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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경의 Shall We Drink] <48> 스페인 햇살 닮은 셰리주

태양의 해변이 시작되는 말라가의 말라게따 해변.

태양의 해변이 시작되는 말라가의 말라게따 해변.


‘태양의 해변’이란 뜻의 ‘코스타 델 솔(Costa del Sol)’이 시작되는 곳에 푸른 바다와 고풍스러운 구시가가 조화를 이루는 도시 말라가(Malaga)가 있다. ‘코스타 델 솔’은 말라가에서 시작해 네르하(Nerja), 미하스(Mijas), 프리힐리아나(Frigilidna) 그리고 지브롤터(Gibraltar)까지 푸른 지중해가 이어지는 해안을 이른다. 이 해안을 따라 그림 같은 마을과 리조트가 둥지를 틀고 있어 스페인 남부 여행의 꽃이라고도 불린다.  

말라가는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다. 지금도 도시 곳곳에는 피카소의 흔적이 남아 있다. 피카소가 비둘기와 함께 뛰놀던 메세드 광장(Plaza de la Merced) 끝자락엔 피카소의 생가가 있고, 광장 벤치엔 피카소 동상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피카소 미술관에선 그가 92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남긴 작품을 감상할 수도 있다. 피카소 팬이라면 피카소의 고향이란 이유 하나만으로도 말라가를 여행할 이유는 충분한 셈이다.

처음 말라가에 갔을 땐, 피카소의 발자취를 쫓기보다 그저 해변을 거닐고 싶었다. 도착하자마자 말라가의 대표 해변 말라게따(Malagueta)로 달려갔다. 야자수 아래 시에스타(Siesta)를 즐기는 사람, 해변의 상징인 커다란 말라게따 글씨에 기대 책을 읽는 노부부의 어깨 위로 햇빛이 찬란하게 쏟아졌다. 세상 편한 자세로 해변은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아니었지만, 도심에서 가까운 곳에 넉넉한 해변이 있다는 게 부러웠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이따금 말라게따 해변을 떠올리곤 했다. 
 
흰 가운을 입은 노신사가 잔술을 파는 `안티구아 까사 드 구아르디아‘.

흰 가운을 입은 노신사가 잔술을 파는 `안티구아 까사 드 구아르디아‘.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의 SNS에서 한 장의 사진을 보았다. 약사처럼 흰 가운을 입은 노신사가 오크통에서 따른 짙은 갈색의 잔술을 파는 사진이었다. 사진 속 장소는 말라가였다. 하루키의 『위스키 성지 여행』 의 한 구절을 본따 ‘만약 우리의 언어가 한 잔의 술이라면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 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단순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라는 내레이션이 배경으로 깔리면 잘 어울릴 풍경이랄까. 저 잔을 쭉 들이키면 일상에 지친 영혼이 소독될 것도 같았다. 혹시 다시 말라가에 가면 꼭 저기서 잔술을 마셔보리라 다짐했었다.
 
`안티구아 까사 드 구아르디아‘ 맞은 편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시장도 있다.

`안티구아 까사 드 구아르디아‘ 맞은 편엔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시장도 있다.


생각보다 기회는 빨리 찾아왔다. 이번엔 말라가에 가기도 전에 사진 속 바의 이름과 위치를 면밀히 확인했다. 사진 속 바는 '안티구아 까사 드 구아르디아(Antigua Casa de Guardia)' 로 구시가에서 가까웠다. 한데, 이번엔 여행이 아니라 출장이었다. 피카소 미술관, 피카소 생가, 센트랄 라타 라사나스 시장 등 빽빽한 일정을 따라 움직이다 보니 통 짬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 날 오전에야 자유 시간이 생겼다. 바에 너무 일찍 가면 사람이 아무도 없지 않을까 염려하며 말라가 대성당에서부터 산책을 시작했다. 구시가의 기준점이 되는 말라가 대성당은 양쪽에 균형을 잡고 있어야 할 첨탑이 하나밖에 없어 ‘외팔이 여인’이라 불린다. 1528년에 짓기 시작했지만, 재정 부족으로 탑을 완성하지 못했단다.
 
`안티구아 까사 드 구아르디아‘에서 마신 잔술.

`안티구아 까사 드 구아르디아‘에서 마신 잔술.


'안티구아 까사 드 구아르디아‘ 앞에 도착해서도 텅 빈 바에서 혼자 쓸쓸히 잔술을 마시면 어쩌나, 하며 들어섰다. 참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이미 안에는 단골로 보이는 할아버지 몇 명이 안부 인사를 나누며 서서 잔술과 올리브를 맛보고 있었다. 점심 식사 전 가볍게 식전주로 입맛을 돋우는 분위기였다. 스페인 남부 지역의 대표적인 셰리주라는 ’페드로 히멘(Pedro Ximén)‘를 주문했다. 한 모금에 입 안 가득 햇살처럼 화사한 단맛이 번졌다. 이제 한 잔 마셨는데 곧 말라가를 떠나야 한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다시 말라가에 오면 이곳에서 잔술을 마시며 혼자만의 신고식을 치르리라 생각하며 밖으로 나섰다. 여전히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또 하나의 유서 깊은 바, 엘 핌피 풍경.

엘 핌피에서 직접 만드는 셰리주, ‘말라가 버진’.

'안티구아 까사 드 구아르디아‘처럼 의자도 없는 선술집보다 레스토랑을 선호한다면 ‘엘 핌피(El Pimpi)’를 찾아도 좋다. ‘엘 핌피‘도 '안티구아 까사 드 구아르디아‘ 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으로 ’말라가 버진(Malaga Virgin)‘이란 셰리주를 직접 만든다. 중정이 아름다운 18세기 저택을 개조해 와인 저장고가 실내도 꽃이 흐드러진 야외 정원도 멋스럽다. 하몽과 타파스, 해산물 요리로 푸짐한 식사를 즐긴 후에 ‘말라가 버진’으로 달콤한 마침표를 찍어보자. 입 안 가득 번지는 달콤함을 한껏 느낄 수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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