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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장집-송호근 신년 대담 “리셋 코리아”

2017년은 복합적인 해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민주화 30년’,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라는, 한국 현대사를 대변하는 두 상징이 함께 겹쳐진다. 거기에 대통령 탄핵 여부와 차기 대선 일정까지 예고돼 있다. 2016년 말 시작된 촛불은 ‘시민의 힘’을 웅변하며 전반적 변화를 추동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이뤄낸 산업화와 민주화는 우리의 자랑이었다. 그러나 부족한 점도 많았다. 성공과 자랑 뒤에 놓인 어두운 면. 이미 했어야 하는데 하지 못한 숙제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형국이다.

공정한 사회, 양극화와 청년 실업 해소, 사회통합과 남북문제 해결 등이 핵심 과제로 부각된다. 광장의 요구는 거침이 없다. 정치권 재편, 기존 이념 지형의 균열 등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사태가 동시다발적으로 전개되고 있다. 두 석학이 지혜를 모았다. 최장집 고려대(정치학) 명예교수와 송호근 서울대(사회학) 교수. 주제는 “리셋 코리아”. 이념 갈등이 첨예한 한국 사회에서 그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온 두 사람의 대담은 지난달 28일 오후 5시 중앙일보 논설위원 회의실에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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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리셋 코리아 , 피해갈 수 없는 시대의 과제로 떠올랐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촛불과 광장에서 확인된 `시민의 힘`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했다. 신인섭 기자

2017년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리셋 코리아", 피해갈 수 없는 시대의 과제로 떠올랐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촛불과 광장에서 확인된 `시민의 힘`을 진단하고 해법을 모색했다. 신인섭 기자

◇ 촛불시위와 탄핵 정국
촛불시위와 대통령 탄핵 정국의 의미부터 먼저 짚어보겠습니다.
최장집(이하 최) : 촛불시위는 여러 측면에서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사건입니다. 우리의 민주화경험도 한 세대가 지났지만, 실제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었지요. 문제는 촛불시위가 대통령의 탄핵만을 목표로 하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정치적 수준의 대개혁만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그 규모가 큰 것만큼이나, 역사적 의미 또한 크고, 깊다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가 보통 개발독재라고 말하는, 국가운영과 사회구성의 모델이라 할 박정희 패러다임이 그 효능을 상실하면서 붕괴하기에 이른 겁니다. 이제 그 자리에서 우리는 새로운 것들을 창출해야하는 전환점에 도달하기에 이르렀어요.

송호근(이하 송) : 한 마디로 촛불시위는 놀라운 민의의 표출인데, 이것을 거대한 ‘항의의 체계화’로 개념화 할 수 있습니다. 이 배경에는 기존의 ‘사회민주화’의 계기를 유실한 것에 대한 시민적 분노가 있습니다. 해야 할 숙제를 버린 채로 질주해왔던 지난 10년에 대한 항의라고 할까요. 사회민주화를 했어야 하는 시점에 그걸 못하고 유실한 데에서 나온 항의, 이것이 체계화된 것이 촛불시위의 장엄한 모습입니다. 항의가 터져 나온 노즐은 도덕적 양심에 대한 갈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 정치적 제도를 개선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지난날의 신자유주의적 경제운영과 성장정책이 몰고 온 사회경제적 양극화, 불평등의 확대, 구조적 저성장과 청년실업, 노동문제, 사회해체 현상과 같은 실제적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국가와 경제운영원리를 정립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을 맞게 됐습니다. 그동안 한국경제를 이끌어왔던, 그리고 그 기초에서 한국사회를 주도해왔던 국가-재벌 동맹관계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어요. 어느 면에서 우리는 80년대 민주화 때보다 더 큰 과제를 안게 됐어요.

: 분노의 층위를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으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 차원에서는 지배층의, 사회 엘리트의 부패에 대한 분노입니다. 도덕적 양심은 시민성의 핵심입니다. 그걸 바탕으로 사회적으로는, ‘시민 정치’(citizen politics)의 출발입니다. 민주화 30년에 시민정치가 잘 이뤄지지 않았던 만큼 촛불은 시민정치의 시대를 열었습니다. 사회과학적으로 정의해 보자면 국가의 시대를 마감하고 시민의 시대를 열었다고 할 수 있지요. 시민적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던 민주주의의 거시적 제도가 한계를 드러낸 것이죠. 정치권이 독주해온 한계. 그래도 30년 동안 다행스럽게 시민성의 씨앗들이 지속적으로 뿌려지면서 미시적 기제들이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이나 시민 자치, 주민자치가 어느 정도 발전돼 왔어요. 촛불집회는 우리나라의 정치사적인 발전에 있어서 시민주도권을 확인하는 굉장히 중요한 계기입니다. 이것을 의식하는 것과 의식하지 않는 것이 다릅니다. ‘국가주도 민주주의’로부터 ‘시민민주주의’로 나아가는 길에 서 있습니다.

최장집 고려대학교 정치학 명예교수. 신인섭 기자

◇ 시민정치와 자유주의
시민정치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설명해주시죠.
: 1960년대 미국 매카시즘 이후에 국가가 개인의 자율성을 침해하니까 그걸 항의하는 시민들의 갈망을 반영하고자 정치학자들이 ‘시민민주주의’(Civic Democracy) 개념을 만들었고 상당히 많은 연구들이 나왔습니다. 시민민주주의는 거시적 제도를 뒷받침하는 시민 개개인들의 실천적 자율성으로 작동합니다. 민주주의의 미시적 기초지요. 이번 촛불시위 이전까지 민주제도의 바탕이 비어있었다면 이제 시민의 자율성이 꿈틀대고 그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 이번 촛불시위를 보면서 나는 어떤 자유주의적 현상의 징표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한국사회에서 그동안 정치체제는 민주화가 됐지만, 정신적으로는 전제주의적 상황을 벗어나지 못했고, 또 이념적으로는 국가주의, 민족주의와 같은 집단주의적 이념과 가치에 의해 압도돼오면서 자유주의적 전환의 계기를 갖지 못했죠. 현대 자유주의의 내용은 두 가지 이상(理想)의 결합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자유언론과 개인적 자유의 이상이고, 두 번째는 부와 특권의 불평등이 과도하지 않도록 하는 민주적 사회의 이상이에요. 이 자유주의는 ‘자율적 결사체’를 기반으로 하는 다원주의를 동반하면서 그것을 발전시키게 되지요. 송 교수가 말한 민주주의의 미시적 기초가 그것입니다.

: 이번 촛불집회에서 ‘자유주의의 본질’을 봤다는 건 정말 의미가 크지요. 몇 년 전 박근혜 대통령 후보시절에 한번 만난 적이 있어요. 국민이란 말 대신 시민이란 말을 쓰세요, 했더니 박 후보가 그것은 전주 시민, 대구 시민 아니에요? 그러더라고요. 시민을 거주 개념으로 생각하는 거지요. 역사적 개념이 결여돼 있어요. 이 정권은 민주주의의 기반인 시민을 국민으로만 간주했다는 데서 쓰라린 대가를 치르고 있지요.

: 한국에서는 자율적 결사체가 매우 약하고, 특히 노동자, 생산자 집단이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된 현재까지 여러 형태로 억압돼왔어요. 그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사회적 기반을 무척 취약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이었어요. 이번 촛불시위 과정에서 보면 지방의 여러 형태의 주민자치단체들이나, 결사체 회원들이 집단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점은 민주주의를 향한 다원주의적 발전현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지요.

: 제가 설문조사를 해봤죠. 이번 촛불시위에 가장 많이 참여한 계층은 전문가+상위소득층입니다. 놀랍죠. 중하위층이 밤에 나오긴 좀 힘들었을 겁니다. 여유가 있는 사람이 나오는 편인데 전문가, 대학 졸업자 이상이 70% 정도 되고요, 월소득 500만원 이상 중상층이 50%가 넘어요. 어떤 의미일까요? 1840년대 독일의 자유주의를 주도했던 교양시민층이 드디어 한국에도 생겼다는 뜻입니다. 자녀들이 “엄마 아빠 그때 뭐했어?” 물어보면 창피하지 않으려고 나왔다는 것, ‘세대’와 ‘시대’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비로소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자유주의의 두 얼굴이 권리와 책임이라면, 책임 의식이 발현된 거죠.
송호근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교수. 신인섭 기자

송호근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교수. 신인섭 기자

◇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
...
: 송 교수가 시민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했다면 나는 이것이 그동안 우리가 실천해왔던 대의적 민주주의의 허약함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요.

: 정당제도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최 교수님의 지적에 동의합니다. 광장은 문제를 제기하지만 풀 수는 없지요. 정당 정치가 푸는거지요. 그런데, 이런 인식이 중요합니다. 지금까지는 정당이 시민을 끌고 왔다면 이제는 이 관계가 역전되는 시점입니다. 정당이 무엇을 대변할 것인지를 시민에게 물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이게 광장이 요구하는 정당재편성의 시그널입니다. 유럽도 대의민주주의가 한계에 달했음을 일찍이 알고 있었어요. 대중 정당을 기반으로 한 대의민주주의는 1920년대에 형성돼 거의 1세기를 진화해 왔는데 이제 한계를 드러냈지요. 보완할 것과 대안을 심사숙고할 시점입니다.

: 직접 민주주의든 디지털 매체를 통해 어떤 의사소통수단을 발전시키든 간에, 선출된 대표에게 통치를 위임하는 대의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무언가가 나타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강조하고 싶은 건 민주주의 역시 통치체제의 하나라는 사실이에요. 우리가 정부(government)라고 말할 때 그것은 통치제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라는 말이 주권자로서 시민의 정치참여에 기초를 두지만, 대표를 선출해서 그들에게 통치를 위임하는 체제이니까요. 이 점에서 선거와 정당은 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중심기제라고 할 수 있겠어요. 시민들이 모두 참여해서 문제들을 처리하고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디지털혁명이 의사소통수단을 발전시킴으로써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확대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러나 그것이 대의 민주주의를 대체할 수 있다거나, 그것이 더 장점을 갖는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 그건 인정합니다. 그런데 유럽을 봐도 대의 민주주의의 적실성은 시간이 흐르면서 줄어들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핵심 모순은 지역정당에서 출발했다 포괄정당이 됐다 다시 지역정당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특수에서 보편, 보편에서 특수로 진자운동을 하는 것, 한국 정당의 모순입니다. 대선을 전후로 그래 왔어요. 기능과 본질은 그대로 둔 채 말이지요. 저는 이 모순을 풀 자원이 시민 정치라고 생각합니다. 국회의 나홀로 독주를 끝내고, 대변성, 책임성이란 대의민주주의 원래 취지를 증대시키는 제도개혁을 실행해야 합니다. 압력을 넣어야죠. 광화문에서 그 에너지를 충분히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정당을 시민민주주의라는 보편적 차원의 행위자로 변신시키는 방안, 그걸 찾아야 합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다당제 환영…개헌 없이 가능한 '결선투표제' 도입을 
사회경제적 양극화, 청년실업, 노동문제 등 과제 산적
"80년대 민주화 때보다 더 큰 과제를 안게 됐어요"
박정희 패러다임 효능 상실…새로운 것 창출 전환점

<송호근 서울대 교수>
항의의 체계화… 시민 정치, 시민 민주주의 개막
이미 했어야 할 사회민주화 못한 데 대한 분노
대의 민주주의 한계…시민 주도권 갖고 정당 재편성 
사회복지를 고용 중심 패러다임으로 다시 짜야
 
 
◇ 차기 정부의 과제
올해 대선이 치러지게 되는데 차기 정부의 시대적 과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다당제의 출현은 환영할만한 변화라고 봅니다. 정당체제가 변하면 경제운영과 사회경제적 문제들을 다루는 방식과 내용이 변해야하고,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민주주의의 본질은 사회적 요구가 대표되고 그것을 국가, 정부의 결정기구에 투입하는 인풋 측면에 있다고 봅니다. 권위주의는 사회적 요구보다, 통치자의 의지와 목표를 효과적으로 관철하는 정책의 산출, 즉 아웃풋 측면에 치중했어요. 이 점에서 우리가 정당체제, 정치개혁을 논할 때, 어떻게 사회적 이익과 요구가 잘 대표할 수 있느냐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들의 요구ㆍ필요가 제대로 대표되는 기회와 채널이 넓어지는 것이 정당체제의 긍정적 발전을 평가하는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런 의미에서 인풋의 시작인 것 같습니다. 그 인풋이 어떻게 다시 분절되고 대립할 것인지 걱정이 되긴 합니다. 촛불 공중은 하나였는데 이슈 공중은 여럿으로 갈라집니다. 이슈 공중이 정당 재편성으로 귀결되면 좋을 텐데, 정당이 먼저 갈라져 이슈 공중을 분절시켜 버리면 과거로 회귀하는 겁니다. 이 시점에서, 정당과 시민사회의 주종관계를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시민이 주도권을 가지고 정당이 재편성되게 만들어야만 합니다. 향후 6개월은 불안정한 이행기인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취약한 거버넌스를 깨서는 안 됩니다. 대선 주자들이나 정당들이 거버넌스가 감당하지 못하는 주장들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포퓰리즘의 위험이 시작된 거죠. 여기에 대해서 시민들이 경고해야 합니다. 통치력을 넘어서는 사안을 자제해야 합니다.
감당하지 못할 지나친 주장은 어떤 것인가요.
: 개헌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저는 개헌 논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당장 5월 안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지금은 국가관리자들이 외곽으로 밀려난 상황, 일종의 ‘경비병 사회’입니다. 시민적 요구는 넘치는데 이걸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은 바닥입니다. 그 격차가 너무 커요. 관리능력은 없이 외곽에 경비를 선 상태니 말이죠. 개헌의 가닥을 두어 개로 마련하고, 실행 과제는 다음 정권으로 넘기고요. 차기 정권은 일종의 관리 정권이란 생각이 듭니다. 무슨 새로운 업적을 많이 하겠다는 과욕을 버려야 합니다. 지금 사태가 결핍증의 발현이라면, 비어있는 것을 채우는 것을 최대 업적으로 설정해야 합니다. 뭘 못했을까요? 포괄적 의미의 사회복지입니다. 사회복지의 핵심이 뭔지 아세요? 고용입니다. 고용은 생존수단, 사회적 존재감의 처소입니다. 복지가 자잘한 메뉴가 아니지요. 경로연금, 반값 등록금, 고령 건강보험, 등등. 여기에 고용은 어디로 갔나요? 사회복지를 고용 중심의 거시 패러다임으로 ‘재구조화’(re-structuring) 해야 합니다. 모든 문제가 여기서 출발하지요.

: 송 교수가 개헌 문제가 중첩되는 걸 부정적으로 말씀했지만 나도 그건 동감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정치적 실험은 굉장히 필요하다고 봐요.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결선투표제의 도입입니다. 지금 다당제적 상황에서 대선을 치르게 될 때, 지금과 같은 단순다수제 방식으로는 작은 지지만으로 대권에 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이 경우 지지기반이 약하고, 대표하는 범위가 좁게 돼요. 개헌을 하지 않고도 이를 보완하는 대안을 발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결선투표제라고 생각합니다. 프랑스를 비롯해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도 이 방식을 택하고 있어요. 대선의 선거방식을 바꾸는 문제는, 헌법이 명시하지 않고 있어, 애매함이 있기도 해요. 그래서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는 그것을 위헌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헌법의 공백을 정치적으로 풀어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결선투표제는 프랑스의 ‘동거정부’(co-habitation)에서 볼 수 있듯이 일종의 연립정부 형태를 실현할 수도 있어요. 청와대로 모든 권력이 집중된 지금의 정부형태가 달라져야 한다는 광범한 요구에도 부응할 수도 있습니다.

: 차기 정권이 과거에 못했던 것을 보완하는 일을 하려면 공통기반을 만들어야죠. 그걸 위해 결선투표제에 대한 논의는 중요합니다. 이와 함께 다음 정부를 뽑기까지 이행과정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한국 역사에서 통치력이 소멸된 상태에서 6개월을 지내본 적이 없습니다. 통치력이 없어도 시민사회가 잘 굴러간다, 스스로 뭔가 할 수 있다는 시민의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는 기간이라고 봅니다. 문제는 외부 충격이 커지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겁니다. 이행기 우리는 시민사회의 체질을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에 중점을 둬야 합니다. 광장에서 가정으로 바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 결사체를 거쳐 가야 합니다. 이게 유럽 시민사회의 교훈입니다. 결사체적 학습의 핵심이 바로 ‘손실의 내면화’입니다. 사회 문제가 발생하면 내가 손실을 입어도 공공이익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겠다는 것, 이런 자율적 심성이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것이 지금 그들의 엄청난 자산이자 사회적 자본이죠.
◇ 보수의 재편성
보수의 분할이나 재편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 해방 후 남북분단이 되면서 나라가 만들어졌고,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보수가 한국사회의 중심 세력이 된 것은 필연적인 면이 있습니다. 문제는 냉전식 반공보수주의와 권위주의의 결합이 민주화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중심적 이념이고 가치가 됐다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앞으로 보수는 훨씬 더 자유주의적 가치를 많이 담지하고, 사회의 다원화를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법의 지배와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수용하는 보수로 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지금 촛불시위는 이러한 변화를 압박하는 힘이라고 생각됩니다.

: 법치가 정권연장의 수단이었지요. 보수를 그런 식으로 운영한 친박계는 해체돼야 마땅합니다. 요즘은 ‘가짜 보수의 실패’라는 말도 나오는데 그 말은 은폐막이죠. 사실은, 보수 전체의 실패입니다. 자유주의의 본질을 왜곡한 보수의 한계가 드러난 거죠. 보수는 무너져야 합니다. 진정한 보수는 개인의 자유로부터 출발해서 공익에 이릅니다. 거기에 도덕중심, 전통적 가치 이런 것들을 결합하면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건데, 그런 가치를 실현하지 못한 거죠. 양극화를 풀지 못하는 보수는 보수가 아닙니다. 시세와 처지를 읽지 못하는 진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보수는 다시 새롭게 태어나기 힘들까요.
: ‘북한’과 ‘분배’에 대한 전면 거부, 이게 보수의 구조화된 신념이죠. 분배?, 참아라. 종북, 안 된다. 이게 20세기 한국정치, 박정희 패러다임의 요체죠. 21세기 진정한 보수란 무엇인가? 약자를 끌어안고, 공동체를 만드는 것, 편협한 민족주의를 내세우지 말고 세계주의적 관점에서 한반도를 바라보는 것, 그래야 진정한 진보도 태어나고요. 이념의 지형도를 다시 그려야 해요. 이걸 누가 바꿔야 할까요? 광장이, 시민사회가 경고하고 있어요. 정치권보다 한층 앞선 시민이 이념적 지형도를 다시 그려야 합니다.
◇ 남북한 문제와 통일
북한, 안보 문제가 결국 우리가 넘어야 할 산으로 보입니다.
: 통일 정책을 바로 양자 관계, 남북 관계로 치환시켜버린 데서 문제가 발생했다고 봅니다. 어느 날 갑자기 개성공단 폐쇄! 이게 통일대박인가요? 통일을 오히려 동북아 문제, 세계 문제로 확대시키면 북한은 작은 부분에 불과해요. 극단적 종북은 문제지만, 그걸 공격무기로 썼던 낡은 인식을 버리고 다자 관계, 세계적 관계로 시야를 확대하면 북한을 압도하는 여유가 생겨납니다.

: 남북관계를 평화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키는데 있어서는 민족주의란 이념을 상대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개방적인 민족주의를 가지면서도 자유주의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수용하는 게 필요하고, 또 가능합니다. 그걸 통해 평화의 의미와 가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리라 믿어요. 남북한이 서로 죽기 아니면 살기의 발상에서 벗어나서 평화공존을 할 수 있는 틀을 발전시키는 게 하나의 대안이라고 봅니다.

: 제가 연해주에 가서 보니,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생존했습니다. 이젠 생존이 문제가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어요. 뭔지 아세요? 바로 시민사회가 살아있다는 겁니다. 진취적 항의의 체계화, 그 기운이 한반도에 차있어요. 일본은 전국 차원의 시민운동은 절대 안 일어납니다. 중국도 마찬가지. 한국이 유일합니다. 일본, 중국의 국가주의에 대해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보여줄 유일한 국가, 한국입니다. 우리의 에너지를 종북이라는 낡은 잣대로 위축시킨 거죠. 동북아시아적 시선, 시민적 포용과 견제로 북한, 통일 문제의 출구를 찾아내야 합니다.

: 송 교수가 말씀한 문제의 연장선상에서 나는 독일통일 사례를 모델로 제시할 수 있다고 봐요. 독일 통일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건 브란트 수상이 주도했던 ‘동방정책’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는 건데, 그게 결실을 볼 수 있었던 건 유럽연합(EU)이라는 초국가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입니다. EU가 없이 독일만의 동서독 통일은 프랑스, 영국을 비롯해 유럽의 다른 독일 인접 국가들의 반대로 가능하지 않았을 겁니다. 햇볕정책도 그런 틀에서 보면 부족한 것이 있지요. 동북아시아 6개국이라는 국제관계적 틀, 초국적 틀을 통해 공동체적 관점에서 접근했더라면 보다 폭넓은 접근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진행·정리=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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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 소장 : kimseok@joongang.co.kr (02-751-5511)
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