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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갈림길에 선 전경련

서상목 동아대 석좌교수 지속가능경영재단 이사장

서상목
동아대 석좌교수

‘헤리티지 모델’ 모색한다지만
보수 싱크탱크화 실현 어려워
기업의 사회적 책임 추구하는
영국 BITC 벤치마킹이 바람직

지속가능경영재단 이사장

최근 ‘최순실 사태’를 계기로 전경련이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 삼성 등 주요 기업들이 전경련 탈퇴를 선언하는가 하면 정치권에서는 전경련 해체를 주장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와중에 나온 개편안이 전경련을 미국의 헤리티지(Heritage)재단과 같은 싱크탱크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1973년 ‘시장경제, 작은 정부, 개인적 자유, 전통적 미국 가치, 강한 국방’을 구현하기 위해 설립된 헤리티지재단은 미국 정계에서 나름대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특히 이 재단이 81년 발간한 ‘리더십을 위한 지침(Mandate for Leadership)’ 보고서는 미국 현대사에서 가장 강력한 보수노선을 추구한 레이건 행정부의 행동강령이 되었다. 그 후 헤리티지재단은 미국에서 보수정당과 보수정치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기관으로 성장했다. 헤리티지재단의 주수입원은 다수의 기업과 개인들의 기부금이며, 회원 수는 70여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400여 개 대기업만이 회원인 전경련이 헤리티지재단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대기업 대변인’으로 알려져 있는 전경련이 헤리티지재단과 같이 수십만 명의 자발적 기부자를 확보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이에 더해 좌우세력 간 이념대결이 치열한 상황에서 전경련이 보수적 가치관과 보수 정치세력만의 후원자로 자리매김하는 것 역시 전경련의 대 국민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전경련이 영국의 BITC(Business in the Community)를 벤치마킹할 것을 권하고 싶다.

82년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기치로 설립된 BITC는 현재 찰스 왕세자가 회장이며, 전경련과 같이 영국의 대표적 대기업 회장들이 부회장을 맡고 있다.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워진 BITC는 이사회 산하에 사무국이 있으며, 런던 본부와 영국 각지에 설치된 지소에는 4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사업비는 2016년 현재 약 3000만 파운드(약 450억원)에 달한다. BITC는 환경, 교육, 취약 계층의 고용, 인종 및 성차별 해소, 지역 중소기업 육성 분야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에는 사회적 경제 부문에서 350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으며, 500개 학교와 협력사업을 했고, 10만 전과자들의 취업을 도와준 바 있다.
61년 ‘자유시장경제 창달, 글로벌 경쟁력 확보, 신뢰받는 기업상 정립’을 비전으로 설립된 전경련은 대기업 중심의 산업고도화와 고도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나름대로 선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70년대 후반부터 대기업 주도 경제 운용의 후유증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는 97년 외환위기로 이어지면서 재벌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그 결과 산업정책에서 정부의 역할이 크게 축소되었고, 외환위기 수습 과정에서 부실기업이 정리되면서 대기업 재무상태도 많이 개선되었다. 이러한 대내외 여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경련이 새로운 역할을 찾지 못하고 종래 대기업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만 수행함으로써 지금의 ‘정체성 위기’에 봉착하게 된 것이다.

하워드 보웬이 54년 처음으로 제기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문제는 국제표준화기구(ISO)가 2010년 ‘ISO26000’을 발표함으로써 이제 기업활동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이에 더해 2011년에는 마이클 포터 하버드대 교수가 기업 활동의 경제적 가치와 동시에 사회적 가치를 제고하자는 ‘공유가치 창출(CSV: Creating Shared Value)’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CSR과 CSV는 국제무대에선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기업들이 추구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이윤 극대화에만 매달리는 경영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성을 보장받기 어려워졌다.

지금 대내외 정치·경제 여건은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제1차 산업혁명 이후 세계무대에서 자유화와 개방화를 선도해 온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EU를 탈퇴했고, 미국에서는 미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주의를 주장하는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따라서 80년 이후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대세를 이루어 온 ‘신자유주의’ 경제논리가 지배하는 이른바 ‘자본주의 3.0 시대’ 역시 종말을 고하고, 이제부터는 자본주의의 ‘지속가능성’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자본주의 4.0 시대’가 새롭게 전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역시 경기 부진이 지속되고 양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대통령 탄핵과 대선이라는 정치적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치·사회적으로 부상될 과제는 대기업의 사회적 책임 강화로 예상된다. 갈림길에 선 전경련의 역할을 영국의 BITC와 같은 방향으로 재설정하는 방안은 ‘정체성 위기’에 직면한 전경련과 우리 대기업들이 기업의 존재이유와 본질을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서상목 동아대 석좌교수·지속가능경영재단 이사장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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