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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의 노래

고은이 꿈꾸는 2017
새로워서 새해고 거짓이 없어 새해다. 어제의 뜨거운 촛불은 이제 차분한 궁리의 책상을 밝혀야 한다. 언제나 역사의 복판 자리를 지켜온 시인은 지난해 온 나라를 뜨겁게 달군 촛불을 지켜보며 “느낀 바가 있었다”고 했다. “우리가 늘 역사의 어떤 주도체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주도체가 된다는 것, 바야흐로 시민의 시대가 오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해가 아직 나오지 않은 밤에 해돋이를 예상하고 밤새 시를 썼다. “가장 허물없는 매체”라며 중앙일보에 보내왔다. “누가 준 시대가 아닌, 내가 이룬 시대를 사는 사명을 깨닫는 새해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담은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새해에는 더 이상 객체가 아니라 주체로, 우리 모두 자기 운명의 창조자로 살자는 다짐이다.

2017년을 맞으면서
- 고은 -

무거운 미래가 온다


나의 캄캄한 태초에 한 낱말이 태어난다
아직 눈뜨지 못한
낱말의 아기 울음소리를 듣는다
저 건너의 누가
‘창조’라고 번역한다
바로
그 낱말의 처음을 쓴다
참을 수 없는
이 낱말의 시작을 추운 허공에 쓴다
또한
먼 길 마다하지 않을 내 시린 발등에 쓴다


창조


나의 먼동 튼 태초에 한 낱말이 태어난다
가장 비천해진 나라로부터
가장 고귀한 나라가 태어난다
언젠가 쏘아 올린 별빛들 쏟아져 돌아오는 하룻밤으로
가장 찬란한 아침의 마음이 태어난다


창조


낡은 유령과 그 유령의 골짝에서
함부로 써먹은 낱말을 파묻은 신새벽녘
나의 태초에 한 낱말이
전혀 미지의 뜻을 품고 태어난다
이제 나의 제단은 광장
촛불의 헌신
촛불의 실천과 더불어
눈물의 낱말로 태어난다


몇 번이나 창조


나의 태초에 태어난다
시작한다
아래가 끝내 위인 것
본연으로
위 없이 다 위인 것
아래 없이 다 아래인 것
한번의 쇄신으로


나아가
한번의 개벽으로
반드시 펴놓을 푸른 하늘의 하강
그 아래
푸른 바다의 상승
전혀 모르는 새로운 낱말이 태어난다


이로부터 벅찬 나의 시대를 연다
절벽을 넘고
쓰러지다
쓰러지다 또 일어나
황야의 지평선을 간다
밤의 밀물로
새벽의 텅 빈 썰물로
누구의 시대가 아닌
나의 시대를 연다
천년의 영감과
만년의 가치가 만나는 시대
아직 내 몸의 어느 상흔에 붙은
저 낡은 잔재의 단말마를 불지르는 시대를 연다


나의 민주주의
누구의 민주주의 흉내가 아닌
나의 시민공화의 민주주의를 연다
나의 행복이
행여나 누구의 타고난 불행이 아닌
나의 아픔이
누구의 기쁨이 아닌
내가 누구의 적이 아닌
내가 누구의 친구인 세상의 저녁을 연다
어찌 희로애락이 없을쏜가
슬픔과 괴로움을 나누는 밤을 연다


그 누구에게도
저 혼자가 하찮은 혼자가 아닌
저 혼자가
깊이 깊이 저 혼자의 완성인 시대를 연다
커다란 함성 커다란 환호와 함께
다음날
고요한 아침의 나라 해돋이 땅을 나 스스로 연다


창조한다

고로 존재한다
주어 없이도 술어가 명예롭게 온다
때여
때여
나의 여기여
내가 나에게 거룩한 제사 지내는
뼈저린 예의의 오전을 연다
순종의 무리가 아닌
소외의 하나하나가 아닌
모든 내가
모든 나의 체제를 연다
그리하여
왼팔과
오른팔이 서로 엉겨 춤추는 체제를 연다


도둑을 그대로 두고
깡패를 그대로 두고
여기까지 온 나의 현실을 던진다
가난이 뭉쳐
실의가 뭉쳐
저 미친 탐욕의 수렁을 메워버릴
내 사무치는 평면의 체제를 연다
여기저기서 상상은 누구만의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광장
나의 역사 속에서 오랜 시작을 연다
다시 한번
나의 태초에 하나의 낱말이 태어난다


창조


앞산 맹수의 포효로
뒷산 이른 아침 새소리로
나의 조상 같은 미래가 온다
내가 만든다
내가 만든다
나와 내 후대의 집을 연다
막 잡아 올린 겨울 갈치의 휘어지는 절망을 넘어
막 뽑은 배추의 푸른 단념을 넘어
또 다른 나의 현재가 될 미래를 앞장서 맞이한다


오라 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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