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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카지노왕을 카지노로 낚아챈 아베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하와이 진주만의 애리조나 기념관은 특이하다. 마치 물에 떠 있는 듯하다. 1941년 12월 7일 일본군의 폭격으로 전함 애리조나호가 침몰한 곳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애리조나호는 승조원 1177명과 수장됐다. 미국은 애리조나호와 희생자를 인양하지 않았다. 대신 그 위에 기념관을 세웠다. 일본을 용서하지만 그 아픔을 잊지 않겠다는 미국인들의 의지다.

격변기 온갖 수 동원되는 외교전
한국 향한 싸늘한 시선 직시해야


27일 그곳에 아베 신조 일 총리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나란히 서 있었다. 아베는 오바마의 두 배가량 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1분 넘게 고개를 들지 않았다. 오바마가 등을 툭 친 다음에야 고개를 들 정도였다. 잘 짜인 각본이다.

그러나 아베가 진짜 역사의 반성을 위해 임기를 마치는 오바마에게 진주만 선물을 준비한 것일까. 시계를 한 달 반 전으로 돌려보자. 미·일 외교 소식통이 전하는 뒷이야기다.

도널드 트럼프와 아베의 회동 사흘 전인 지난달 14일. 일 정부 관계자는 백악관 인사로부터 격한 항의 전화를 받았다.

“아니, 무슨 생각으로 그런 약속(트럼프와 회동)을 했단 말입니까.”

“아·태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가는 길에…. 다른 의도는 없습니다.”

“워싱턴에 대통령은 2명 있지 않습니다. 1명입니다. 알겠죠?”

오바마의 백악관은 회동의 4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1시간을 넘기지 말 것. 식사를 함께하지 말 것, 워싱턴 이외의 곳에서 할 것, 배석자를 두지 말 것. 한마디로 ‘정상회담’ 흉내를 내지 말라는 경고였다. 아베는 시간을 30분 초과한 것을 빼고는 그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오바마의 화는 풀리지 않았다. 트럼프-아베 회동 사흘 뒤인 20일 페루 APEC에서 정상회담을 하자는 일본의 제안도 거절했다. 화들짝 놀란 아베가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카드가 바로 진주만 방문이다. 아베는 진주만 방문에 소극적이었다. 원치 않았던, 예상치 못했던 일정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왜 아베는 트럼프와의 조기 회동을 서둘렀을까.

베일 속에 가려진 90분간의 대화 내용에 그 답이 있다. 일본 측 관계자가 털어놓는 비화다.

“아베는 트럼프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흡사하다고 봤다. 그런 지도자는 1대 1로 빨리 만나야 한다는 게 아베의 생각이었다. 근데 실은 그것 말고 또 하나의 복선이 있었다. 바로 ‘카지노 비즈니스’다.”

당시 일 국회에는 ‘카지노 해금 법안’이 상정돼 있었다. 전면 금지돼 있는 카지노를 허용하는 내용. 사업권만 따면 그야말로 노다지다. 아베는 트럼프에게 “이 법안을 통과시켜 많은 미국 기업에 기회가 돌아가도록 할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완곡한 표현이었지만 사업가 트럼프가 이 뜻을 놓칠 리 만무했다. 자신의 사업체를 대놓고 진출시키진 않더라도 미국의 카지노·호텔 업체에 다리를 놓는 대가로 미국 내 일자리 창출, 투자 확대 약속을 얻어낼 수 있는 군침 도는 제안이었던 게다. 곧장 트럼프는 아베에게 “위대한 우정이 시작됐다”는 찬사를 보냈다. 그에 화답하듯 아베는 귀국하자마자 이 법안을 전격 강행 처리했다. 2년 넘게 질질 끌고, 반대 여론이 70%를 넘는 법안이었다.

카지노왕 트럼프를 카지노로 낚아챘으니 외교적으로는 아베가 한 수 위였다. 트럼프가 자신의 첫 정상회담 상대로 아베를 찜한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흐름이다.

밖의 세상이 이렇게 팽팽 돌아가는데, 국익을 위해 온갖 수가 동원되는데, 우리는 대통령의 필러인지 실 리프팅인지 생전 듣도 보도 못했던 미용시술 뉴스를 들으며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우린 외신들이 우리의 촛불 혁명에 감탄했다고 생각하지만 싸늘한 시선의 외국인이 더 많다는 걸 알아야 한다.

최순실 게이트를 병신년(丙申年)의 ‘병신’에 빗대곤 했다. 그런데 다가오는 2017년 새해는 정유년(丁酉年)이란다. 자꾸만 정유라가 떠올라 어감이 좋진 않다. 하지만 420년 전 일본의 재침(정유재란)으로 빈사 상태에 빠졌던 나라를 구한 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 또한 정유년에 있었다. 정유년에 그런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 우리의 어깨가 무겁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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