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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기금운용위 20명, 정부 측 거수기거나 전문성 없거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연금공단 이사장).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안에 찬성하도록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을 받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현 연금공단 이사장).

“기금운용위원회의 역할이 정부나 연금공단의 안을 자동으로 통과시키는 거수기 역할에 그쳐서는 안 되고….”

정부기관 또는 친정부 위원이 절반
농협 등 추천위원은 자산운용 무관
“정부·공단, 기금운용 문제점 알지만
지배력 약화 우려해 개선 의지 없어”

2015년 7월 29일 열린 3차 국민연금 기금운용회의에서 소비자 대표로 추천된 김자혜 위원이 한 말이다. 국민연금법에서 정한, 국민연금 기금의 관리 및 운용에 대한 ‘최고 의사결정기구’라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실질적 위상이 현실에서는 무시된다는 얘기다.

기금 운용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독립성·투명성이다. 그러나 말만 있을 뿐이다.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연금공단 산하에 있다. 공단 이사장이 관할한다. 공단은 보건복지부에 속해 있다. 복지부 장관이 여러 명의 후보 중 한 명을 기금운용본부장으로 낙점한다. 복지부 장관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즉 기금 운용의 실무를 맡고 있는 기금운용본부는 공단 이사장, 복지부 장관, 나아가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3중 구조다.

이걸 막겠다고 만든 게 기금운용위원회다. 외견상으론 독립돼 있다. 그러나 2010년 이후 최근까지 열린 36차례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독립성에는 의문이 제기됐다.
운용위원회 20명의 위원 중 정부 목소리를 대변하는 위원이 복지부 장관 등 8명이다. 여기에 위촉위원 가운데 시민단체 몫은 정부 입맛에 맞는 곳으로 채워진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참여연대에서 위원을 추천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추천을 맡았다. 최근엔 바른사회시민회의에서 위원을 추천한다. 참여연대는 진보 진영, 한반도선진화재단과 바른사회시민회의는 보수 진영을 대표한다.

더 큰 문제는 전문성이다. 자영업자 대표 몫의 위원은 전문성이 있는 인사가 없다는 이유로 3년 넘게 공석이다. 소비자단체 추천 위원은 사회학 전공자다. 근로자 추천 위원들은 각각 노조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수협과 농협 추천 위원은 자산운용과는 관련 없는 내부 인사다. 당연직 5인 가운데 관계 부처 차관은 운용위원회 활동에 소극적이다. 출석률 자체가 현격히 떨어진다.

이렇다 보니 이들 위원은 기금 운용과 관련된 전문적인 안건이 상정됐을 때 입을 닫는다. 2014년 말부터 1년간 위원을 지냈던 연강흠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운용위원회 구성 자체에 대표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다 보니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가 많다”며 “기금 운용의 핵심이랄 수 있는 전략적 자산 배분과 관련한 결정에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입자 대표들은 ‘기금’의 이익이 아니라 추천 ‘기관’의 이익을 어떻게 대변할지에만 관심을 쏟는다”고 덧붙였다.

전문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위원회를 두기는 뒀다. 운용위원회에 올라오는 의결 안건은 먼저 국민연금기금운용 실무평가위원회를 거친다. 그러나 섭외된 전문가 역시 정부 코드에 맞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실무평가위원을 지냈던 한 인사는 “실무평가위원들 역시 ‘들러리’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의제 안건이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투자 관련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투자정책 전문위원회를, 의결권 행사가 중요하기 때문에 의결권 행사 전문위원회 등을 운용위원회 산하에 설치하긴 했다. 그러나 운영을 들여다보면 역시 거수기 수준이다.

회의에서 어떤 안건을 논의할지를 기금운용본부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연 교수는 “의제 설정 기능을 기금운용본부가 하기 때문에 기금운용위원회는 본부가 정해준 틀 안에서만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때가 대표적이다. 기금운용본부가 내부에서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정하고 기금운용위원회의 입장을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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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환 한신대 국제경제학과 교수는 “지금의 기금운용위원회가 겉으로는 민주적인 지배구조로 보이지만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들로 구성되다 보니 기금 운용에 대한 실질적 의사결정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부나 국민연금공단도 현재 기금운용위원회의 운영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안다”며 “그렇지만 운용위원회가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면 복지부나 공단의 입지가 약해지기 때문에 바꿀 생각도 의지도 없다”고 덧붙였다.

기금운용위원회의 독립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기금운용본부를 공사로 독립시키겠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기금운용본부의 공사화는 대통령이 직접 낙하산을 꽂겠다는 의지 표현에 불과하다”며 “이사회를 독립적이고 전문성을 갖춘 인사로 만들어 상설화해 명실상부한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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