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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개헌론, 탄핵 정국의 무임승차

장 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장 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촛불 민심이 환하게 밝혀 놓은 한국 민주주의에 퇴행과 역류의 어두운 그림자가 다시 어른거리고 있다.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해왔지만 일부 정치계급은 이를 대통령제 민주주의에 대한 탄핵으로 슬그머니 확대하려 노력 중이다. 시민들이 주도한 탄핵 정국을 지렛대 삼아 여야 정치권 곳곳에서 일부 정치계급의 숙원인 내각제(분권형 대통령제 포함) 개헌론이 확산되고 있다. 국회와 국회의원들이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 내각제 개헌은 본질적으로 어설프게 포장된, 정치계급들의 기득권 지키기에 지나지 않는다. 국회의원의 수많은 기득권이 전혀 개혁되지 않은 채 시도되는 내각제 개헌은 지금 국면에서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87년 체제도 정당비례 투표와
국회선진화법, 인사청문회로 진화
권력 구조 변경에만 몰두하는
몰역사·퇴행적인 내각제 개헌론
이제 한계 드러난 대의 민주제와
시민정치의 공존 모색할 때다


내각제 개헌론의 실패가 예정돼 있는 이유는 세 가지다. ①개헌론자들이 내세우는 이른바 1987년 체제 종식론은 그동안 한국 민주주의의 제도적 진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②내각제(또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권력 분산에 더 유리하다는 주장은 단순한 이분법적 오류에 지나지 않는다. ③내각제 개헌에 적극적인 정치계급들은 요즘 우리 정치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사활적 경제·사회 이슈들로부터 비켜난 채 그저 기득 권력 유지에만 몰두하는 갈라파고스 정치인이다.
첫째, 이른바 87년 체제가 수명을 다했으니 이제 정부 형태를 포함한 주요 정치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개헌론자들의 주장은 사실과는 동떨어진 허구다. 87년 체제는 지난 30년간 이런저런 제도 개혁들을 수용하면서 꾸준히 진화해왔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수평적으로, 수직적으로 권력이 집중되도록 설계된 제도가 87년 체제의 핵심이라면, 그동안 우리는 수평적·수직적 권력 집중을 완화하는 제도 개혁을 부분적으로, 꾸준하게 도입해왔다. 따라서 87년에 성립된 정치질서는 실질적으로는 한국 사회에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2004년 총선부터 도입된 1인2표제 국회의원 선거제도다. 지역구와 정당비례대표를 별도로 투표하는 혼합형 선거제를 통해 우리는 유권자들의 다양한 선호가 표현되는 기회를 늘려왔고 이는 원내 정당 구성의 다양성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20대 국회 국민의당의 약진이 상징하듯이, 다당제 국회가 등장하면서 대통령의 행정부 권력에 대한 견제 가능성은 커졌다고도 할 수 있다. 더욱이 2012년 국회 선진화법이 도입되면서 과거 제왕적 대통령이 다수 여당에 대한 일방적 지배를 통해 국회의 견제 권력을 무력화하던 관행도 사실상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또한 국회의 인사청문회 제도는(때때로 오·남용됐다는 비판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대통령의 제왕적 인사 권력을 적잖게 제한하는 효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정치권이 그간 꾸준히 도입된 권력 분산의 제도들을 실효적으로 운영하지 못했다는 데 있는 것이지, 우리의 제도적 시계가 87년의 제왕적 대통령제에 멈춰 있는 것은 아니다.

둘째, 대통령제는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되는 제왕적 체제이니 권력 분산을 위해 내각제(혹은 분권형 대통령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개헌론은 마치 남성은 강하고, 여성은 연약하다는 어이없는 이분법적 오류에 버금갈 만한 반지성적 주장이다. 대통령제라는 범주 안에는 실로 다양한 유형의 정부 형태가 운영되고 있다. 프랑스처럼 강력한 권력 집중이 가능한 대통령제가 있는가 하면(여대야소 지원을 받는 경우), 남미의 여러 국가처럼 대통령-의회 사이의 끝없는 교착으로 대통령 권력이 지극히 취약한 대통령제 정부들도 실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내각제 정부 형태에서도 개별 국가의 제도와 관행, 정치문화에 따라 제왕적 총리가 얼마든지 등장할 수도 있다. 79년부터 10여 년간 영국의 신보수화를 이끌었던 마거릿 대처 총리는 제왕적 총리의 대표적 사례였다. 다시 말해 내각제가 권력 분산에 유리하다는 주장은 지적으로 정직하지 못한 이분법적 사고의 전형일 뿐이다.

셋째, 필자가 본 지면에서 여러 차례 강조했듯이, 지금 우리는 다중의 결절점을 통과하고 있다. 63년 이후 굳게 뿌리내렸던 박정희 발전국가 신화는 이제 역사 속에 봉인됐다. 87년 이후 우리가 실험해온 대의제 민주주의는 앙상한 한계를 드러낸 채 시민정치와의 공존을 모색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또한 우리는 인공지능, 로봇, 빅데이터가 주도하는 글로벌 신경제에 적응해야 하는 절박한 과제 앞에 서 있다. 이 같은 중대한 질문을 외면한 채 내각제 개헌론자들은 권력구조 변경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점에서 몰역사적이고 퇴행적이다. 달리 말해 개헌론자들은 시민들의 절박한 삶의 문제와 유리된 채 권력게임에 몰두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의도라는 섬에 고립돼 퇴화해 가는 갈라파고스 정치계급에 지나지 않는다.

장훈 중앙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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