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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새’ 욕망을 파는 곳에 ‘옛’ 가치를 채우다

| 시몬느의 핸드백 브랜드 ‘0914’ 플래그십 스토어


80년 된 고석, 가방 화석 등으로 채워
“오래될수록 가치 있다는 철학 담아”
옥상 정원·지하 마당…자연과 조화


와이너리·폐가 등 층마다 다른 콘셉트
가죽 공방에서 맞춤 백 주문도 가능
공간 곳곳에 미술작품 400점 전시도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 앞에 위치한 ‘0914’ 플래그십 스토어. 5개의 벽돌집이 층층이 쌓인 듯한 독특한 외벽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하나의 공간이지만 실제로 내부에선 전혀 다른 공간들이 조화를 이룬 ‘집 속의 집’이 콘셉트다.

강남구 신사동 도산공원 앞에 위치한 ‘0914’ 플래그십 스토어. 5개의 벽돌집이 층층이 쌓인 듯한 독특한 외벽 디자인이 눈길을 끈다. 하나의 공간이지만 실제로 내부에선 전혀 다른 공간들이 조화를 이룬 ‘집 속의 집’이 콘셉트다.




서울 신사동 도산공원 앞 명품거리에 발걸음을 붙잡는 독특한 디자인의 건물이 있다. 네모반듯한 하얀색 외벽 한 가운데를 움푹 파내고 그 안에 다섯 개의 벽돌집을 층층이 쌓아올린 곳. 핸드백 브랜드 ‘0914’의 플래그십 스토어다. ‘0914’는 30년간 버버리·코치·DKNY 등 해외 명품 브랜드들의 핸드백과 지갑을 개발·제조해 온 시몬느가 토종 명품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자체적으로 선보인 브랜드다. 브랜드 로고는 ‘물고기 화석(化石)’. 오래될수록 멋과 가치가 깊어지는 제품을 만들겠다는 의미다. 플래그십 스토어 공간 구성 역시 마찬가지다. 세월을 머금어 충분히 숙성된 나무와 돌로 꾸민 내부는 층층마다 다른 콘셉트로 다양한 조화로움을 선보인다. 시몬느 박은관 회장이 공간 구석구석까지 직접 기획하고, 이를 건축집단 MA(대표 유병안)가 구현했다. 박회장은 “미술작품 한 점을 배치할 때도 자연과의 조화에 신경 썼다”면서 건물 안으로 안내했다.

 
오래된 나무와 돌로 꾸며진 0914 플래그십 스토어의 로비. 시원하게 뚫린 천장을 통해 2층 매장에 설치한 통나무 집 구조가 1층에서도 보이도록 했다.

오래된 나무와 돌로 꾸며진 0914 플래그십 스토어의 로비. 시원하게 뚫린 천장을 통해 2층 매장에 설치한 통나무 집 구조가 1층에서도 보이도록 했다.


공간 내부를 차지한 건 8할이 돌과 나무다. 로비에는 3m 길이의 거대한 고목(古木)이 누워 있고 그 위에 가죽 핸드백이 진열돼 있다. 밝은 갈색 톤의 원목마루가 바닥에 깔려있고 벽면은 촉감이 부드러운 베이지 톤의 석재로 마감했다.
 
‘오래된 와이너리’를 모티브로 만든 2층 첫 번째 공간.

‘오래된 와이너리’를 모티브로 만든 2층 첫 번째 공간.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서로 다른 콘셉트로 꾸며진 3개의 공간이 나온다. 첫 번째 공간은 와이너리를 모티브로 했다. 네덜란드에서 가져온 오래된 벽돌로 벽을 쌓고 커다란 오크통을 들였다. 핸드백 사이사이로 선물용으로 제작한 ‘0914’ 와인도 진열돼 있다. 그 옆으로는 낡은 너와지붕으로 덮인 통나무집 한 채가 서있다. 마루 위에는 얼룩말 가죽으로 만든 러그와 빛바랜 가죽소파가 있다. ‘사냥꾼의 오두막’에서 영감을 얻은 공간이다. 다시 그 옆으로 걸어 들어가면 이번에는 오래되다 못해 쓰러져가는 폐가가 한 채 나온다. 어지럽게 쌓인 돌 위에 화석(化石)처럼 단단하게 굳은 핸드백이 보인다. 실제 가죽 핸드백을 화학 처리해 만든 세계 유일의 핸드백 화석이다. 여기까지가 겨우 2층이다.
지하 2층에 위치한 가죽공방 ‘레더 스파’에선 장인들의 작업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지하 2층에 위치한 가죽공방 ‘레더 스파’에선 장인들의 작업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계단을 이용해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널찍한 앞마당으로 연결된 카페 ‘Passi 0914’가 나온다. 박 회장은 “눈이 내리면 손으로 눈을 잡고, 비가 오면 손으로 비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지하 2층은 돔(dome)형태의 벽돌 천장으로 꾸몄다.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바느질을 하는 장인들의 공간 ‘레더 스파(Leather spa)’다. 고객들은 이곳에서 다양한 질감과 색감의 가죽을 직접 만져보고 원하는 소재와 디자인의 핸드백을 주문 제작할 수 있다.
지하 2층 가죽공방에선 고객이 간단한 가죽제품을 만들 수 있고, 가죽을 물들일 염료도 선택할 수 있 다.

지하 2층 가죽공방에선 고객이 간단한 가죽제품을 만들 수 있고, 가죽을 물들일 염료도 선택할 수 있
다.


또 한 층을 내려가 보니 팝 아티스트 ‘마리 킴(Mari Kim)’의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 전시가 한창이다. 사실 갤러리 공간 뿐 아니라 건물 이곳저곳, 가령 화장실 계단 앞이나 거칠게 쌓여있는 돌 틈 같은 후미진 공간에서도 수준 높은 예술작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박은관 회장의 개인 집무실 겸 손님접대 공간으로 활용되는 4층 펜트하우스.

박은관 회장의 개인 집무실 겸 손님접대 공간으로 활용되는 4층 펜트하우스.


플래그십 스토어를 모두 둘러보고 박 회장과 마주 앉은 곳은 4층 펜트하우스. 일반인에게는 공개되지 않는 박 회장의 개인 집무실이다. 밖으로 나가 돌계단을 오르면 옥상에 야외정원도 조성돼 있다. 허리높이까지 오는 억새풀 사이로 자두나무, 소나무 그리고 들꽃들이 보인다.
 
건물 옥상에 위치한 야외정원. 돌로 외벽을 쌓고 그 안에 억새와 자두나무, 소나무를 심었다. 중국·인도네시아 폐가에서 뜯어온 너와지붕이 이국적인 정취도 자아낸다.

건물 옥상에 위치한 야외정원. 돌로 외벽을 쌓고 그 안에 억새와 자두나무, 소나무를 심었다. 중국·인도네시아 폐가에서 뜯어온 너와지붕이 이국적인 정취도 자아낸다.


-강남 한복판이라고는 믿기 힘든 공간으로 보인다.

“공간 깊숙이 자연 그대로를 끌어들이고 싶었다. 건물 옥상에 야외정원을 만들고 지하 카페에 널찍한 테라스를 만든 이유도 그 때문이다. 빌딩 숲에만 갇혀 지내기에는 너무 답답하지 않나. 실내공간을 꾸밀 때도 이 부분을 최대한 고려했다. 눈과 비를 들일 수는 없지만 햇볕만큼은 최대한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외벽을 움푹 파낸 후 곳곳에 창문을 뚫어 햇빛과 바람을 공간 안으로 들였다. 지하 1층에는 바깥공기를 마실 수 있는 널찍한 앞마당을 두고 유리로 벽을 세웠다. 인테리어에 사용된 소재들도 모두 자연 그대로의 것들이다.”

-오래되고 거친 나무와 돌을 주로 쓴 이유는 뭔가.

“브랜드의 철학과 맞닿은 부분이다. ‘0914’의 브랜드 로고는 화석화된 물고기다. 당장 눈앞의 유행을 따르는 게 아니라 멀리 내다보고 긴 호흡으로 좋은 제품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공간 내부에 담을 소재를 고를 때도 기준은 ‘웨더드 앤 에이지드(weatherd and aged)’였다. 비바람을 맞아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담아낸 것들을 주로 선택했다. 수백 년 된 고목으로 만든 테이블, 가늠하기도 힘든 세월이 축적된 규화목(硅化木)을 핸드백 진열대로 사용했다. 지금 펜트하우스를 덮고 있는 너와 지붕은 중국·인도네시아 폐가에서 뜯어와 3년을 더 숙성시킨 것이고, 돌계단은 부산에서 공수해온 80년 된 고석(古石)이다.”
 
건물 옥상에 위치한 야외정원. 돌로 외벽을 쌓고 그 안에 억새와 자두나무, 소나무를 심었다. 중국·인도네시아 폐가에서 뜯어온 너와지붕이 이국적인 정취도 자아낸다.

건물 옥상에 위치한 야외정원. 돌로 외벽을 쌓고 그 안에 억새와 자두나무, 소나무를 심었다. 중국·인도네시아 폐가에서 뜯어온 너와지붕이 이국적인 정취도 자아낸다.


-공간 구조가 꽤 복잡하다. 층마다 콘셉트가 다르고, 같은 층 안에서도 서로 다른 느낌의 공간이 공존한다.

“하우스 인 하우스(House in house) 방식이다. 말 그대로 집 속의 집으로 구성했다.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하면서 미로 같은 골목길을 돌 때마다 아기자기한 상점들과 마주쳤고, 다음 골목엔 뭐가 있을까 호기심과 궁금증이 생기더라. 하나의 공간이면서 또 전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흥미로웠고, 그 느낌을 이 공간에 구현하고 싶었다.”

-공간 구석구석에 상품이 아닌 미술장식품이 참 많다.

“이 건물에만 약 400여 점이 배치됐다. 억 단위 고가 작품부터 가격 스펙트럼도 넓다. 전부 직접 사 모은 것들이다. 그동안 쌓은 항공 마일리지가 330만 마일이다. 그만큼 출장이 잦았고, 그때마다 아무리 바빠도 미술관·박물관·벼룩시장에 들러 눈에 띄는 작품들을 사 모은 게 수천 점이 됐다.”

-화장실 계단 앞, 쇼룸 구석자리 등 눈에 띄지 않는 공간까지 미술작품을 배치했다.

“어울리기만 한다면 문제가 안 된다. 값나가는 작품이라고 눈에 띄는 공간에, 저렴한 작품은 구석에 배치하지 않았다. 4층과 5층 사이 계단 벽은 어둡고 사람들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공간이지만 이곳 분위기와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쿤 반 덴 브룩의 작품을 걸었다. 작품은 그곳이 최적의 자리라고 생각되는 곳에 있을 때 가장 빛난다. 중국과 베트남에 있는 핸드백 공장에도 이미 미술작품 수십 점을 걸어 놨다.”

-가방을 만드는 공장에까지 미술작품을 걸 필요가 있을까.

“예술작품, 패션, 인테리어, 건축은 장르는 다르지만 결국 추구하는 방향은 같다. 사람들의 열정·욕망·관심을 충족시켜주는 것이다. 핸드백에도 한 여자의 희로애락과 삶의 자취가 담겨 있다. 이런 물건을 어떻게 허투루 만들 수 있나. 공장이라 하더라도 건축과 인테리어에 신경 쓰고 구성원들의 안목을 높이는 게 좋은 핸드백이 만들어지고 브랜드의 역사와 품격이 생기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비용 문제는 신경 안 쓰나. 진열대로 활용된 나무나 돌들도 평범하진 않다.

“건축가와 공간을 기획하고 설계도면을 그리면서 나름의 원칙은 ‘철학과 예산이 충돌할 땐 철학을 우선시한다’였다. 소금기 가득 머금은 바닷물에서 정성 들여 숙성된 나무와 화학약품을 발라 겉모습만 흉내 낸 나무는 시간이 흐를수록 차이가 확실해질 것이다. 시간과 유행을 초월해 존재할 수 있는 상품은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2층 매장 중 한 켠에선 건물 한쪽이 무너진 듯 커다란 돌무더기를 거칠게 쌓고 그 위에 가방들을 전시했다.

2층 매장 중 한 켠에선 건물 한쪽이 무너진 듯 커다란 돌무더기를 거칠게 쌓고 그 위에 가방들을 전시했다.


-핸드백 박물관 ‘신사동 백스테이지’도 직접 기획했다.

“두 곳 모두 10년간 적자를 볼 각오를 하고 만든 공간이다. 하하. 핸드백 박물관은 일종의 ‘문화적 기부’다. 핸드백의 역사를 이해하고 알아야 그 안에 담긴 문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을 테니까. 가치를 함께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내가 계획한 대로 흑자라고 생각한다.”

※‘핸드백 박물관’은 2012년 7월 가로수길에 문을 연 세계 최초의 핸드백 박물관이다. 1500년대 주머니 형태로 시작된 핸드백부터 최신 트렌드의 핸드백까지 300여 점의 다양한 핸드백이 전시돼있다. 핸드백 모양을 본떠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건물 외관은 오픈 당시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또 다른 공간을 구상하고 있지 않나.

“맞다. 두 개의 공간을 더 만들고 싶다. 신사동 핸드백 박물관은 시몬느 창사 25주년에 맞춰 급하게 준비하다 보니 서양 핸드백만 다룰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만들 박물관은 동서양 가방을 함께 다룸으로써 이 둘의 교집합을 찾아내고 싶다. 다른 하나는 구체적이진 않지만 미술관 같은 문화공간을 만들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공유할만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글=김민관 기자 kim.minkwan@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lim.hyundong@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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