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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의 작가전] 신현림의 매혹적인 시와 사진 이야기 #7. 느닷없는 인연 (1)

- 베르나르 블루메
 
 
 
코펜하겐에는 비를 맞고 다니는 사람이 꽤 많았다. 우산을 쓴 내가 약간 느닷없어 보였다. 아, 그래 느닷없다는 느낌이 정확하겠구나. 그 가늘고 차가운 비도 아랑곳없이 다니는 덴마크인들도 내게는 느닷없어 보였다. 문득 덴마크에 온 것도 느닷없는 행운이었음에 가슴 깊이 감사했다. 북구 유럽은 꿈만 꾸었지 이렇게 올 줄은 몰랐다. SBS <세계 도시락 여행> 프로에 딸과 출연 요청이 와서 가슴 설레며 따라왔지만 모든 게 낯설고 신기했다. 느닷없음에서 낯섦과 신기함은 그 배가 되었다. 그 느닷없음 속에 루이지에나 미술관에 들어섰다. 바닷가에 있는 루이지애나 미술관 입구는 폐교를 고쳐 만든 듯이 소박했다. 하지만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자 아주 세련된 실내 풍경이 펼쳐졌다. 미술관 1층 로비 겸 기프트 숍에 가득한 덴마크의 유명한 아티스트들이 디자인한 물건들이 마음을 푸근하게 하였다. 그 물건은 나중에 사자고 생각하며 로비 밖 유리창으로 내다보이는 비를 바라보았다. 빗방울들은 불빛에 반사되어 알록달록 보석같이 보였다. 양쪽을 통유리로 된 긴 복도를 따라 바깥 정원과 조각 작품들도 비에 젖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미술관 안으로 들어섰다. 책으로만 보았던 베르나르 블루메의 작품을 보고 무척 반가웠다.
아무튼 베르나르 블루메의 반항은 전통 이미지에 반발하는 60년대 플럭수스 운동과 요셉 보이스의 영향을 받았다. 블루메의 작품 <거실에서>애서 주전자의 공격으로 가구가 없어지고, 거꾸로 돌려지는 등 그의 작품은 충돌적이다. 주제와 기법을 미리 점칠 수 없어서 특별하다. 보이는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움직이는 데 있다. 1937년 독일 출생인 그의 초현실주의적인 사진은 보는 이를 형이상과 심리학의 땅으로 이끌었다. 프로이드, 융의 심리학, 개념주의 예술 등에서 영향을 받았고, 미국 현대사진의 기수인 듀안 마이클즈처럼 그는 연속사진을 만들었다. 둘 다 자신들이 스스로 작품 속의 주인공이 되어 사진 과정의 신비로운 힘을 보여준다. 반항적이고 해학적이다. 주제 이미지, 규모 움직임에서 듀안보다 훨씬 과장되어있다. 그런데 블루메 옆에 길게 늘어난 그림자 자화상을 찍은 사진을 보던 피디님의 말이 기억난다.
 
“말도 안돼요. 이런 작품이 미술관에 걸려지다니.”
나도 동감이었다. 오후 네 시쯤 길게 늘어진 자신의 그림자를 찍은 사진인데, 누구라도 찍을 수 있는 쉬운 사진이었다. 피디님은 적어도 미술관에 걸리는 작품은 그 이상이어야 한단 뜻이셨다. 그런데 이미지 자체가 주는 색감만 보면 봐줄 만은 했다. 그리고 덴마크라는 나라에서 그의 업적이나 힘이 세기 때문에 걸렸을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는 시단이나 어디나 있다. 작품은 그저 그런데, 과대평가된 작가들이 있다. 또한 그 반대로 과소평가된 분들도 있다. 그 정확한 평가를 당대 평론가들이 해내기엔 역부족이 아닐까 싶다. 얼마나 공정하고 의로운 시선을 용기 있게 보여줄 수 있을까. 경쟁이 심할수록 점점 학맥, 인맥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늘어날 텐데. 그 공정하고 정확한 평가는 후손들에게 숙제로 남겨질 것이다. 어쨌든 확실하게 자기 개성, 자기 색이 분명한 작가들은 우뚝 서서 주목을 끈다는 면에서 베르나르 블루메의 작품은 잊히지 않는다. ‘어떤 작가든 잊히지 않는 작업을 꿈꾸겠지’ 속냇말을 하고는 작품들을 돌아보고 문득 나는 뒤로 돌아섰다.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가슴이 무너졌다. 그러면서 가슴은 한없이 넓혀졌다. 북구 유럽을 갈 경우 이곳을 몇 번이나 꼭 들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구나. 눈앞에 펼쳐진 광대한 북구 유럽의 바다. 이 바다가 거대한 작품으로 압도해왔다. 바다 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배도 등대도 없었고, 사람과 해도 없었다.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았을 때처럼 아득한 우주를 보는 기분이었다. 아득했고, 몹시 슬펐다. 바다 위에 아무것도 없어서였다. 배도 사람도 해도 아무 것도 없었다. <슬프면 바다를 보러 간다>는 데라야마 슈지의 시가 떠올랐다.
 
슬퍼졌을 때에는 바다를 보러 간다.
헌책방엘 들렀을 때에도 바다를 보러 간다.
 
그대가 아플 때에는 바다를 보러 간다.
마음이 빈곤한 아침에도 바다를 보러 간다.
 
아아 바다여
듬직한 어깨와 넓은 가슴이여
아무리 괴로운 아침이라도 그 어떤 참담한 밤이라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
 
인생은 언젠가 끝나지만
바다만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슬퍼졌을 때에는 바다를 보러 간다.
홀로된 밤에도 바다를 보러 간다.

 
느닷없이 저마다 인생이 끝나겠으나, 바다는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가도 영원히 출렁거릴 바다여서 슬픈 걸까. 우리가 죽어 바다로 돌아가니 아픈 걸까. 아프다고 아파만 하기에는 시간이 많지 않다.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2017년은 날이 밝았고, 나는 좀 더 새로운 각오를 느닷없이 다지고 싶다.
 
‘자발적 청빈’이란 말을 올해는 자주 되뇌고 싶다.
자발적 청빈을 사는 수도원의 수도사들처럼 나는 현실과 거꾸로 가는 삶을 들여다보겠다. 더 많은 돈을 벌 자신도 없지만, 더 많은 돈보다 자발적 가난을 추구하겠다. 신을 등 돌리고 살기보다 나는 신과의 만남을 꿈꾸며 이어나가고 싶다. 의심으로 가득 찬 이기적인 삶이 아니라 신뢰와 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열어가는 사람이고 싶다. 그리고 느닷없는 좋은 인연들이 생기면 좋겠다. 평생 오래가는 지속적인 인연들.
그러고 보니 덴마크에서 나는 어쨌든 함께 온 피디님과 촬영감독님도 느닷없는 인연이 되어 인상 깊은 나날을 함께 보냈었다. 여럿이다가 보름 지나 홀로되고 말았다는 것. 언젠가는 이렇게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어딜 가든 느닷없이 덴마크를 함께 보낸 그들이 어떻게 잘 지내나 궁금해진다. 이런 고마운 인연도 다시 이어져 만나기 힘들더라. 우리는 어떤 인연이든 느닷없이 마지막이 될 거라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지 모른다. 친절과 미소로 마음을 다해 함께 있는 시간을 잘 보내자고 다짐한다. 고맙다는 인사도 꼭 잊지 말고 전하면서.
 
작가소개
시인. 사진가. 미대 디자인과 수학, 국문학과와 디자인대학원에서 파인아트를 전공했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작가로 다양한 매니아층이 있다.
 
시집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 『세기말 블루스』 『해질녘에 아픈 사람』 『침대를 타고 달렸어』를 냈다.
영상에세이 『나의 아름다운 창』 『신현림의 너무 매혹적인 현대미술』 『신현림의 미술에서 읽은 시』
힐링에세이 『만나라, 사랑할 시간이 없다』 『서른, 나에게로 돌아간다』 『천개의 바람이 되어』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 
세계시 모음집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1, 2권 『사랑은 시처럼 온다』 등
동시집으로 초등 교과서에 동시가 실린 『초코파이 자전거』 『옛 그림과 뛰노는 동시 놀이터』 『세계 명화와 뛰노는 동시 놀이터』와
역서로는 『예술가들에게 슬쩍한 크리에이티브 킷 59』 『Love That Dog』 등이 있다.
 
사진가로 사진가로는 낯설고, 기이하고 미스터리한 삶의 관점을 보여준 첫 전시 "아,我! 인생찬란 유구무언"전 이래 사과 이미지를 통해 '존재의 성찰'을 펼쳐, 세 번째 사진전 <사과밭 사진관>으로 2012년 울산국제사진페스티벌 한국 대표 작가 4명중에 선정된 바 있다. 4번째 사진전 <사과여행>사진집은 일본 교토 게이분샤 서점과 갤러리에 채택되어 선보이고 있다
 
최근 <사과, 날다- 사과여행 #2>전을 열고, 사진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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