 제작사 태원엔터테인먼트 대표 | ‘인천상륙작전’(7월 27일 개봉, 이재한 감독)
조슬예 시나리오 작가 | ‘가려진 시간’(11월 16일 개봉, 엄태화 감독) ‘잉투기’(2013, 엄태화 감독)
한재덕 제작사 사나이픽처스 대표 | ‘아수라’(9월 28일 개봉, 김성수 감독) ‘무뢰한’(2015, 오승욱 감독)
한준희 감독 | ‘차이나타운’(2015)

기획·글=장성란·나원정 기자, 취재=장성란·임주리·나원정·고석희·김나현 기자, 윤이나 영화칼럼니스트 hairp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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