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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타는 목마름으로』 냈다 안기부서 3박4일 조사받아”

돋보기를 든 정해렴 대표. 해지도록 사전을 들추며 보낸 반세기 편집 인생이다. [사진 한울]

돋보기를 든 정해렴 대표. 해지도록 사전을 들추며 보낸 반세기 편집 인생이다. [사진 한울]

“공판타자(활자판에 활자를 늘어놓고 한 글자씩 찾아 원지에 찍은 후 등사하는 기법)를 사용했는데, 활자가 없으면 같은 계열의 글자를 찍어놓고 철필로 써 맞췄다. 가령 ‘하’자가 없으면 ‘히’자를 쳐놓고 철필로 ‘ㅏ’의 점을 그은 것이다.”

『편집·교정 반세기』 펴낸 정해렴 대표
책 1000여 권 만든 53년차 출판인
“60년대 활자 없어 철필로 써 넣기도”

53년차 현역 출판인, 정해렴(77) 현대실학사 대표가 출판 입문 첫 해인 1964년 교학도서에서 중학교 작문 교과서를 만들며 경험한 일이다. 한국 출판계의 살아있는 역사로 통하는 그는 신구문화사·을유문화사 등을 거치며 1000여 권의 책을 펴낸 편집·교정 전문가다. 1980∼83년엔 창비 대표를 지냈고, 97년부터는 고전 번역서 전문 출판사인 현대실학사를 운영하고 있다. 최근 그는 자신의 출판 인생을 꼼꼼히 되짚어 기록한 회고록 『편집·교정 반세기』(한울)를 펴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
1980년대까지도 원고는 원고지에 쓰는 것이었다. 신문 연재 소설을 책으로 출간하는 과정은 이랬다. 작가가 200자 원고지에 손으로 써서 신문사로 보내면, 신문사에서 활자를 찾아(문선) 조판해 신문에 싣고, 작가는 신문 연재 분을 모아 한 권 분량씩 출판사에 넘긴다. 출판사에서는 신문을 보며 다시 문선·조판하고 초교·재교·삼교의 과정을 거쳐 지형(紙型)을 떠서 인쇄소로 넘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신문 스크랩이 혹 누락되면 책에서도 그 내용이 빠질 수밖에 없다. 1972년 신구문화사에서 『한용운 전집』을 펴낼 때 일이다. 조선일보에 연재됐던 소설 ‘흑풍’의 교정을 보다보니 한 회씩 빠진 부분이 여덟 곳이나 있어 이야기가 뚝뚝 끊겼다. 그는 사직도서관과 중앙대 도서관 등을 다니며 과거 신문철을 뒤졌고, 마침내 빠진 8회 분을 찾아 내용을 보충했다. 당시엔 복사기도 보편화돼 있지 않아 신문을 일일이 손으로 베껴 옮겼다. 그는 또 “신문의 깨알같은 글자를 보고 문선·조판하다 보면 한두 줄, 한두 단어씩 빠뜨릴 확률이 매우 높았다. 이를 교정에서 못 찾아내면, 교묘하게 빠진 이 문장은 영원히 작품에서 사라지게 된다”고 했다. 그가 평생 ‘철저한 원고 대조’를 강조하고 지킨 이유다.
 
#‘김일성’은 금기어?
1980년 창비에서 출간한 『독립운동사 연구』(박성수 지음)는 독립운동가 이름에 ‘김일성’을 포함시켰다가 절판되고 말았다. 당시 창비 대표였던 그에게 문공부 간행물 심의관이 “좀 보자”고 했다. 17쪽에 실린 “해방 직전에 3대 독립군사단체가 있었으니 그 하나가 광복군(김구)이었다. 다른 둘은 연안의 조선혁명군(김무정)과 간도 장백산의 조선인민혁명군(김일성)이었다”는 내용이 문제였다. 심의관은 이 구절을 고치거나 김일성에 대해 ‘현재 북한의 김 주석이 아니다’라는 각주를 달아 발행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책을 더 찍지 않는 것으로 수습했다”면서 “당시 소문으로는 반공 단체 혹은 경찰이 문공부에 항의해 생긴 일”이라고 기억했다.
 
#작두질당한 시집
82년 김지하 시집 『타는 목마름으로』를 출간한 뒤엔 3박4일 동안 남산 안기부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사무실을 나서 지프차를 타고 가다가 눈을 가리고 남산에 올라갔다. 새벽까지 이런저런 조사를 받고 진술서를 썼다. (…) 나에게 시집과 지형 포기 각서를 쓰라고 하기에 그냥 써주었다. 출판사 폐업계도 쓰라고 하기에 써주었다. 이날 오후 풀려나 회사에 도착하니 서울지방국세청에서 회사에 들이닥쳐 장부 일부를 가져가고 또 목동 내 집에서도 어음장과 장부를 가져갔다.”(199, 200쪽) 당시 제본하던 책과 지형은 작두질해 폐기했다. 이후 출간한 김지하 시인의 『남』 역시 판매금지를 당했다. 그는 “판매금지처분을 문서로 하지 않고 발행인을 불러 통고했다. 공문을 보내면 나중에 이를 근거로 삼아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으니 말로 처리하는 듯했다”고 돌아봤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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