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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시대 열리며 시작된 세계적 차원의 유전자 혼합

1 자코보 바사노의 ‘노아의 방주에 들어가는 동물들’(1570년대).


자코보 바사노는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한 이탈리아 화가다. 틴토레토·라파엘로·뒤러 등 여러 화가들부터 영향을 받아 종교적 그림을 다수 그렸다. 그림 1의 주제인 노아의 방주는 악행을 일삼는 인간을 벌하기 위해 신이 대홍수를 기획하고 신앙심 깊은 노아에게 건축을 명한 구조물이다. 노아는 가족과 여러 동물들을 방주에 싣고 40일 간의 대홍수를 견뎌낸다. 노아의 방주는 구약에 담긴 이야기로 유명하지만, 훨씬 이전에도 대홍수를 소재로 한 이야기는 많았다. 특히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길가메시 서사시』를 포함한 여러 점토판 문헌에서 대홍수 전설이 확인됐다. 대홍수 이야기의 기원이 무엇이든 간에 대부분의 이야기는 서아시아 지방을 배경으로 한다.


 


[소·말·밀은 신대륙, 담배·감자는 구대륙으로]그림 1에는 수많은 동물들이 등장한다. 소·말·양·개·토끼·사슴·사자 등 대부분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들이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이른바 구세계, 즉 아시아-유럽-아프리카에서 장구한 시간 살아온 동물이다.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다. 그림의 오른쪽 아래에 등장하는 칠면조다. 칠면조는 멕시코 지역이 원산으로, 16세기에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유럽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콜럼버스 이전에는 유럽인들이 이 새를 접할 수 없었다. 노아의 방주를 서아시아 지역의 이야기로 본다면 신세계에서 서식하던 칠면조를 그림에 포함시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로 시작된 구세계와 신세계의 조우는 인류의 역사에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왔을까? 과거 구세계와 신세계는 서로 유리된 채 나름의 세상을 만들어왔다. 동식물은 각각의 범위 내에서 이동했고, 사람들 역시 각각의 범위 내에서 교역과 교류를 해왔다. 그런데 두 세계가 갑작스럽게 접촉함으로써 이 모든 것이 바뀌었다.


대항해시대의 개막은 무엇보다도 동식물의 대대적 이동을 낳았다. 토마토·담배·감자·고구마·호박·고추·옥수수·땅콩·파인애플 등의 식물이 신세계에서 구세계로 전파됐다. 반대 방향으로는 밀·보리·쌀·귀리·바나나·감귤·양파·커피·포도 등이 전해졌다. 동물도 마찬가지여서 소·말·돼지·양·당나귀·고양이 등이 구세계에서 신세계로 전파됐고, 칠면조는 반대 방향으로 옮겨갔다. 대부분은 사람들이 경제적 목적으로 이동시키고 정착시킨 동식물들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성장과 번식·재배에 적합한 기후와 토질·수요처를 찾아 지구 곳곳으로 퍼져갔다. 동식물의 세계화가 이렇게 이뤄졌다.


 

2 아메리카의 생활상을 묘사한 그림, 18세기 페루.


18세기에 제작된 그림 2를 보자. 페루 사람들의 경제활동을 묘사한 이 그림의 윗부분에는 농부가 소를 이용해 밭을 가는 모습이 그려있다. 소는 대항해시대 이래 아메리카 대륙 곳곳에 급속하게 널리 퍼진 가축이었다. 아래쪽에는 요리를 하는 여성이 보이는데, 재료는 아메리카가 원산지인 카사바라는 뿌리작물이다. 대항해시대 이후 카사바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로 전파됐고, 특히 아프리카에서는 가장 중요한 식량원이 됐다. 카사바 뿌리에서 추출한 녹말을 침전시킨 후 건조시키면 타피오카가 만들어지는데 이것이 값싸고 질 좋은 탄수화물의 공급원이 됐다. 오늘날 타피오카는 소주의 알코올 발효원료로 쓰이고 버블티의 재료로도 사용된다.


동식물의 세계화는 식량 증산과 같은 양적 변화뿐만 아니라 식단의 다양화와 같은 질적 변화도 가져왔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에서 건너온 고추는 인도에서 카레의 풍미를 강화시켰고, 이것이 17세기 유럽의 요리책에 등장하게 됐다. 중국으로 유입된 토마토는 케첩으로 개발되어 동남아시아 화교들을 통해 인도로, 그리고 다시 영국으로 전해졌다. 또한 유럽인의 식탁에 아시아산 차, 아프리카산 커피, 아메리카산 코코아가 경쟁적으로 오르게 됐다.


대항해가 이동시킨 것은 동식물만이 아니었다. 바이러스와 세균도 대양을 건너 세계화됐다. 천연두·홍역·발진티푸스와 같은 구세계의 질병이 신세계로 전파돼 엄청난 수의 희생자를 냈다. 반대 방향으로 옮겨간 질병으로는 매독이 손꼽힌다. 구세계에서 신세계로 전파된 질병들은 가축으로부터 사람에게 전이된 질병이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가축을 길들여 키운 역사가 실질적으로 없는 신세계 인은 이런 질병들에 대해 면역력을 가질 기회가 없었다. 수많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대재앙의 생물학적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이에 더해서 유럽인 정복자들이 원주민을 강제로 사역시키고 전통적인 공동체적 생활터전을 파괴한 점이 사회적 원인으로 작용했다.


 

3 천연두 희생자를 묘사한 그림, 『피렌체 코덱스』 12권, 16세기.


[아프리카인 7500만명 노예로 신대륙 밟아]그림 3은 천연두를 앓게 된 아스텍 원주민의 모습을 보여준다. 원주민의 손으로 그려진 작품이라는 점이 특별히 흥미를 끈다. 스페인의 프란체스코회 수사 베르나르디노 데 사아군은 1545년부터 멕시코 지역의 전통 신앙·문화·풍습을 조사했다. 그는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나우아틀어로 질문지를 작성해 부족장들에게 읽어주고서 관련 자료를 가져오게 했다. 민속지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집요한 노력에 의해 방대한 자료가 수집됐고, 『뉴스페인의 사물에 관한 일반 역사』라는 제목으로 발간됐다. 2000장이 넘는 그림 자료를 포함한 자료다. 이 기록에 따르면 천연두에 걸린 사람은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워했고, 대부분이 금방 목숨을 잃었으며, 건강한 이들도 간병을 주저할 정도로 겁에 질렸다.


그렇다면 대항해시대의 개막은 지구 전체의 인구를 감소시켰을까? 단기적으로는 인구가 감소한 것이 분명하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에 상륙한 후 100년 동안 아메리카 원주민의 80% 가량이 목숨을 잃었다고 역사가들은 추정한다. 아메리카 경제의 중심지였던 멕시코 중부지역은 1530년대에 인구가 1600만 명을 넘었지만 불과 70년 후에는 16분의 1 수준인 10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전쟁·착취, 그리고 무엇보다도 낯선 질병이 야기한 결과였다. 그러나 지구 전체로 보면 부양 가능한 인구가 늘어났다. 밀·쌀·보리와 같은 곡물이 전파되어 생산량을 늘렸고 감자·고구마·옥수수가 다른 작물을 재배하기 힘든 지역으로 널리 퍼졌다. 장기적으로 이 효과는 인구감소의 효과보다 훨씬 컸다. 결국 1500년 4억6000만 명이었던 세계 인구는 1600년 5억8000만 명, 1700년 6억8000만 명, 그리고 1800년 9억5000만 명으로 증가했다.


늘어난 인구가 모두 태어난 곳 근처에서 살아간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구세계인들이 새 삶을 찾아 신세계로 이주했다. 자발적으로 이민을 결정한 이도 많았지만, 그렇지 못한 처지의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후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노예무역이 크게 늘었다. 아프리카 노예는 사하라사막 이남지역으로부터 이슬람 무역망을 통해 팔려나간 역사가 깊다. 1500~1800년에도 이곳에서 아프리카 북부와 아시아로 끌려간 노예가 2000만 명에 육박했다. 그러나 같은 기간에 이곳에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로 팔려간 노예는 7500만 명을 넘었다. 바야흐로 세계적 규모의 노예무역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학자들은 콜럼버스가 시작한 구세계와 신세계의 상호작용을 ‘콜럼버스의 교환(Columbian Exchange)’이라고 통칭한다. 이 콜럼버스의 교환의 중심에는 바로 유전자의 교환이 있었다. 사람과 동식물과 미생물과 바이러스의 대륙 간 이동과 확산이 지구를 단일한 경제권으로 묶는 세계화 과정의 핵심 요소였던 것이다.


 


송병건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bks21@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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