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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동원되는 소리, 예술적 실천 방향 암시하다

일러스트=강일구 ilkooK@hanmail.net


지금부터 나는 ‘사운드 아트’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그리고 ‘소리의 인문학’이라는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사운드 아트란 무엇인가. 광범위하게 정의한다면 사운드 아트(sound art)는 소리를 재료로 하는 모든 예술행위를 말한다. 사실 너무 포괄적이어서 별 소용 없는 개념일 수도 있다. 게다가 아직 정리된 개념도 아니어서 쓰임이 일정하지 않다. 말하자면 이제 겨우 개념이 정립돼 가고 있는 도중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사실 그게 매력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음악’이나 ‘미술’을 재정의하는 건 맥빠지는 일일 수도 있다. 하나마나한 짓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운드 아트는 아직 그렇지 않다. 누구나 정의하기 나름이고, 그에 따라 계속 개념의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는 게 보이기 때문이다.


우선 떠오르는 의문 하나. 사운드 아트 안에 음악이 들어간다고 봐야 하나? 물론 그렇다. 음악도 어떤 면에서는 사운드 아트의 한 분야다. 그런데 사운드 아트는 꼭 음악적인 소리만을 다루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는 음악이라는 전통적인 장르와 사운드 아트가 구별되는 지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대체로 음악은 전통적으로 용인된 악기들을 사용하고 사운드 아트는 그 악기들을 기존의 음악가들이 쓰는 방식으로 활용하지 않거나 전혀 다른 도구를 써서 소리를 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역시 모호하다.

1 백남준의 ‘TV첼로’.


[백남준의 ‘TV첼로’, 공연·전시 구분 넘어서]


예를 들어 백남준이 첼리스트 샤를롯 무어만과 함께한 ‘TV 첼로’ 연주 퍼포먼스를 떠올려 보자. 1971년 11월 24일 뉴욕 보니노 갤러리에서의 일이다. 첼로라는 악기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그 퍼포먼스는 음악의 범주 안에 들 수도 있었다. 그러나 TV 첼로는 누가 봐도 기존의 첼로와는 달랐다. TV 첼로는 게다가 퍼포먼스 이후에는 비디오 설치 작품으로 놓여져 있게 된다. 그렇다면 백남준의 TV 첼로는 ‘공연’과 ‘전시’라는 이분법적인 구분을 넘어선다. 첼로이자 동시에 텔레비전인 이 악기, 또는 미디어는 기존의 장르 개념을 넘어서는 통합적인 어떤 장치일 수 있다.


어떤 면에서 사운드 아트에서는 모든 것이 악기가 되기도 한다. 아니, 실은 악기라는 개념을 파기하려고 사운드 아트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음악은 ‘공연’ 중심이지만 사운드 아트는 ‘전시’의 영역까지도 포괄한다. 하여튼 사운드 아트는 모호하고 윤곽이 불분명한 개념이다. 한 번에 다 잡으려 하지 말고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며 소리를 듣는 태도를 은근히 제안한다. 한번 들어 봐. 그리고 그 소리들이 당신의 귀로 다가오는 과정 자체를 느껴 봐. 사운드 아티스트들은 이렇게 제안하는 듯하다.

2 전시장 한구석에 설치한 사운드 퍼포먼스에서 화가 겸 음악가 백현진은 매일 즉흥적인 소리를 빚어냈다. [중앙포토]


요즘 들어 뭔가를 ‘보러’ 미술관에 갔는데, 결국엔 ‘듣고’ 왔다고 말하는 분이 꽤 있다. 특이한 현상이다. 소리는 ‘공연장’에 있고 미술관에는 그림들이 있어야 정상일 텐데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그림과 소리가 동시에 존재하는 전시들이 요즘 들어 참 많이 눈에 띈다. 올해 1월 27일부터 한 달 동안 PKM 갤러리에서 있었던 ‘들과 새와 개와 재능’전에서 백현진은 자신이 세팅한 전자음향을 매일 오후 4시에 들려주었다. 그래서 그는 그림을 걸어놓고도 갤러리에 거의 매일 ‘출근’해야 했다. 또 이형주 작가는 지난 7월 17일에 끝난 ‘망상지구’전(국립현대미술관)에서 달파란, 장영규, 정태효 등의 뮤지션·사운드 아티스트들과 함께 설치·영상·소리가 겹으로 존재하는 복합적인 공간을 연출했다. 필자 역시 미술관에서 의뢰를 해와 소리 작업을 해줄 일이 조금씩 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에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있었던 광복 70주년 기념전 ‘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전(2015.7.28~10.11)에 ‘가상라디오 노래 따라 3천리’라는 소리 설치 작업을 출품했다.


‘소리 설치(sound installation)’? 설치라는 말도 생소한데 소리 설치는 또 뭐야? 이런 반응을 보이는 분도 많다. 사실 이 말이 생소하게 들릴 수도 있는 것은 주조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사운드 아티스트인 맥스 뉴하우스(Max Neuhaus)가 ‘소리 설치’라는 말을 처음 쓴 것으로 돼 있다. 그는 1967년 미국 버펄로의 어느 이름 없는 길가에 라디오 트랜지스터를 주루룩 설치해 놓고 그것에 ‘소리 설치’라는 장르를 부여했다. 소리 설치란 무엇인가? 뉴하우스는 간단명료하지만 조금은 거친 뜻풀이를 내놓는다. 그에 의하면 “음악은 시간적으로 소리를 배치하는 데 비해 소리 설치는 소리를 공간적으로 배치한다.” ‘배치’한다는 게 키 포인트다. 소리를 어딘가에 ‘놓는’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소리가 모양도 없는데 어떻게 놓나? 소리를 ‘놓는다’는 말은 거짓말이거나 아니면 너무 복잡하고 오묘한 일이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간단한 일일 수도 있다. 스피커를 놔버리면 끝나는 일이기도 하다. 스피커는 소리인가? 오브제인가? 소리 나는 오브제인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사운드 아트를 ‘스피커 아트’라고 비꼬아 정리해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스피커를 놓을 때가 많지만 그것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소리’라는 것을 다루는 바로 그 지점에 묘미와 난점이 동시에 존재하는데, 사실 그 대목이 21세기 들어 새롭게 제기된 다양한 현상들과 겹치면서 소리를 흥미로운 재료로 부각시킨다.


어쨌든 나의 소리 설치 작업 ‘가상라디오’는 수많은 그림과 사진 더미들이 걸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하 1층의 천장 높은 홀에 설치됐다. 이 작품은 사람들에게 인식되기보다는 그림들을 보이지 않게 감싸는 일종의 ‘소리 보자기’의 역할을 했다. 소리 설치 작업으로 인해 그림들이 말없이 벽에 걸려 있고, 소리는 그 전체의 공기 어느 높이쯤에 붕 떠 있는 시청각적인 풍경이 만들어졌다. 이런 작업에 관해서는 나중에 더 자세하게 설명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무엇을 말하나? 미술관에서 뭐가 부족하기에 소리를 동원하는 것일까? 물론 소리는 독자적으로도 제시되지만, 보이는 것들의 배후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면서 전체 안에 스며들어 있다. 왜 그런 환경을 자꾸 만들려고 할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21세기의 예술적 실천이 추구하는 중요한 방향 하나를 넌지시 지시한다. 지금의 사람들은 ‘보이는 것을 보여주는’ 작업을 넘어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는’ 시도를 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비가시적인 것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 시대 예술의 핵심 사항 중 하나라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소리는 매우 효과적인 재료라 할 수 있다.


[듣는 것은 사라짐을 함께 체험하는 일]


근본적으로 물어 보자. 소리란 무엇인가? 아무것도 아니다. 실제로 그것은 그저 공기의 떨림에 불과하다. 소리는 사물처럼 대상화되지 않는다. 인식되었을 때 그것은 이미 없다. 사르트르식 존재론의 ‘저만치 있는 존재(etre-la)’ 같은 개념을 가지고는 소리의 존재는 설명되지 않는다. 저만치 없기 때문이다. 사르트르의 존재론은 순전히 ‘시각적인 대상’만을 염두에 두고 있는데, 그것은 ‘있다=보인다’는 등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서양 사람들의 오랜 전통, 즉 가시세계의 오브제만을 존재론의 대상으로 다루는 습관을 보여준다. 언어철학자이자 고전학자이며 예수회 신부인 월터 J 옹은 명저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언어를 다루는 기술』이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소리는 막 사라져 갈 때만 존재한다. 소리는 단지 소멸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본질적으로 덧없는 것이다. (?) 소리를 멈춰 서게 할 방법은 없으며 그것을 소유할 방법도 없다. 소리의 움직임을 멈추게 한다면 거기에는 침묵뿐이다.”


소리를 들을 때 우리는 ‘존재(existence)’에서 ‘현존(presence)’으로 나아간다.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사라짐을 함께 목격하고 체험하는 일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기, 같은 타임라인 위에 존재하기라는 존재론적 조건을 벗어나는 순간 소리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인식의 과정으로서만 존재하는 현상으로서의 소리는 오브제들과는 달리 ‘사라짐’ 자체를 인식의 조건으로 가지고 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면 소리는 현존의 유일한 징표이자 동시에 없음에 관한 인식을 현실화시키는 유일한 질료다. 우리는 거기까지 나아가고 싶은 것이다.


이쯤에서 맨 끝의 결론을 미리 말해 버리면 21세기는 소리의 시대다. 너무 단도직입적이어서 꼭 우기는 것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또는 징후적으로 그렇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야기할 여러 가지 논점이 이런 결론을 뒷받침해 주리라 믿으며, 이런 논의를 포괄해 ‘소리의 인문학’이라 칭할 수 있는 하나의 지류가 자리 잡기를 바란다.


 


 


성기완시인, 뮤지션, 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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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