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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소녀상, 서울은 되고 부산 동구청은 철거·압수 왜

한국과 일본 정부가 일본군위안부 해법에 합의한 지 1주년이던 지난 28일 낮 12시40분쯤. 부산시 동구 초량동 주한 일본영사관 앞에 ‘평화의 소녀상’이 기습 설치됐다. 소녀상은 일본영사관을 향해 두 눈을 부릅뜨고 섰다.
부산 동구청 관계자들이 지난 28일 시민단체가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한 ‘평화의 소녀상’을 불법 점거 이유로 철거해 트럭으로 옮기고 있다. [사진 송봉근 기자]

부산 동구청 관계자들이 지난 28일 시민단체가 일본영사관 앞에 설치한 ‘평화의 소녀상’을 불법 점거 이유로 철거해 트럭으로 옮기고 있다. [사진 송봉근 기자]

하지만 오후 4시쯤 부산 동구청 직원 30여 명이 소녀상을 에워싼 시민 40여 명을 한 명씩 떼어내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소녀상을 지켜내자” “‘일본경찰’ 물러가라”며 격렬히 저항했다. 결국 4시간 만에 소녀상은 강제로 철거됐다. 동구청 직원들은 소녀상을 차량에 싣고 가버렸다.

비슷한 시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 앞에서 1263차 수요집회가 열렸다. 소녀상은 일본대사관을 응시하고 있었다. 위안부 할머니와 시민단체는 인근 외교부 청사 앞에 몰려가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는 일본에 당당히 맞서지 않는 외교부에 항의했다. 이들은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과 똑같은 모양의 대형 풍선(높이 5m)으로 만든 소녀상을 들고 갔다.

서울의 소녀상은 당당히 서 있는데 부산의 소녀상은 왜 수난을 당했을까. 소녀상을 바라보는 자치단체의 태도가 결정적 차이를 만들었다. 서울시와 종로구는 대사관 앞 소녀상을 철거하지 않고 보호하고 있다. 특히 서울시의회는 지난 27일 소녀상 설치 지원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조례를 발의했다.

반면 부산 동구청은 소녀상이 도로법 제72조(도로에 관한 금지행위) 시행령상 도로점용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공작물이 아니라며 설치를 막고 있다.

부산 동구는 부산에서도 보수색이 유독 강한 지역이다. 이재강 더불어민주당 서구·동구 지역위원장은 “부산 15개 구 가운데 동구는 고령화율이 가장 높고 새누리당 지지율도 60%를 넘는다”고 말했다. 동구·서구 국회의원과 구의원은 모두 새누리당 소속이다. 박삼석(66) 부산동구청장은 1991년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을 때부터 새누리당 소속이다.

김미진 우리겨레하나되기 부산운동본부 운영위원장은 “박 청장을 지난 8월 만났을 때 일본영사관 앞만 아니면 다른 곳은 고민해 보자고 했다. 하지만 이달 초에는 어느 곳도 안 된다고 했다”며 “지난달 28일 박 청장이 일본영사관 총영사를 만나고 심적 압박을 느낀 것 같다”고 말했다. 한은주 우리겨레하나되기 부산운동본부 금정지부장은 “동구의 인도 등에 수십 개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는데 소녀상은 왜 안 되느냐고 물어도 구청은 묵묵부답”이라며 “기준도 모호한 도로법을 들이대는 것은 정부와 일본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겠느냐”고 지적했다.

‘미래세대가 세우는 평화의 소녀상 추진위(미소추)’는 29일 오후 2시 동구청을 항의 방문하고 소녀상 반환을 요구했지만 동구는 이마저 거절했다. 노상적치물을 주인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절도죄에 해당한다. 미소추는 동구를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미소추는 31일 제9차 촛불집회 이후 일본영사관으로 거리행진을 한 뒤 항의집회와 함께 소녀상 제막식을 열 예정이다. 소녀상 없는 제막식이 예상된다.

소녀상은 2011년 12월 14일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이후 전국에 55개나 세워졌다. 일본·미국·호주 등 해외에도 15개가 설치됐다. 부산처럼 행정기관이 소녀상 설치를 막은 전례가 없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지난해 12월 한·일 합의 이후 위안부 이슈가 정치적 문제로 변질된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대표는 “한·일 합의 이전에는 보수단체라 할 수 있는 새마을운동·재향군인회가 소녀상을 설치할 정도로 위안부 문제에는 보수와 진보 구분이 따로 없었다”며 “박근혜 정부가 강대국 논리에 굴복하자 보수세력도 저항하지 않고 무력하게 받아들인 결과”라고 분석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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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