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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러 사이버 전쟁 돌입하나…오바마, 러시아 해킹에 초강경 보복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9일(현지시간)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하기 위해 벌인 해킹에 대해 초강경 보복 조치를 가동했다. 러시아 외교관들을 무더기로 추방하고 미국 내 러시아 정부 시설을 폐쇄하며 러시아의 최고 정보기관을 미국의 위협으로 지목해 냉전 시기(1947~91년) 미ㆍ소 대결을 방불케 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러시아도 맞대응을 알리며 임기를 3주 남긴 오바마 정부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사이버 신냉전으로 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 역시 내년 1월 20일 취임하자마자 오바마의 러시아 제재 유산을 그대로 안고 갈지, 아니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이를 백지화할지 선택해야 하는 시험대에 서게 됐다.

미국 정부가 이날 내린 보복 조치는 전방위적이다. 국무부는 워싱턴DC의 주미 러시아대사관과 샌프란시스코의 러시아총영사관에 근무하는 러시아 외교관 35명이 외교관·관료를 가장한 스파이라며 ‘기피 인물’로 지정했다. 72시간 내 가족과 함께 미국을 떠나라는 추방령이다. 또 뉴욕과 메릴랜드에 있는 러시아 정부 소유의 시설 2곳을 폐쇄해 러시아 관계자들의 접근을 막았다. 재무부는 해킹을 주도한 혐의로 러시아군 총정보국(GRU)과 러시아연방보안국(FSB) 2곳을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해킹을 지원한 혐의로 특별기술국(STG) 등 3개 기관도 제재 대상에 포함시켰다. GRU 책임자 이고르 발렌티노비치 국장 등 6명도 재제 명단에 올렸다. 이들 기관ㆍ개인들은 미국 내 자산이 동결되고 미 금융 시스템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해킹은 러시아 고위층이 지시했다”고 밝혀 사실상 푸틴 대통령을 총책임자로 지목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조치가 대응의 전부가 아니다”며 “일부는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고도 밝혔다. 물밑에서 진행되는 사이버 보복 공격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된다.

러시아는 즉각 반발했다. CNN은 러시아 정부가 미국 등 서방 외교관 자녀들이 다니는 모스크바의 국제학교에 폐교 명령을 내렸고, 모스크바 인근의 미 대사관 별장도 곧 폐쇄키로 했다고 전했다. 러시아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대통령실 공보비서는 “미국의 주장과 조치는 사실무근이자 국제법상 불법”이라며 “상호 원칙에 따라 적절한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맞보복을 예고했다. 영국 런던 주재 러시아대사관은 트위터에 오리 사진을 올려 오바마 대통령을 레임덕(임기 말 무기력 지도자)으로 조롱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간 대외 정책에서 군사적 개입은 물론 외교적 강경 대응을 꺼리면서 고민만 많고 행동은 없는 햄릿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그런 오바마 대통령이 초강경 보복에 나선 이유는 러시아의 해킹이 미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주권의 상징인 대선을 건드린 심각한 적대 행위라고 간주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의 일부 보좌관들은 대선 전에 러시아를 제재했어야 하며 이를 늦춘 것은 오바마 대통령의 실수라고 여길 정도로 강경론이 팽배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제재 단행으로 트럼프 당선인의 집권 구상은 출발부터 암초를 만날 전망이다. NYT는 “이번 제재는 트럼프 당선인을 꼼짝 못하게 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이날 보복 조치에 대해 “(미국은) 더 크고 좋은 일로 넘어가야 할 때”라고만 밝혔다. 대러 제재와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다. 단 “나라와 국민의 이익 관점에서 다음주 정보 수장들을 만나 (보복 조치 등에 대한) 진전된 내용을 들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간 푸틴 대통령과의 브로맨스(남자끼리의 우정)를 과시하며 집권 후 미ㆍ러 관계가 급속 개선될 것임을 예고했다. 친러 성향의 렉스 틸러슨 엑손모빌 최고경영자(CEO)를 국무장관으로 지명한 게 그 예다. 하지만 집권 후 대러 관계 정상화를 위해 행정명령을 내려 보복 조치를 백지화하려면 반(反)러시아 여론은 물론 집권 여당 내 반발까지 감수해야 한다.

공화당의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대러 제재를 놓고 “벌써 했어야 할 일”이라고 밝혔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도 “너무 늦은 감이 있다”고 필요성을 인정했다. 공화당의 터줏대감인 존 매케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새 의회에서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작업을 주도하겠다”며 제재 확대를 주장했다. 오바마 정부는 특히 러시아 해킹을 입증할 증거도 향후 공개한다고 NYT는 전했다. 이는 해킹 파악에 동원됐던 미국 정보 자산을 노출시키는 것이나 다음없다. 이같은 위험을 감수하면서 오바마 정부가 물증 공개에 나서는 것은 트럼프 정부가 보복 조치를 폐기할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다.

그럼에도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의 보복 조치를 안고 가기엔 내ㆍ외치의 부담이 만만치 않다. 러시아를 친구로 만들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들을 긴장시켜 각국이 방위비 예산을 스스로 올리도록 우회 압박하고, 다른 한편에선 중국을 고립시켜 통상 전쟁을 치르려던 구상이 출발부터 헝클어진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을 만드는데 러시아가 불법적으로 도왔다고 스스로 인정하며 국정을 끌고 나가야 해 정권의 정통성이 우스워진다. 트럼프 당선인이 당초 러시아가 해킹했다는 주장을 놓고 “웃기는 얘기”라고 일축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워싱턴=채병건 특파원 mfem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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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