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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크리스마스' 조지 마이클…그의 노래와 삶

  
1980년대를 풍미한 남성 두오 왬(Wham!) 출신 팝스타 조지 마이클이 25일(현지시간) 53세로 세상을 떠났다.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는 이날 조지 마이클이 영국 남동부 옥스퍼드셔주의 집에서 숨졌으며 정확한 사인은 미상이라고 밝혔다. 63년 런던 출생인 그는 잘 생긴 외모와 달콤한 목소리로 큰 인기를 끈 가수 겸 작곡가이자 80년대 팝의 아이콘이었다. 너무도 젊은 죽음, 하필 히트곡 '라스트 크리스마스(Last Christmas)'가 흐르는 크리스마스였다. 81년 앤드류 라즐리와 웸으로 데뷔, 87년 솔로로 독립한 그는 총 1억장의 앨범을 팔아치웠다. 영국 UK차트(싱글)에 12곡, 미국 빌보드 차트에 10곡을 1위에 올렸다. 4곡의 대표곡을 중심으로, 그의 노래와 삶을 돌아본다.
 
◇웨이크 미 업 비포 유 고 고(Wake Me Up Before You Go Go, 1984)
 
흥겨운 멜로디의 ‘웨이크 미 업…’은 세계 무대에 그를 처음 알린, 웸의 첫 히트곡이다. 미국의 팝 칼럼니스트인 밥 스탠리는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 대해 “마이클의 뽀얀 피부 위로 광채가 나고 있었다”고 썼다.(『모던 팝 스토리』) 같은 해 MTV가 등장하는 등 세계 팝계가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전환하던 시기였다. 이처럼 그의 출발은 아이돌이었다. 하지만 웸 시절 히트곡 ‘라스트 크리스마스’ ‘케어리스 위스퍼(Careless Whisper)’ 등을 통해 남다른 작곡 능력도 과시했다. 임진모 음악평론가는 "스타일은 아이돌이었지만 왬 시절부터 그의 음악엔 남다른 기품이 있었다”며 “전통적 작곡 기법에 능해서 솔로로 독립한 후 안정적인 깊이를 선보였다”고 평했다. '웨이크~'는 96년 박진영이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페이스(Faith, 1987)
 
그는 앨범이 유난히 적은 과작(寡作) 아티스트로 불린다. 왬으로 3장, 솔로로 7장 등 35년간 10장의 정규 앨범을 냈다. 2014년 '심포니카 (Symphonica)'가 마지막 앨범. 그러나 영향력과 장악력은 기록적이다. ‘페이스’가 수록된 첫 솔로 앨범의 판매량은 2000만장. 대중음악평론가 김작가는 “몇장 안되는 앨범으로 한 시대를 이끈, 밀도 높은 가수”라며 “마이클 잭슨, 프린스와 함께 80년대의 삼두(三頭)체제를 이뤘다”고 말했다. 특정 장르의 음악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겨룰 이가 없었다. 흑인ㆍ백인의 노래를 가리지 않았고 록ㆍ팝ㆍ소울을 넘나들며 곡을 썼다. 80년대 초 디스코 유행이 끝나갈 무렵 조지 마이클은 정의할 수 없는 새로운 패턴으로 독특한 세계를 이뤘다.
 
◇아이 원트 유어 섹스(I Want Your Sex, 1987)
 
사회적으론 '문제아'였다. 선정적 가사·제목의 ‘아이 원트…’는 많은 라디오 방송국에서 방송을 금지했고, 음악 시상식에선 ‘섹스’대신 ‘사랑(love)’으로 제목이 바뀐 채 호명되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특히 분방한 성적 태도로 자주 도마에 올랐다. 88년 음란 행위로 공원 화장실에서 체포된 일, 동성애 성향 등 구설들이 그를 오랫동안 따라다녔다.

사회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적 발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라크전을 반대하는 노래, 전쟁에 대한 영국 정부의 태도를 문제삼는 곡을 발표했고 남아프리카 광부의 임금 문제를 위한 콘서트도 열었다. 음악 산업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다큐멘터리 ‘조지 마이클: 다른 이야기(2005,서던 모리스 감독)’에서 그는 “프로모션, 비디오 촬영, 투어 공연, 음악상 수상이 돈벌이로 이어지는 구조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고 말했다. 자신의 앨범을 내던 음반사 소니뮤직에 이같은 홍보 활동을 하지 않겠다 선언했던 것은 90년. 그의 첫 솔로 앨범이 그래미에서 올해의 음반으로 선정되고 인기가 정점에 올랐을 때다. 배순탁 음악평론가는 "음악시장에서 상업주의가 폭발하던 80년대에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인물"이라 말했다.
 
◇섬바디 투 러브(Somebody to Love, 1992)
 
남은 것은 목소리 뿐이다. 수퍼스타의 영광과 이면의 기행보다 앞에 놓이는 그의 특징은 미성(美聲)이다. 그 음색의 진가는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부를 때, 특히 당대 최고의 보컬들과 함께 노래할 때 더욱 빛났다. 92년 그룹 퀸의 프레디 머큐리를 추모하며 ‘섬바디…’를 부른 무대는 전설로 남았다. 아름답고 자유로운 음성, 힘들이지 않고 불러도 드러나는 음악적 감각은 천부적이었다. 이 공연 후 퀸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는 “(이제껏 이 노래를 한 가수 중) 조지 마이클이 최고였다”고 평가했다.

부고를 들은 팬들이 떠올리는 것도 엘튼 존, 아레사 프랭클린, 폴 매카트니 등과 함께 노래할 때 밀리지 않았던 그의 목소리다. 엘튼 존과 부른 ‘돈 렛 더 선 고 다운 온 미(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아레사 프랭클린과 부른 ‘아이 뉴 유 워 웨이팅(I Knew You Were Waiting)’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경진 팝 칼럼니스트는 “경이로운 기록이 많지만 잊지 말아야할 것은 마지막 앨범을 낸 50대에도 아름다웠던 목소리"라고 평했다. 이윤정 칼럼니스트도 “꾸미지 않은 세련됨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 말하는 듯한 그의 음색을 기억한다”며 “한국에서 공연을 하지 못했던 점이 안타깝지만, 음악적 금광을 발견할 수 있는 그의 음악들이 남았다”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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