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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그러면 못써’…늘 듣던 어머니 말씀이 바로 인문학 핵심

신년 인터뷰 ① 섬진강 시인 김용택
섬진강 시인 김용택(69)을 전북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로 지난달 28일 찾아갔다. 지난해 봄 그는 8년간의 전주 생활을 마감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역 예술인에게 거처를 마련해주는 정부의 정책 지원을 받아 ‘물결을 바라보는 곳(관란헌·觀瀾軒)’이라는 이름의 서재가 들어 있는 그의 생가 뒤편으로 아담하고 말쑥한 살림집과 서재가 생겨서다. 베스트셀러 시인으로 2010년 이창동 감독의 영화(‘시’)에까지 출연해 일찌감치 ‘국민 시인’ 반열에 오른 김씨지만 지난해 그는 부쩍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전주시에서 운영하는 시티투어 버스 코스에 새 거처 ‘김용택의 작은 학교’가 포함돼 11월까지 주말에만 방문하는 관광객이 한 달에 수백 명에 달했다고 했다. 그 와중에 9월에는 열두 번째 신작 시집 『울고 들어온 너에게』(창비)를 출간했다. 지금 읽어도 몸이 뜨거워지는 1985년 첫 시집 『섬진강』과 비교하면 들끓는 육성은 한껏 낮춘 대신 피사체는 최대한 냉정하게 끌어당겨 명징한 흑백사진 느낌이 나는 시집이다.

새해엔 남과 비교하지 말고
알아서 나름대로들 살았으면
소쩍새 울면 뱀 눈뜨고 봄이 오고…
옛 어르신들은 삶 자체가 공부
지나간 시간, 다가오는 시간보다
힘들어도 나는 그냥 지금이 좋아

김씨를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섬진강이라는 인문지리를 기민하게 선점해 자신의 문학 자산으로 끌어들인 드문 경우다. 시집 속의 섬진강 마을들은 산업화에 몸살을 앓으며 해체 직전이지만 그런 망가진 모습조차 고향 잃은 현대인에게 위로가 되는 한 김용택과 섬진강은 계속해서 호출될 수밖에 없다. 섬진강이 마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소문난 ‘신문광’인 김씨는 “오전 3시면 어김 없이 일어나 중앙일보를 비롯해 5개 일간지를 1시간 반에서 두 시간에 걸쳐 꼼꼼히 읽는다”고 했다. “세상이 그 안에 고스란히 들어 있어서”다. 전국에서 강연요청이 쏟아져 거의 매일 강연을 다닌다. 시 쓰고 신문 보며 세상과 소통하는 김씨로부터 문학과 인생, 새해 설계에 관해 들었다. 그는 동갑 친구 김훈이 ‘갑갑한 시골 촌놈’이라고 표현한 대로 투박하지만 유쾌한 과장을 자주 선보였다.
8년간의 도시 생활을 접고 지난해 봄 섬진강변 고향마을로 돌아온 시인 김용택씨. “매사에 절대 무리를 하지 않는다.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남는 건 지금, 현재다. “조금 힘들어도 늘 지금이 좋다”고 했다. [임실=프리랜서 오종찬]

8년간의 도시 생활을 접고 지난해 봄 섬진강변 고향마을로 돌아온 시인 김용택씨. “매사에 절대 무리를 하지 않는다.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남는 건 지금, 현재다. “조금 힘들어도 늘 지금이 좋다”고 했다. [임실=프리랜서 오종찬]

순창에서 넘어왔는데 이정표가 잘 돼 있다.
“TV에서 봤건 시집을 읽었건 나를 아는 사람들이 주로 찾아온다. 그 사람들을 위해 국토교통부에서 이정표를 만들었으니 국가가 나를 인정해 준 거다. (내 집이)이순신 생가나 마찬가지인 거지. ”
김용택 시인이 문학관을 만든다더라, 하는 문단 내 비아냥도 있었다. 생존 문인을 기리는 문학관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논리였다.
“임실군에서 문학관 지어준다고 한 15년 따라다녔다. 내 이름으로 어떻게 문학관 짓나. 그러지 말고 내가 살 집을 지어달라고 했다. 생가 뒤편 내 땅을 내놓았다. 땅과 집을 기부체납하기로 하고, 5년마다 관리계약을 연장하는 식으로 살고 있다. 나중에 자식놈들이 살림집에 들어와 살겠다면 우선권이 있지만 그럴 놈이 없다.”
1948년 태어났을 때는 무척 외진 곳이었겠다.
“이루 말할 수 없었지. 여기서 전주 가려면 30분 걸어나가 2시간 동안 완행버스를 타야 했다. 가까운 회문산에 빨치산이 많아 순창으로 피난 갔다가 한국전쟁 끝나고 돌아와 다시 살았는데 60년대 이전까지는 전형적인 농촌공동체가 형성돼 있었다. 이후 산업화, 새마을운동으로 그 공동체가 파괴되는 과정을 정부 농촌 정책의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고스란히 목격했다.”

김씨는 “이제는 집 앞 섬진강에 물고기가 적어졌을 뿐 아니라 물이 오염돼 잡아도 먹지 않는다”고 했다. 밤에 목욕하러 가면 주둥이로 사람 종아리를 쿡쿡 찌를 만큼 흔하던 물고기, 소설가 황석영이 “아이들 웃음소리, 시인의 분노의 눈매까지 섞어 끓였다”고 극찬한 김용택표 매운탕에 들어가던 물고기들이다.

농촌 해체로 사라지는 건 물고기뿐이 아니다. 수백 년을 이어 내려온 어르신들의 삶의 지혜도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김씨는 “60∼70대 할머니들에게 강연할 때는 그 양반들이 살아온 삶이야말로 진정 인간다운 삶이었다는 점을 확인시켜 드린다”고 했다.

“우리 어머니들은 배우지 못해 아무런 지식이 없었지만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잖아. 삶 자체가 공부라서 살면서 배우고, 배우면서 써먹은 거지. 그러니까 갈수록 일을 잘하게 되고. 반면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 걸 잘 안 써먹잖아. 쓸데없는 걸 배우니까. 헛짓을 하는 거지, 우리 교육이라는 게. 좋은 대학, 좋은 회사에 취직하기 위해…”

김씨는 그런 삶의 지혜를 자신도 어머니로부터 직접 배우며 자랐다고 했다.

“ 소쩍새가 처음 울 때면 어머니가 ‘내일 아침 화장실 가서 똥 쌀 때 어제 저녁 소쩍새가 처음 울었지, 기억하는 사람은 영리한 사람이다’ 그러셔. 그러고는 ‘소쩍새가 울면 땅 속의 뱀이 눈을 뜬다’고 하시는 거야. 소쩍새 울음이 봄을 알리는 기별이라는 거였지.”

김씨는 어머니로부터 늘 ‘사람이 그러면 못 써’, ‘싸워야 큰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서재에 꽂힌 수천 권의 인문학 서적이 품은 교훈을 단 한 줄로 줄이면 ‘사람이 그러면 못 써’다. 아이들이 싸우며 자라야 하는 이유도 그래야 모순이 제대로 드러나 바꿀 건 바꾸고 새 단계로 나갈 수 있어서다.
 
최근 촛불도 그런 싸움인 건가.
“싸움 치고도 크게 잘 싸운 거다. 그 싸움을 나라에서도 보호했고, 사람들도 스스로를 잘 지켰다고 봐야지. 권력도 어쩌지 못할 만큼 시민들이 거대해져 온갖 모순들을 모두 들고 나와 말해버린 거다. 어마어마하다.”

김씨는 “정치하는 사람들이 촛불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해 살려나가야 한다”고 했다. “촛불은 단순히 지도자 하나를 바꾸자는 게 아니다. 주권자인데도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의 박탈감을 해소시켜 줘야 한다. 그러려면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자신들 진영이나 패거리의 이익을 챙겨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트렌드를 꿰뚫은 출판 기획자이기도 하다. 국내외 명시 101편을 모아 독자들이 직접 써보도록 한 필사 시선집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예담)가 tvN 드라마 ‘도깨비’에 노출되면서 온라인 서점 yes24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비결을 묻자 김씨는 “내가 촉이 좋다. 신문을 열심히 읽어서 그렇다”고 답했다.
 
새해 계획은.
“ 계획을 세우지 않고 산다. 이렇다 할 희망도 없다. 그냥 지금이 좋다. 지나간 시간이나 다가오는 시간보다 힘들어도 지금이 좋다.”
독자들에게 덕담한다면.
“알아서 살았으면 좋겠다. 제일 좋아하는 말이다. 알아서 나름대로, 남과 비교하지 않고. 우리가 남 때문에 괴로운 거다. 남이 저렇게 사니까 내가 괴로운 거 아닌가. 구조적인 문제가 있고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있을 거다. 그래도 인간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알아서 자기 자신을 귀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 한다. 그런 삶의 태도가 필요하다.”

임실(전북)=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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