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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최순실에 분노할 자격 없다" 여고생의 대자보

26일 오전 광주광역시의 사립 고교에 나타난 대자보. 프리랜서 오종찬

26일 오전 광주광역시의 사립 고교에 나타난 대자보. 프리랜서 오종찬
26일 오전 광주광역시의 사립 고교에 나타난 대자보. 프리랜서 오종찬
26일 오전 광주광역시의 사립 고교에 나타난 대자보. 프리랜서 오종찬
"'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다수의 수피아여고 선생님들만큼은 분노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6일 오전 광주광역시의 사립 고교인 수피아여자고등학교 1층 현관 벽면에는 이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대자보 한 장이 부착됐다. 3학년 학생들 가운데 누군가 쓴 것으로 보이는 대자보는 A4용지 크기로도 인쇄돼 교사들이 출근하기 전 진학실(교무실) 앞에 11장이 놓이기도 했다. 3학년 전체 담임 교사의 숫자와 같다.

'학교=사회의 축소판임을 몸소 보여주시는 다수의 수피아여고 선생님들께 고합니다'라는 제목으로 A4 한 장 분량인 대자보에는 이 학교에서 불거진 성적 및 생활기록부 조작 사건 과정에서 학생들이 느낀 차별과 절망이 담겼다. 지난 9월 당시 교장과 교사 등 13명은 명문대 진학 학생 수를 늘리려고 특정 학생들의 성적과 생기부를 조작하거나 무단 수정한 혐의 등으로 경찰에 입건됐다.

작성자는 사건이 불거진 당시는 물론 이후에도 이해하기 힘든 일이 이어졌다며 교사들을 비판했다. 대자보에서 "선생님께서는 '대학 수시모집 대상자는 모의면접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했지만 대부분의 친구들은 받지 못했다"며 "그런데 어떤 친구는 여러 선생님의 도움을 받았다. 그 친구의 담임선생님께서는 그 친구만을 위해 생활기록부를 보며 면접 질문지를 작성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지난 3년간 서서 공부를 하거나 세수를 해가며 야간자율학습을 하고도 학교 측의 차별 속에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게 됐다며 좌절감을 나타냈다. 작성자는 "사회가 이런 곳입니까. 특정 사람만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곳입니까. 우리의 노력을 좌절시키는 곳입니까. 정당하게 살 수 없는 곳입니까. 저희는 이런 사회가 싫고 이런 수피아여고가 싫습니다"라고 대자보의 끝을 맺었다.
26일 오전 광주광역시의 사립 고교에 나타난 대자보. 프리랜서 오종찬

26일 오전 광주광역시의 사립 고교에 나타난 대자보. 프리랜서 오종찬

각 교실에도 뿌려진 A4용지로 대자보를 본 학생들은 내용에 공감했다. 3학년 A양(19)은 "이번 사건이 불거지기 시작한 지난 여름 선생님들은 경찰 조사를 받으러 다니느라 수업에 들어오지 않은 적도 많았다"며 "이후 무엇이 어떻게 된 일인지, 입시에는 지장이 없는지 걱정스러웠지만 충분한 설명과 사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경찰의 수사 결과가 발표된 지난 9월 이후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고 학생들은 입을 모았다. 제대로 된 설명보다는 쉬쉬하기 바쁜 교사들의 모습, 제자들보다는 자신들의 안위에만 신경 쓰거나 변명하기 급급한 모습에 쌓여왔던 분노가 수능 시험 이후 터진 것이라는 게 학생들의 설명이다.학생들과 교사들의 관계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고 학생들은 전했다. 또 성적 및 생활기록부 조작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도 누가 특혜를 받았는지를 두고 의심과 불신이 쌓여 친구 관계에 금이 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교장과 교사들의 일부 학생에 대한 특혜로 학교의 아름다운 전통까지 무너질 상황이다. 1908년 개교한 수피아여고는 학생들이 40세가 되는 해 학교에 다시 찾아와 스승과 대화를 나누고 함께 음식을 나눠먹는 '홈커밍데이' 전통이 있지만 3학년 학생들이 "졸업 후 다시는 오지 않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광주광역시교육청은 진상 파악에 나섰다. 지난 26일부터 이틀간 학교에 장학관 등을 보내 학생들과 교사들 양측의 의견을 듣고 있다. 학교 측은 교장이 27일 오전 교내방송을 통해 학생들에게 사과했다. 대자보를 누가 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해 작성자는 찾지 않기로 했다.

수피아여고 진학부장을 맡고 있는 김용섭 교사는 "사건 이후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대입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미흡했던 점이 있는 것 같다"며 "대자보를 본 교사들이 많은 생각과 반성을 했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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