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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편집자 잡아야 대선 승자 된다

김환영 논설위원

김환영
논설위원

최근 『플라타너스의 오후』라는 책을 받았다. 입장중학교 제6회 동기회 회원 94명 중 26명의 글을 모은 책이다. 입장중학교는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에 있는 학교로 1955년에 설립됐다. 현재 217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고 총 1만93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54년 전 입장중학교를 졸업한 『플라타너스의 오후』의 저자들은 인생의 ‘오후’를 살고 있다. 아직 인생의 ‘저녁’도 ‘밤’도 아니다. 이 책은 운동장 가장자리에 있던 손목 굵기 플라타너스가 이제 두 사람이 양팔로 안아야 하는 큰 나무가 되는 동안 벌어진 인생의 사연과 성취와 우연과 필연과 아쉬움과 믿음과 아직 많이 남은 꿈을 담았다.

입장중학교 제6회 동기회 멤버들은 고희를 기념해 이 책을 냈다. 반대도 많았다. “농사일과 직장생활로 글 쓰는 일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회원들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멋지게 해냈다. 왕년의 글솜씨를 복원해 다시 뽐냈고 신앙 체험도 고백했다. 원고가 원래 워낙 좋았겠지만 이 책의 편집을 맡은 지선영씨의 도움도 컸으리라.

지선영씨를 비롯한 편집자·에디터는 ‘남의 글을 더 좋게 고치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양지를 위해 음지에서 일하는 국정원 요원 같은 존재다. 책 표지에 저자·역자의 이름이 나오지만 편집자의 이름은 없다. 그들의 역할을 고려하면 편집자 이름도 넣는 게 맞는다.

의외로 편집자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글쓴이의 글이 그대로 인쇄돼 독자 손에 놓이게 되는 게 아니다. 불경도 성경도 알려지지 않은 편집자들의 노고를 거쳐 탄생했다. 물론 편집자가 자신의 무릎을 치게 만드는 저자도 있다. 편집이 거의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셰프의 실력에 따라 같은 식재료에서 전혀 다른 요리가 나온다. 토씨 하나만 바꿔도 달라지는 게 글이다. 편집자는 국어의 4대 어문 규정에 따라 어법·문법에 맞게 글을 고친다. 글 내용의 순서도 바꾸고 사실(事實·fact) 확인도 한다. 불필요하게 반복되는 내용은 과감하게 삭제한다.
[일러스트=김회룡]

[일러스트=김회룡]

사람은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저자는 편집자를 잘 만나야 한다. 평범한 편집자도 C급의 글을 B급으로, B급을 A급으로 만들 수 있다. C급을 A급으로 만들 수 있는 ‘편집의 마법사’도 있다. 좋은 책이 나오려면 물론 저자-편집자 사이의 대화와 소통이 필요하지만, 저자는 편집자에게 ‘편집 독재권’을 인정해 주는 게 좋다. 일부 저자는 한 자도 못 고치게 한다. 그들은 편집(編輯)에 편집(偏執)으로 대항한다.

신문사 기자들, 특히 ‘데스크’라 불리는 정치부·사회부·국제부 등의 부장들도 ‘편집’을 한다. 일선 기자들의 글을 공정성·신뢰성·가독성 등을 기준으로 고친다. 또 신문사에는 편집국·편집부·편집국장·편집인이 있다. 현장의 뉴스가 지면 뉴스, 디지털 뉴스가 되려면 편집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독자 사이에 편집자가 있듯 정치인-유권자 사이에도 기자로 불리는 편집자들이 있는 것이다. 출판 편집자가 C·B급의 글을 A급으로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것처럼 기자도 C·B급 정치인을 A급으로 치장할 수 있다. 예컨대 인터뷰 기사를 통해서다. 정치인이 하지도 않은 말을 기자가 인터뷰 기사에 알아서 끼워 넣는다는 말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대국민(對國民) 사기요 범죄다. 하지만 지성적으로 좀 신통치 않은 정치인을 그가 실제로 한 말만 가지고도 상당히 지적인 인물로 만들 수가 있다. 출판 편집의 수준을 높이는 것은 편집이 잘못된 책을 사지 않는 독자이고, 뉴스 편집의 질을 높이는 것은 국민·유권자의 질타와 모니터링이다.

제목에서 사용한 “편집자 잡아야 대선 승자 된다”는 일종의 중의법이다. 신문사 편집국을 잡을 필요는 없다. 대권 주자들이 잡아야 할 대상에는 출판사 편집자들이 포함돼야 한다. 대권 주자들은 출판 정책을 내놔야 한다. 모든 산업 분야가 다 어렵지만 출판인들의 말을 들어 보면 출판은 정말 어렵다. 독서 없는 미래는 어둡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힘들어질 때 가장 먼저 줄이는 항목들 중에 책이 들어간다. 대선 공약으로 이런 출판 정책은 어떨까. 입장중학교 제6회 동기회의 『플라타너스의 오후』 같은 출간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도록 차기 정부가 정책적 후원을 하면 어떨까. 모든 국민의 저자화(著者化) 속에 경제 심화의 길이 있을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기억을 편집하고 자신의 삶을 편집한다는 의미에서 편집자다. 국민·유권자라는 이름의 편집자를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우리 삶 속 편집의 의미에 대해 물었더니 이런 댓글이 달렸다. 바로잡다. 자기성찰. 정답 없는 백지에 과감히 가감하는 행위. 사람이 일생의 일들을 모아 엮어 한 권의 책을 만들 수 있게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 해석. 생선에서 뼈를 발라내고 살점을 오롯이 내놓는 것. 어떠한 환경에서도 진리를 추구하는 행위. 결정·선택·덜어냄 그리고 항상 아쉬움. 더 멋진 삶을 위해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삶을 재배열(rearrange)하는 자세 혹은 일.

고수(高手) 편집자는 글에 불필요하게 개입하지 않는다. 그게 ‘편집 마인드’의 핵심이다. ‘편집 마인드’로 내 삶과 세상을 더 좋게 만들어 보자.

김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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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