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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탐라가 제주인 줄 알지, 타임라인인 줄 미처 모르는 아재들

인터넷의 아재들이 한 살 더 먹는 연말이 왔다. 아재 개그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아재’는 사전적 의미로는 아저씨의 낮춤말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건 사전적 의미일 뿐 인터넷에서는 쓰임이 다르다. 아재는 중년 남성이다. 단순히 나이 든 중년 남성이 아니라 약간의 촌스러운 유머 코드가 있어야 한다. 웃기려고 하지만 별로 웃기지 않는, 그러니까 애잔하게 웃기는 중년 남성이다.

아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편의상 1996년으로 돌아가 보는 것이 좋다. 그해에 두 가지 큰 변화가 있었는데 하나는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바뀌었고, 다른 하나는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당시의 젊은 그룹은 두 개로 나뉘었다. 하나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막 대중화되기 시작한 인터넷을 배우는 청년 그룹이다. 다른 하나는 ‘신상품’ 초등학교를 다니며 인터넷을 어려서부터 적응한 아이들 그룹이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나 국민학교 출신의 청년들은 40~50대 아재가 되었고,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은 지금 젊은이가 되었다. 이 두 그룹의 디지털 문화는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좀 다르다. 국민학교를 졸업한 아재들의 디지털 능력이 참고서로 영어를 배우듯 떠듬떠듬 말하는 영어라면, 초등학교를 다녔던 지금 젊은이들의 디지털 능력은 ‘모태 디지털’이다. 이들의 디지털은 ‘빠다’ 발음에 슬랭까지 섞어가며 쓰는 유창한 영어인 셈이다.

디지털을 잘 쓰는 젊은이들이 관찰한 바에 따르면 아재들은 인터넷에 글을 올릴 때 ‘노땅체’를 사용한다. 쉼표와 마침표, 느낌표 등 문장부호를 남발하고, 이야기를 질질 끌고, 결론은 주로 훈계 조로 끝낸다. 인터넷 뉴스 댓글 등에 집착한다. 삼행시로 만든 개그나 말장난 개그를 주로 구사한다. 삼행시는 건배사로 술자리에서 주로 학습한 문화다. “소화제. 소통하고 화합하는 것이 제일이다”고 하면 술잔을 부딪치며 “마취제. 마시고 취하는 것이 제일이다” 식으로 대꾸한다. 말장난 개그는 ‘부산 앞바다’의 반대는 ‘부산 엄마다’, 맥주가 죽기 전 남긴 말은 ‘유언비어’ 등의 수준이다. 포복절도할 정도는 아니지만 듣는 이가 너그럽게 피식 웃어 주는 개그다.

반대로 젊은 모태 디지털의 유머는 아재들이 이해하기 불가능하다. 그들만의 세계가 있다. 심지어는 남에게 웃기려고 유머를 내놓지도 않는다. 혼자 즐기는 유머다. 아재들은 놀란다. “세상에… 혼자 하는 유머라니. 그게 말이나 돼?” 그런데도 젊은 모태 디지털들은 혼자 충분히 즐긴다. 이들 입장에서 남을 억지로 웃기는 것은 ‘이미 레(도를 지나쳤다는 뜻)’다. 이 두 그룹의 유머가 이렇게 서로 다르다 보니 마치 두 개의 썰렁한 빙벽 사이에 거대한 크레바스가 있는 것 같다.

젊은이들이 놀리듯 재미있어하는 아재들이지만 따지자면 아재들은 이무기와 같다. 용이 되려다 못된 이무기처럼 아재들은 아저씨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중년이 심하게 늘어졌기 때문이다. 50대만 되면 은퇴하고 60대면 노년의 여유를 가졌던 아버지 세대에 비해 아재들은 아직도 일한다. 몸은 나이 들었지만 하는 일은 젊은 사람과 차이가 별로 없다. 80이 넘는 부모님을 모셔야 하고 30이 다 되도록 사회적 자립을 못하는 자식들이 한둘쯤 다 있다.

아재들은 독수리 타법으로 겨우 타자를 배워 DOS를 뗐다. 그러나 바로 윈도를 배워야 했고, 또다시 스마트폰에 음악 넣는 방법을 배워야 된다. 회사에선 관리자 역할 하기도 바쁜데 이제는 ‘헌재 변론기일, 인용, 기각’ 같은 용어도 상식으로 알아야 하고 평생 맞을 일 없을 ‘태반주사, 백옥주사’ 같은 말도 공부해야 한다. 날마다 쏟아지는 국민 학습 진도를 따라가야 대화에 끼어들 수 있다. 그리 공부해도 탐라가 제주인 줄 알지, 타임라인인 줄은 미처 알기 힘들다.

하지만 아재들은 열심이다. 아재파탈(아재+팜므파탈·치명적 매력을 가진 아저씨)까지는 아니더라도 젊은이들과 소통하려고 애쓴다. 썰렁한 유머지만 먼저 던지며 다가서는 진지함. 그 진심이 사회적으로 통한 것이 아재 개그 열풍이다. 나이는 한 살 더 먹지만 아재들은 지레 늙지는 말아야 한다. 지레 늙으면 아재가 꼰대가 된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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